가난한 자들의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2014년 1월 29일  |  By:   |  세계  |  5 Comments

매트 밀러(Matt Miller)는 최근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미국 빈민들에 의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기술의 발전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물건의 가격이 낮아지니, 실제 소비 생활의 격차가 소득 격차만큼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도 큰 불만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만 달러가 넘는 최신형 냉장고를 가진 사람이나 이케아의 550달러짜리 냉장고를 가진 사람이나 똑같이 집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주장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는 듯 하고, 그래서 더욱 의심이 갑니다. 물론 아무리 싸구려 냉장고라도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낫고, 굶어 죽느니 소금과 지방 함유량이 높은 패스트푸드라도 먹는 것이 낫겠죠.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삶의 질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불평등에는 그다지 분노하고 있지 않은 것일까요? 농노 해방이나 북미 흑인 노예 해방 등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극단적으로 끔찍한 상황이 언제나 폭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에 비해 견딜만 상황이라고 해서 일어날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도대체 왜 가난한 미국인들은 거리로 나서지 않는 것일까요?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의 정책 우선순위를 불평등 해소로 정한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쏟아져나와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불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밀러가 인용한 보고서는 소득 격차 대신 “전반적으로 얼마나 물질적 웰빙을 누리고 있는지”, 즉 소비 수준을 기준으로 사회의 불평등 정도를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소비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니 소득 불평등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으로 이어지죠.

그러나 최근에는 소비 격차 역시도 만만치 않은 문제임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2012년 전미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아타나시오(Attanasio)와 공동 연구자 2인은 자신들의 과거 연구에서 소비 불평등의 정도를 과소평가했다며 오류를 인정하고, 지난 30년 간 음식, 레저, 가전제품, 자동차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소비 격차는 소득 격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크게 벌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수치와 통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불평등이 진짜 문제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미시건대학 철학과의 엘리자베스 앤더슨(Elizabeth Anderson)교수는 빈부 격차의 문제를 단순히 소비재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앤더슨 교수는 한 사회의 빈부 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유층과 빈곤층이 공유하는 이익이 점점 더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부유층은 교육, 보험, 치안 서비스 교통, 오락 등을 모두 민간 부문에서 조달하고 외부인의 출입과 통행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에 모여 살기 때문에, 양질의 공립학교나 시립공원과 같이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공공재의 확충에는 반대하게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빈곤층의 삶의 질은 점점 나빠지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누구는 아이폰을 쓰는데 누구는 싸구려 짝퉁폰을 쓰기 때문이 아닙니다. 비싼 냉장고를 못 가진 사람이 비싼 냉장고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불평등이 심화될 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로부터 차단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빈민층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요? 밀러의 말대로 휴대폰과 냉장고를 가졌으니 인생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점진적인 쇠퇴, 그리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 권력의 격차 역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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