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선택인가 의무인가
서구에서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1968년 이후 투표율이 60%를 넘긴 대선이 없고, 영국에서도 60년 전보다 총선 투표율이 20%p나 떨어졌죠. 하지만 호주에서는 지난 9월 7일 총선 투표율이 91%에 달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호주에서는 투표가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투표 참여가 의무이거나 의무였던 나라는 호주를 비롯해 38개국에 달합니다. 미국 조지아 주도 1777년에 “합당한 이유” 없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엄격하게 집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선거위원회로부터 해명을 요구하는 서한을 받습니다. 불참 이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19 호주달러(우리돈 1만8천 원)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하고, 내지 않으면 법정에서 최고 170호주달러(우리돈 16만 원)의 벌금형을 받게 되며, 이것도 내지 않으면 금고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2006년 영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투표 불참을 가장 엄격하게 처벌하는 나라는 페루와 브라질, 싱가포르입니다. 브라질에서는 투표하지 않으면 여권도 신청할 수 없고, 자격시험에도 응시할 수 없습니다. 노인이나 군인,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예외를 허락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역시 투표가 의무인 볼리비아에서는 결혼하면 19세부터 투표할 수 있지만, 싱글은 21세가 되어야 투표권을 얻는다는 희한한 조항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투표는 의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자기 결정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투표가 의무면 선거운동 비용이 효율적으로 쓰인다는 의견이 있지만, 법정 비용을 비롯해 부수적인 비용이 오히려 더 크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투표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죠. 투표하기가 어려워지면 공화당이 유리하다는 설을 뒤집어, 모두가 투표하게 되면 민주당이 유리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단순히 집권당이나 기호 1번이 유리해질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성 결혼에 반대하고 이민의 문턱을 높이려는 호주 토니 애봇 총리의 당선이 말해주듯, 분명한 건 의무투표제가 반드시 왼쪽에 유리하지는 않다는 것이죠. (Economist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