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계에서 여성의 입지
얼마전 마이애미대학의 유명 철학과 교수 콜린 맥긴(Colin Mcginn)이 대학원생 성추행 추문에 휘말리며 사임한 가운데, 뉴욕타임즈는 다섯 명의 여성 철학자들로부터 학계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첫번째 타자로 MIT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샐리 하슬래인저(Sally Haslanger)가 나섰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비행기 옆 좌석의 승객으로부터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 “저는 철학자예요.”라고 답하는 것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따릅니다. 자신의 “철학”을 끝도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거나 대학 때 들은 철학개론 수업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토로하는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렇게 젊고 매력적인 철학자도 있군요. 철학자라고 하면 수염난 할아버지들인줄 알았는데…”라는 칭찬아닌 칭찬을 들은 일도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수염난 노인들만 철학을 하라는 법은 없지만, 학계 동료 대부분은 남성입니다. 2010년 기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 중 여성의 비율로 따졌을 때, 철학과는 경제학은 물론 수학, 화학보다도 낮은 수치를 자랑합니다. 그나마 지난 5년 간 여성의 비율이 가장 크게 늘어난 분야가 바로 철학인데도 말이죠. 전미철학회 내 여성지위위원회가 학계 내 여성 철학자의 수를 집계하자고 수 년 째 촉구하고 있지만, 공식 집계는 아직 없습니다. 그나마 나와있는 통계 중 믿을만 한 것이 바로 영어권 상위 51개 철학과 대학원 기준, 테뉴어를 받았거나 테뉴어 트랙에 있는 철학자 중 여성의 비율이 21.9%라는 통계입니다. 철학박사 학위 취득자 중 여성이 27.1%였던 2003년에도 중등교육기관 이상에서 전임으로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 및 교수 중 여성의 비율은 16.6%에 그쳤다는 좀 더 우울한 자료도 있습니다. 같은 자료에서 16.6% 중 유색 인종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미철학회 내 흑인지위위원회와 젊은흑인철학자회의 자료에 따르면 학계에 머물고 있는 철학 박사학위소지자 중 흑인 여성은 단 55명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여성 철학자들은 꼭 성추행이 아니더라도 수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따돌림, 은근한 편견에서부터 명백한 차별에 이르기까지 학계에서 성공하려면 여러 산을 넘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한 마리 미꾸라지가 아니라, 그 미꾸라지에게 힘을 실어주는 환경입니다. 철학계에는 다른 분야와 달리 자금 지원도, 국립과학재단과 같은 영향력있는 기구도 없기 때문에 제도적인 변화는 더욱 어렵습니다. 최근 전미철학회의 임원진에 여성학 학위를 가진 분이 들어가는 등 변화는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맥긴 사태는 학계의 영향력있는 인물이 몰락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처리 과정에서 지난 20년 간의 개혁 노력이 제도화로 이어진 것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N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