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계를 정복하다(1/2)
2017년 4월 3일  |  By:   |  과학  |  No Comment

어느날 아침, 양말을 신기 위해서는 침대에 누워 발을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된 마리아 브린드는 자기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몸이 너무 뻗뻗해져 도저히 서서는 양말을 신을 수 없었죠. 나는 평생 몸을 써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일은 내게 더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1993년, 40대 후반의 브린드는 체조 선생님과 장애인 간병인의 두 가지 직업을 모두 그만 두어야 할 상태가 되었습니다. “나는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7년 뒤, 그녀는 마침내 전혀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무릎, 발목, 손목, 팔꿈치, 어깨 관절에는 모두 염증이 생겼습니다. 이는 신체가 자신의 세포를 공격하는, 치료가 불가능한 자가면역성 질환이며 류마치스성 관절염이라고 불립니다.

한 때 류마치스성 관절염 병원의 환자 대기실에는 휠체어를 탄 이들로 북적거렸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기술을 이용한 단백질로 만든 바이오의약품이라는 신약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이 약이 모든 이에게 통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의료제도가 잘 정비된 나라에서도 50%의 환자들은 여전히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다른 환자들처럼 브린드 역시 진통제와 면역 반응을 줄이는 메쏘트렉세이트라는 항암제, 그리고 특정한 염증 단백질을 차단하는 바이오 의약품을 복용했습니다. 이 약들은 매우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어느 날 갑자기 이 약들은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가족과 휴가를 보내고 있었어요. 갑자기 내 관절염이 심해졌고, 나는 걸을 수 없게 되었죠. 사위가 나를 씻겨주어야 했어요.” 브린드는 병원으로 실려갔고 정맥주사와 함께 백혈구에 작용하는 항암제를 맞았습니다. “그 약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때 마침 뇌가 어떻게 신체의 면역 체계를 조절하는 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바꿀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었습니다. 이 치료법은 신경계를 이용해 염증을 조절함으로써 류마치스성 관절염 뿐 아니라 다른 자가면역 질환을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론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분야는 우리의 마음이 병의 치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많은 혁신적인 발견처럼, 이 기술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실험에서 출발했습니다.

신경 사냥꾼

뉴욕의 신경외과의사인 케빈 트레이시는 개인적 상처를 삶의 목적으로 승화시킨 사람입니다. “내가 다섯 살 때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죠. 나는 뇌의 신경이 사람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사건은 그를 뇌전문 외과의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수련을 받던 중 심각한 염증 때문에 고열로 고통받던 아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내 팔에서 세상을 떠난 그녀는 재니스라는 이름의 11개월 된 아기였습니다.”

이 사건은 그를 염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한 우연한 실험 결과를 새로운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자신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실험은 바로 그가 90년대 말, 쥐의 뇌를 가지고 하던 실험이었습니다. “우리는 뇌졸중에 있어 뇌에 염증을 막았을 때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었고, 이때문에 항염증제를 쥐의 뇌에 주입했습니다. 그리고 뇌에 항염증제가 있을 때에는 비장을 포함해 신체의 다른 장기에도 염증이 생기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주사한 항염증제의 양은 이 약이 혈액을 통해 다른 신체로 운반되어 작동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작은 양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몇 달을 고민한 그는 마침내 뇌가 미주신경(vagus nerve)이라는 신경계를 이용해 비장에게 다른 신체의 염증 반응을 멈추게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 가설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트레이시가 옳다면, 신체의 염증은 뇌에 의해 직접 조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체의 각종 장기와 혈액에 들어 있는 면역 세포들과 신경계의 전기적 연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트레이시는 두 시스템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첫 번째 실험은 미주 신경을 절단하는 것이었습니다. 트레이시와 그의 연구팀이 쥐의 미주 신경을 절단하자, 뇌에 주입된 항염증제는 더 이상 신체의 다른 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실험은 항염증제 없이 신경만을 자극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주 신경은 다른 모든 신경과 마찬가지로 전기 신호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뇌의 미주신경에 신경 시뮬레이터를 집어 넣어 비장의 염증을 막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매우 혁신적인 실험이었고, 우리는 그 가설이 실험으로 보였습니다.”

방황하는 신경

뇌에서 이루어진느 인지작용 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동작하는 미주신경은 우리 몸의 건강을 책임지는 신경입니다. 위험에 대한 반응으로 분비된 아드레날린에 의한 스트레스 반응, 곧 “투쟁 또는 도피” 상태로부터 각 장기를 진정시키는 부교감신경의 핵심이 바로 미주신경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미주신경이 똑같은 성능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보다 강력한 미주신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스트레스 이후 신체를 더 빠르게 진정시킬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미주신경 반응의 강도는 미주신경 긴장도(vagal tone)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심박을 측정하는 ECG 그래프를 통해 측정할 수 있습니다. 숨을 들이 마실 때 심장은 보다 빠르게 산소를 담은 피를 신체로 보내기 위해 펌프질을 하게 됩니다. 숨을 내쉴 때는 심박이 느려집니다. 이 속도의 변화는 숨을 내쉴 때 미주신경이 활성하되고 들이쉴 때 억제되는 방식으로 미주신경에 의해 조절됩니다. 즉, 심박 수의 변화가 크다는 것은 미주신경 긴장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 연구결과들은 이 미주신경 긴장도가 높을 때 혈당 조절이 원활하며 당뇨, 뇌졸중, 심혈관 질환의 가능성 또한 낮아짐을 보입니다. 한편 미주신경 긴장도가 낮을 경우 만성 염증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염증은 면역 체계의 일부로써, 부상으로부터 상처를 치료하는 역할을 하지만 염증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존재할 경우 장기나 혈관에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미주신경은 바로 면역체계에 저항해 염증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차단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미주신경 긴장도가 낮을 경우 이러한 조절 능력이 약해지며 그 결과 마리아 브린드의 류마치스성 관절염이나 어린 재니스의 사인이라고 케빈 트레이시가 생각하는 독성 쇼크 증후군의 원인이 됩니다.

류마치스성 관절염 등의 다양한 만성 염증과 관련된 질병에 있어 미주신경의 역할에 대한 증거를 찾은 트레이시와 그릐 동료들은 미주신경을 이용해 사람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미주신경은 뇌와 장기 사이에 양방향으로 전기 신호를 전달합니다. 트레이시는 만성 염증의 경우 뇌로부터 비장에게 특정한 염증 단백질, 곧 종양 괴사 인자(tumour necrosis factor, TNF)라 불리는 단백질의 생산을 멈추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신호를 키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는 다음 십 년을 TNF 를 조절하는 신경 경로를 뇌간에서부터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조사하며 보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주신경이 어떻게 염증을 조절하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트레이시는 이제 이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2부로

(모자이크)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