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실리콘밸리 신사옥이 보여주는 기업 문화
금일 삼성전자가 3억달러를 들여 산호세 북미 신사옥 신축에 들어갔습니다. 한 기업의 본사는 그 기업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삼성의 새 건물은 어떤 기업 철학을 보여줄까요? 궁금해진 저는 건축비평가들에게 설계도면을 보내 이 기업이 어떤 기업일지 유추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삼성임을 밝히지는 않고요.
LA Times의 건축비평가인 Christopher Hawthorne은 외관은 소박한 반면 내부 시설에 신경을 많이 쓴 인상이라 평했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 다부지고 대칭으로 각이 딱 잡힌 빌딩은 60-70년대 사무실을 연상시킵니다. 수평으로 잘라논 띠는 이 건물이 수직적이고 압도적으로 보이는 걸 막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한편 내부는 임직원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증진시키려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합니다. 최근 페이스북, 애플 같은 IT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우연한 대화를 유도해 창의력을 끌어올리는게 추세입니다.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가 재택 근무를 금지한 것도 같은 맥락인데, 이 건물도 외부는 황량하나 한번 캠퍼스에 들어오면 에너지가 넘치고 편의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어 계속 안에 머물고 싶게 만듭니다. 도넛처럼 생긴 애플의 신캠퍼스처럼 혁신적이진 않으나, 애플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듯 태양열 패널 등으로 건물을 살짝 감춰놓아 외부와 거리를 두었습니다.
Dallas Morning News의 Mark Lamster는 실용적이며 쾌적한 업무환경을 조성하는 건물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외부를 차단해버리는 느낌을 준다는 데는 동의했습니다. 최첨단기술과 자연환경을 사용해 아름다운 고급 빌딩을 지었으나 기본적으로 배타적이고 임직원이 건물내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게 독려한다는 거죠. 삼성은 실제로 직원들 근무시간이 매우 긴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에는 직원들이 먹고자며 몇달간 집중해 일할 수 있게 지원하는 연수원(Value Innovation Program Center)까지 있다고 하죠.
Design Observer의 Alexandra Lange 도 최근 실리콘밸리 IT기업트랜드를 모두 따른다고 평가합니다. 무한 루프 복도, 자연친화적인 벽과 천장, 훌륭한 피트니스 시설,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콜라브레이션을 유도하는 것도요. “소셜미디어의 우연한 만남을 건축으로 재현한달까요.” 그러나 정면이 주는 1970년대 사무실 같은 딱딱한 느낌이 내부의 긴 산책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덧붙였습니다. “IBM이 1964년에 지은 사옥을 현대판으로 다시 멋있게 짓는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은데요?”
이 반응들을 모으면서, 저는 모두 비슷한 얘기들을 하고 있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기업들이 외국에 진출할때 현지화하려 노력을 많이합니다. 제가 놀란 것은 삼성도 철저히 “실리콘밸리 규칙”을 따르고 있었다는 거죠. 자연친화적인 공간, 피트니스 시설, 여기저기서 우연히 만나 떠들수 있고, 반바지를 입은 캐쥬얼한 청년부터 프라다 가을자켓을 차려입은 멋쟁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이미지를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캐쥬얼해 보이는 이면에는 경쟁적이고 일에 파묻혀 열심히 일하는 모습도 담아놓았습니다. 실리콘밸리 기업이라 불릴 수 있을정도까지 딱 받아들인 건축이라는 느낌입니다. (The Atlan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