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시각 언어로서의 만화(The Visual Language of Comics)”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주립대학의 심리학자 닐 콘은 만화광이자 아마추어 만화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종종 어떻게 우리의 두뇌가 컷과 컷 사이를 메꾸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그의 새 책 “시각 언어로서의 만화(The Visual Language of Comics)”는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입니다. 그는 만화는 자신만의 단어, 문법, 체계를 갖춘 또 다른 형태의 언어이며 만화 역시 언어와 같은 뇌신경 수준에서 해석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방법은 세가지 뿐입니다. 입을 이용한 말, 손과 표정을 이용한 몸짓, 그리고 바로 그림입니다… 내 생각의 핵심은 이러한 의미를 가진 행위들이 규칙적인 순서로 전달될 때 이는 결국 하나의 언어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코헨의 이론은 우리 두뇌의 언어능력이 스위스 칼과 같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음악이나 춤의 표현과 이해에도 사용된다는 최신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만화는 음악과 달리 각 장면이 보다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동굴벽화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만화에 대한 진지한 연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1993년 출간된 스콧 맥클라우드의 기념비적인 저작 “만화의 이해(Understanding Comics)”는 당시 만화를 사랑하던 10대였던 콘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버클리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언어와 만화의 공통점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만화의 각 장면은 언어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풍선, 동선, 충격을 나타내는 별 등 시각언어의 다양한 요소들이 한 장면 안에서 무한한 방법으로 조합됩니다. 한 장면은 다시 상위 레벨의 구성요소가 됩니다. 영어에는 여기에 대응되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지만 터키어나 이누잇어같은 교착어에는 이와 같은 구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누잇어의 angyaghllangyugthqiu 는 “그 남자도 더 큰 배를 원하고 있어”를 의미합니다.) 만화 “피넛(Peanuts)”의 한 장면은 “찰리브라운은 배트를 휘두를 준비가 되었습니다”라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이보다 더 상위의 구조로 “서사적 문법(narrative grammar)”이 있습니다. 이는 흔히 기승전결로 표시됩니다. 이렇게 묶인 하나의 이야기는 다시 더 큰 이야기 속에서 기승전결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재귀(recursion)적 구조는 언어가 가지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학부를 졸업하던 당시 심리학과 언어학외에는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그였지만, 그는 이러한 통찰에 실험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시각언어와 청각언어에 대한 뇌의 활동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위해 7-80년대 이루어진 언어에 대한 실험들에 주목했습니다. 한 실험은 사람들이 문장 중의 특정 단어를 골라내는 시험에서 비문법적인 문장의 경우 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이 실험을, 장면의 순서를 바꾼 만화를 이용해 재현했고 언어의 경우와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콘은 이제 전 세계의 다양한 시각언어를 조사하고 이들을 망라한 백과사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만화들이 상대적으로 전체를 조망하는 넓은 장면을 많이 사용한다면 일본의 만화(망가)는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또 호주의 원주민들이 대화를 위해 사용하는 모래그림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만화의 역사에서 각 시각요소들의 기원을 찾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