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물리학의 거장들에 대한 프리먼 다이슨의 회상(1/2)
2017년 5월 22일  |  By:   |  과학  |  1 comment

사람들은 프리먼 다이슨이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가 지금 92살이고 지난 세기의 과학 혁명을 일선에서 지켜보았기 때문, 혹은 그가 한스 베테와 볼프강 파울리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리처드 파인만에 이르는 20세기 물리학의 거장들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이슨은 오늘날 과학계의 현인 중 한 명이며, 만약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바로 그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이슨은 수에 대한 재능과 함께 영국에서 성장했습니다. 2차대전 동안 그는 영국 공군에서 독일의 폭격 지점을 계산하는 일을 했습니다. 전쟁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와 원자폭탄을 만든 여러 물리학자와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당대 여러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원자폭탄에 대한 흥분은 그를 물리학으로 이끌었고, 후에 그는 원자폭탄을 이용해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 우주 선단의 제작을 꿈꾸게 됩니다. 그가 냉전 중에 무기로의 원자폭탄을 반대하는 인물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는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에서 60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이슨은 자신을 고슴도치보다는 여우에 비유합니다. (역주: 고슴도치는 한 가지 문제를 파고드는 사람을, 여우는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는 여러 주제를 넘나드는 것이 과학자에게 더 즐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지만, 여전히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이슨은 이미 우주의 많은 것이 밝혀졌다는 점에 만족하면서도, 또한 아직 물리학이 우주를 설명하는 고전 이론과 원자를 설명하는 양자 이론을 통일하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즐기고 있습니다.

내가 다이슨에게 과학계의 영웅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는 “나는 철학보다는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나는 그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와 철학을 모두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이슨은 시대에 뒤떨어진 박사학위 제도의 문제점이나 거대과학이 가진 문제와 같은 도발적인 주장을 이야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지만, 시종일관 겸손함을 유지하며 유머를 섞었습니다.

Q: 선생님은 어릴 때 커서 과학자나 수학자가 될 것을 알았나요?

A: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원래는 과학보다 수학을 더 좋아했지만, 인기 있는 과학책을 많이 보게 되었고 과학에도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나는 아서 에딩턴, 제임스 진스, 그리고 H.G. 웰즈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들은 과학을 흥미로워 보이게 만들 줄 알았어요. 줄 베른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한 별을 탐험하는 이야기인 헥터 세베닥을 읽은 것이 여덟 살 때일 겁니다. 나는 그 소설이 진짜인 줄 알았고, 그게 그저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무척 실망했지요.

Q: 대학 때 왜 수학이 아닌 물리학을 택하게 되었나요?

A: 한 가지 이유는 원자폭탄 때문입니다. 나는 전쟁 당시 영국에 있었지요. 우리는 원자폭탄이란 걸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갑자기 히로시마에 폭탄이 떨어졌고 전쟁이 끝났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마무리한 그 물리학자들에게 커다란 감사의 마음을 느꼈고 폭탄을 만든 물리학자들을 만나 그들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알고 싶었죠.

Q: 당시 선생님에게 영웅이었던 과학자가 있었나요?

A: 물론이죠. 매우 인기 있는 책을 쓴 생물학자인 J.B.S. 홀데인이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죠. 내가 캠브리지에서 알게 된 하디, 리틀우드, 베시코비치도 위대한 수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당구만 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베시코비치는 훌륭한 당구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운 좋게 어릴 때 아버지가 당구대를 사주셨기 때문에 이 그룹에 바로 낄 수 있었습니다. 수학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으면, 나는 당구를 시작했고 곧 대화는 수학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Q: 2차대전이 끝나고 1940년대 후반, 선생님은 코넬 대학원으로 진학해 당시 물리학의 거장이던 한스 베테와 일하게 되었죠. 그가 선생님의 멘토가 된 건가요?

A: 그렇습니다. 그는 매우 훌륭한 분이셨죠. 학생들을 매우 잘 다뤘습니다. 지도해야 할 학생이 무척 많았지만,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너무 어렵지도 않고 너무 쉽지도 않은, 딱 적절한 문제를 내주었습니다. 멘토로 삼기에 이상적인 분이었지요. 나는 그에게 많은 빚을 졌어요.

Q: 선생님이 받은 적절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A: 나는 당시에 막 떠오르던 문제인 양자 분자 동역학과 관련된 문제를 받았습니다. 컬럼비아의 한 실험 그룹이 전쟁 중에 개발한 도구를 가지고 수소 원자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웨이브는 전쟁 중에 레이더를 위해 개발되었지만, 또한 양자 역학을 높은 정확도를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도구였죠. 윌리스 램이 이끄는 그 그룹은 수소 원자를 건드린 후 수소의 에너지 레벨을 매우 높은 정확도로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는 고전 양자 역학과 맞지 않았고, 새로운 것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베테는 문제가 뭔지를 알았던 것이죠. 원자가 가진 전자기 파장에 대한 반응을 원자의 움직임과 결합하면 실험 결과와 맞는 값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베테는 여러 단순한 가정을 통해 대략적인 값을 계산했고 비슷한 값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내게 같은 계산을 더 정확하게 하라고 시켰지요.

Q: 그때 선생님은 리처드 파인만을 만났고, 그와 함께 양자 전기동역학을 만들게 되었군요.

A: 나는 그와 동료로 일한 것은 아니에요. 물론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죠. 그는 젊은 교수였고 나는 그저 한 명의 학생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물론 그는 천재였습니다. 그는 한편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하기 좋아했기 때문에 늘 관객을 필요로 했습니다. 나는 즐겁게 그 관객 역할을 맡았습니다.

