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가 보수주의자라니, 무슨 소리!
아이라 스톨(Ira Stoll)의 어처구니없는 타임지 칼럼(어제자 뉴스페퍼민트에 소개-역주)을 읽고 나서 로널드 레이건이 실은 극렬 좌파였다는 주장을 펼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런 식의 논쟁은 공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반박만 해보겠습니다. 우선 케네디의 말 몇 마디를 인용하며 시작하겠습니다. 다음은 케네디가 상원의원이었던 1960년 8월, 최저임금을 25% 인상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기준법에 찬성표를 던진 후 했던 말입니다. 오늘날 미 의회의 스펙트럼 상에 놓아도 꽤 왼쪽으로 치우치는 발언입니다.
“최소 임금이 올라가 구매력이 높아지면 침체된 우리의 산업도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입니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 때문에 생기는 불공정한 경쟁을 없애는 것은 공정한 노동 조건을 유지하려는 양심있는 고용주들을 보호하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케네디가 보수주의자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스톨은 크게 두 가지 근거를 댑니다. 첫째는 케네디가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국방 예산을 늘인 강경한 반공주의자라는 것이죠. 케네디가 민주당 내에서 매파에 가까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스톨은 해외 원조와 같은 이상주의, 진보주의적 정책과 우주 개발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의 대규모 연구까지도 실은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라고 잘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사실이죠. 국가와 시장이 공존하는 경제 체제와 사회적 안전망, 개도국에 대한 원조, 과학 분야의 우위 같은 것이 미국의 체제를 소련의 체제보다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것이 바로 진보주의자들의 믿음이었으니까요. 만일 반공주의자이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라는 주장이 성립한다면, 미국 역사 상 연방정부의 선출직에 앉았던 사람들은 죄다 보수주의자일겁니다.
스톨의 두번째 근거는 케네디가 감세 정책을 펼쳤다는 겁니다. 사실입니다. 최고 과세구간의 한계세율을 91%에서 70%로 낮췄죠. 하지만 그 이유는 케인즈식의 수요 창출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지, “최고 부자들에 대한 세금 인하가 투자 활성화의 필수 요소”라는 주장을 믿어서가 아닙니다. 실제 케네디의 경제 자문 중 한 사람인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은 “소득세 인하가 단기적인 경제 부양책이기는 하나, 투자 활성화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죠. 1961년 케네디가 제시했던 세제 개혁안의 초안에 한계세율 조정은 들어가 있지도 않습니다. 최상위 계층이 주로 받는 투자 배당금도 소득과 같이 취급해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이야기는 잔뜩 나오죠. 60년 대선 운동 기간에 자신의 정책 우선순위를 밝힌 연설에서도 케네디는 감세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참모들이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으로 감세를 추천하자 그제서야 감세를 의제에 올린 것입니다. 그리고 케네디가 감세와 함께 추진했던게 뭔지 아세요? 재정적 보수주의자들의 총아, “메디케어(Medicare)”입니다. 그러니까 스톨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 칭했던 케네디가 보수주의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케네디 정부의 수 많은 경제 정책을 다 제쳐둔채 감세 하나를 들고 나온거죠. 하지만 이거 하나로는 케네디 정부가 어떤 정부였는지, 1960년대에 정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전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부자 감세를 유일한 경제 이슈로 삼고 있는 오늘날의 보수주의자들을 상기시킬 뿐이죠. (Economist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