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과학자는 특정한 환경정책을 지지해서는 안됩니다
2013년 8월 9일  |  By:   |  과학  |  2 Comments

기후과학자인 나는 정치적 입장을 밝혀달라는 요구를 자주 받습니다.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환경주의자들입니다. 풍력발전회사를 이끌고 있으며 태양열 발전을 지지하는 단 카스는 나에게 “어리석은 기후변화반대론자”들과의 논쟁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재난을 직접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정치적 행동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환경주의 자선가 제레미 그랜섬은 기후과학자들을 향해 “보다 필사적으로, 필요하다면 체포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만큼 직접적인” 주장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어떤 환경주의자는 나에게 내가 대중을 설득했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난 첼튼햄 과학축제에서 한 대중은 나에게 탄소세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내가 답변을 거부하자 의장은 농담조로 내게 “탄소세가 뭔지 모른다고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나의 몇몇 동료들조차도 내가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개빈 슈미트와의 트위터 논쟁에서 그는 기후과학자와 과학 블로거들은 자신들이 어떤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차라리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기후과학자들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신뢰를 저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자기 연구의 중립성과 객관성에 자신들의 신뢰와 명성을 걸고 있습니다. 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주의의 상당부분이 과학자들이 급진적 환경주의자의 영향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적 진실만을 추구하는 나의 접근 방식이 지구온난화 논쟁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단순히 과학자의 신뢰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대립이 일어나는 분야에서 과학자들은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서는 안되며, 보다 객관적이어야 할 의무를 가집니다. 과학은 과학자가 남용해서는 안될 공정한 도구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의 전문성을 아무곳에서나 함부로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개빈이 주장하듯이,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기후정책의 결정에 더 큰 전문성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기후정치학이나 기후경제학, 통합적 기후대책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라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정책의 결정에는 가치의 판단이 필요하며, 이는 곧 우리가 가진 한정된 예산 중 무엇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를 정하는 일입니다. 경제성장과 환경보호 중 어디에 가치를 두어야 할지, 오늘날의 삶과 미래의 삶 중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할지, 온도변화와 강수량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지 등의 질문들은 과학적 증거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질문들입니다. 즉, 과학자들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선호하는 정책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미 이들이 자신의 권위를 남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들은 과학과 정치를 단순하게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또는 모든 개인은 무언가를 지지하고 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과 그 행동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동입니다. 즉 기후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를 예측하는 것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어떤 정책을 취해야하는지를 주장하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홍수예측전문가는 홍수가 날 확률을 표시한 지도를 제공할 뿐, 제방을 어느정도 쌓아야 하는지, 건물에 대한 규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와 같은 구체적 대처방안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로저 필크 쥬니어가 “정직한 중개자(The Honest Broker)”에서 말한, 어떤 정책을 지지할 목적으로 과학을 도구로 삼는 “비밀스런 지지자(stealth issue advocacy)”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로버트 T 래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나는 종종 과학적 담론에서 ‘하락(degradation)’, ‘향상(improvement)’, ‘좋은(good)’, ‘형편없는(poor)’ 과 같은 자신의 선호를 포함한 단어를 발견합니다. 이런 단어는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데 쓰여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저자의 선호, 곧 어떤 객관적 상태나 계급,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 과학용어로 적당한 것은 ‘변화(change)’, ‘증가(increase)’, ‘감소(decrease)’와 같은 단어들입니다.” (“과학, 과학자 그리고 정책 지지자(Science, Scientists and Policy Advocacy)”)

나는 학교에서 들었던 오존층 파괴에 대한 수업과 오랜 환경주의자인 오빠의 영향으로 기후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을 운동에 동참하게 하는 것보다 과학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그리고 그들을 위해 결정을 내려주는 것보다 사회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인간이 가진 문제에 대해 바로 정답을 내어 놓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과학자도 그런 역할을 해서는 안됩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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