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의 변수들
다음달 1일 독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와 제1야당인 사민당의 스타인브뤽(Peer Steinbrück) 당수의 TV 토론을 시작으로 독일은 본격적인 총선 정국에 돌입합니다. 더딘 속도지만 유로존 위기로부터 벗어나고 있고, 녹색당을 비롯한 야당이 주장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유권자들에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던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메르켈 총리의 기민(CDU)-기사(CSU) 연합의 승리는 떼어 놓은 당상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스노든(Edward Snowden)의 폭로로 알려진 미국, 영국 정보당국의 불법 도청, 감청 문제가 불거지면서 메르켈 총리는 졸지에 완전히 수세에 몰렸습니다. 아직까지 도청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비밀경찰 게슈타포(Gestapo)와 동독의 정보기관 슈타시(Stasi)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독일 유권자들의 79%는 메르켈 총리와 정부가 미국 정보기관의 독일 국민에 대한 도청, 염탐 사실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민당(SPD)을 비롯한 야당은 이 문제가 불거진 뒤로 줄기차게 공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수세에 몰려 고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당 지지율을 보면 메르켈 총리가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민-기사 연합은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독일 유권자들이 정당에 투표하지 않고 대통령을 뽑을 때처럼 단일 인물에 투표한다면 메르켈 총리가 60% 넘는 득표율로 당선될 만큼 메르켈의 인기는 여전히 탄탄합니다. 여기에 메르켈 총리가 연정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고 공표했던 자민당(FDP)이 의석을 얻는 데 필요한 최소 득표율인 5% 이상을 획득하면 우파 연정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우파 연정이 과반을 득표하지 못하면 연정 구성에는 수많은 셈법이 동원될 전망입니다. 일단 사민당은 녹색당을 제1 연정파트너로 여기고 있지만, 두 정당이 득표를 합쳐도 과반을 달성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군소 좌파 정당들을 끌어모을 경우 녹색당과 마찰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메르켈 총리가 처음 집권했을 때처럼 기민당과 사민당의 대연정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대연정의 총리 시절, 이념적인 수사를 자제하며 사민당이 요구했던 최저임금 인상과 연금법 개정 등 사안에서 양보하며 큰 잡음 없이 연정을 이끌었습니다. 유권자들도 52%나 기민-사민 연정에 찬성한다고 답했으며, 69%는 기민당과 사민당 사이에 별다른 정책적 차이를 못 느낀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정권교체를 부르짖어 온 스타인브뤽 당수가 들으면 굉장히 섭섭할 여론조사 결과지만, 사민당은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 당내 전열이 정비되지 않은 모습입니다. 유권자들이 대체로 현재 정권에 큰 불만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연정을 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두 달 남짓 기간동안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관련 사실 등 선거판을 뒤흔들 변수는 여전히 많습니다. 이번 독일 총선은 섣불리 예측하기 쉽지 않은 선거입니다.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