Q: 파인만은 다른 과학자들과 어떻게 달랐나요?

A: 그는 극히 독창적이었습니다. 그는 과학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다른 누구와도 달랐어요.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수식을 전개하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수식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답을 얻어내지만, 파인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파인만은 수식도 없이 바로 답을 썼어요. 그는 수식 대신 그림을 몇 개 그렸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마법처럼 보였죠. 그는 머릿속에 그런 그림들이 있었고, 종이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작은 그림 몇 개를 그렸어요. 나는 파인만이 한 일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일을 하곤 했습니다.

Q: 선생님은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A: 그렇죠.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 불필요한 과정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

Q: 박사 학위를 원하지 않았나요?

A: 전혀요. 나는 박사 제도를 싫어합니다. 나는 그 제도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 중에 끝이 좋지 않았던 사람을 세 명이나 알고 있습니다. 한 명은 자살했고, 두 명은 정신 병원으로 갔습니다. 내가 박사제도를 비난하는 것은 그런 점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비극을 안겨주지요.

Q: 왜 그랬나요? 박사 과정이 사람을 갉아먹기 때문인가요?

A: 그렇죠.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전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박사 제도는 19세기 독일 학계를 위해 고안된 것인데, 그 상황에서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상황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너무 긴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이 연구자가 되기를 원치 않음에도 연구자가 되고 싶은 척해야 합니다. 지금은 일종의 노조원 자격증이 되었고, 동시에 매우 파괴적이며, 특히 여성에게 불리합니다. 여성에게 5년에서 10년의 세월을 낭비하는 건 남성에게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Q: 가족을 이루는 문제 때문일까요?

A: 그렇죠.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시계가 있습니다. 여성에게 이는 더 빨리 돌아가지요.

Q: 당시 프린스턴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수많은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인슈타인을 알았나요?

A: 아니요, 그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세미나에도 오지 않았고, 점심시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요. 우리는 그가 산책하는 것을 매일 보았습니다. 전 세계가 그를 요구했고, 이 때문에 그는 무척 바빴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매일 찾아왔지요. 높은 위치의 사람들이 그를 방문했고, 그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인사할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Q: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들리네요. 그러니까 새로운 세대와 이야기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 아니었다는 뜻이죠?

A: 그렇습니다. 그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에게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그가 지속했던 본인의 연구 주제였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것으로 그는 그 일에도 뛰어났습니다. 그는 국가 간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였고, 그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Q: 전쟁과 평화 같은 문제 말이지요?

A: 그렇죠. 그리고 시민의 자유에도 관심을 가졌지요.

Q: 처음 프린스턴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아인슈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요?

A: 당연히 나는 그를, 과학자로 그리고 공인으로 엄청나게 존경했지요. 우리는 그가 위대한 사람이란 것을 알았지만, 또한 그를 일종의 과거의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과학의 새로운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요. 우리가 아는 한,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도 아마 비슷하게, 곧 우리 젊은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Q: 과학에서 그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뜻이죠?

A: 바로 그렇습니다. 그는 전쟁 후 출발한 물리학의 버스를 놓친 거죠.

Q: 닐스 보어는 종종 고등과학원을 방문했습니다. 그와도 알고 지냈나요?

A: 네. 그는 아인슈타인과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죠. 보어는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나이였지만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어요. 그는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고, 그 주제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우리에게 좋은 조언을 주었어요. 그는 분명 과학계의 한 영역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했고, 점심에도 모습을 보였지요. 우리는 그와 여러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Q: 프린스턴을 방문한 다른 수많은 물리학자가 있지요. 볼프강 파울리는 어땠나요?

A: 나는 그와 매우 친했어요. 물론 내가 스위스에서 그와 함께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죠. 그는 취리히의 교수였습니다. 나는 취리히에서 6개월을 지냈고, 그를 매일 만났지요.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점심을 먹은 뒤 산책하기를 좋아해 내게 같이 산책을 권했고 우리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이야기를 알았고 농담도 매우 잘했습니다. 그는 젊은 사람들과 계속 어울렸습니다.

Q: 그와 산책할 때 물리 이야기를 주로 했나요? 아니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A: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심리학을 좋아했어요. 그는 융의 친구였습니다. 자신이 융에게 직접 정신분석 받은 일을 자주 이야기했지요.

Q: 볼프강 파울리와 칼 융 사이의 우정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더군요. 융은 다양한 초자연적 현상을 믿었고 파울리도 그렇다고 하고요.

A: 맞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상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기도 했어요. 그는 한 번도 지나치게 진지하지는 않았어요.

Q: 파울리가 과학자로서 특별했던 점은 무엇일까요?

A: 그를 다른 이들과 구별 지은 가장 큰 특징은 그의 거침없는 독설이었습니다. 모두 그를 두려워했지요. 그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심술궂게 굴었어요. 내가 취리히에서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기억납니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막 스위스로 온 줄리안 슈빙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슈빙거는 당시 뛰어난 연구 결과를 발표했던 똑똑한 미국의 젊은 학자였죠. 그는 파인만의 라이벌이었고, 두 사람은 당대의 손꼽히는 천재였습니다. 파울리는 슈빙거가 이야기한 모든 것은 어느 정도 말이 되지만, 다이슨의 논문은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나는 그때 친구였던 마커스 피어츠와 등장했는데, 그는 눈을 반짝이며 파울리에게 다가가 “여기 내 친구 프리먼 다이슨을 소개합니다”라고 말했지요. 파울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 괜찮아요. 그는 독일어를 모르니까.” 사실 나는 독일어를 알았어요. 어쨌든 그건 재미있는 만남이었고 우리는 첫날부터 친구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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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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