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론이 낙종한 미국 대선
2016년 11월 10일  |  By:   |  세계, 정치  |  2 Comments

옮긴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언론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면 적어도 이번 대선 예측과 관련해 그 창에 비친 세상은 현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뉴욕타임스 업샷은 지지 후보 여론조사가 나올 때마다 전망치를 업데이트하던 “Who Will Be President?” 페이지를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개표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업데이트 시점까지도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은 85%도 트럼프를 압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뿐 아니라 우리가 이름을 들어봤음 직한 거의 모든 언론과 언론인의 예측이 빗나갔습니다.

앞서 구글의 검색어를 분석해 트럼프의 승리를 점쳤던 인공지능이 있다는 기사가 몇몇 언론에 소개됐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판단해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대선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마음먹은 저도 대다수 미국 언론의 예측이 이토록 빗나가리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몰고 올 변화에 대해서는 차차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먼저 표심을 읽어내는 데 완전히 실패한 언론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미디어 칼럼니스트 짐 루텐버그(Jim Rutenberg)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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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을 보도하며 미국 언론은 너나 할 것 없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유례없이 정교한 예측 모델을 개발했다며 온갖 눈부신 기술을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결국에는 선거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어젯밤 미국 언론은 결과적으로 수없이 많은 여론조사를 분석했음에도 정작 투표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민심과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번 낙종은 모든 언론사에 대단히 뼈아픈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여론조사를 분석해 내놓은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한 언론사나 여론조사 기관은 없었습니다.

여론조사의 방법론이 잘못됐다거나 그저 데이터를 잘못 읽어내서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미국 유권자의 다수가 이번 투표를 통해 드러낸 분노와 소외감, 배신감, 불신을 언론이 전혀 읽어내지 못했던 것이 문제입니다.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라는데 우리 집 살림살이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세계화다 무역협정이다, 아무리 떠들어봤자 결국 내 일자리만 없어지는 끔찍한 일인데 이를 앞장서서 추진하는 금융 자본과 이를 두둔하는 워싱턴 엘리트 정치인, 주류 언론까지 유권자들은 ‘나를 대변해줄’ 세력을 찾지 못해 지쳐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리가 있겠느냐고 스스로 묻고 답할 때 그 상식이 유권자들에겐 전혀 통용되지 않는 상식이었음에도 기자들은 자신들의 느낌에 부합하는 여론조사 결과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다고 말하는 지지자들은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며 희망 고문에 시달리고 있는 불쌍한 이들처럼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현실과 동떨어져 있던 이들이 기자였다는 사실이 극적으로 밝혀진 셈이지만요.

수많은 유럽 언론이 브렉시트 투표에서 시쳇말로 ‘물을 먹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입니다. 이미 선거를 한 달도 더 남겨둔 시점부터 “사실상 게임은 끝났다”는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FBI가 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이례적으로 클린턴의 이메일을 재수사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대세에는 지장 없다”는 부류의 기사가 주를 이뤘습니다.

허핑턴포스트는 “압승은 아니겠지만, 여유 있게 승리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투표 당일까지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이 80%를 넘는다는 전망치를 그대로 웹사이트에 띄워 놓은 뉴욕타임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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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당일까지도 오바마의 후계자는 클린턴이 될 것이 확실시됐습니다. 개표와 함께 언론은 참패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프: 뉴욕타임스 웹사이트 갈무리)

출구 조사 결과가 모이고 실제 개표가 시작된 뒤 몇 시간 동안 언론사들은 자기를 치고 간 버스를 어떻게든 붙잡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굳건하던 클린턴의 우세는 개표가 시작된 지 몇 시간 만에 무너졌고, 동부시각 10시 반에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93%로 정정됐습니다. CNN의 존 킹 기자는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여론조사) 데이터를 갖고 분석을 쏟아냈던 것 같다.”며 트럼프의 승리 소식을 전했습니다.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데이터에 휘둘려 사실이 아닌 것을 보도해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전하지 못했다면 이는 결국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휴대전화 응답률을 비롯해 여론조사 방법론에 관한 수많은 우려와 비판도 당연히 다시 한 번 제기됐습니다. 민주당 여론조사 전문가인 스탠리 그린버그는 화요일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론조사가 엉망인 건 사실인데, 잘못된 부분 가운데 적잖은 부분이 여론조사의 해석 방법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화당 전략가인 마이크 머피는 MSNBC에 출연해 자신의 예측도 완전히 빗나갔다며 “데이터 기반 분석은 오늘 밤 사망했다.”고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언론은 결국 트럼프의 부상부터 탄탄한 지지를 확보하고 확산하는 일련의 과정을 매번 놓친 셈이 됐습니다. 단지 여론조사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이제 와서 보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기층 대중의 저항감과 분노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언론의 편협함이 문제였던 겁니다.

정치는 물론 숫자 놀음이 아닙니다. 민심을 데이터가 정확히 읽어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선거에서 누가 이길 것이냐에 관한 예측을 시시각각 전하는 게 정치 뉴스의 첫 번째 역할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 보도도 결국 이런 경마식 보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만약 여론조사 결과가 클린턴의 압승을 잇달아 예견하지 않았다면 어젯밤 결과는 달라졌을까요? 아마 트럼프의 지지율이 이만큼 나오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건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했을 겁니다. 어쨌든 트럼프는 경선 과정을 거쳐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됐으니까요. 트럼프가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들을 어떻게 실천할 생각인지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취재해 보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멕시코와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쌓겠다는 공약에 필요한 예산을 의회에 뭐라고 설명하며 요구할지, 기자를 고소하기 쉽게 하겠다는 공약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테러 용의자는 미국땅에 발도 못 들여놓게 하겠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등을 말이죠.

트럼프가 처음도 아닙니다. 언론은 2008년 이후 미국 사회의 굵직굵직한 포퓰리즘의 부상을 매번 예상하지 못하고 놓쳤습니다. 티파티의 등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결과 2010년과 2014년 두 차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지도부와 티파티 사이의 권력 투쟁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트럼프는 등장에서부터 언론의 예측을 번번이 비웃기라도 하듯 뛰어넘었습니다. 언론은 다음번에는 반드시 사안을 더 정밀하게 분석해 틀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해놓고도 또 틀리기를 반복했습니다.

보수 논객인 로드 드레허는 앞서 대부분 기자가 “보수적 종교, 시골 사람들, 노동자 계급, 백인 빈곤 계층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일갈했습니다.

언론사들은 밑바닥 민심을 훑고 더 꼼꼼히 살피는 데 실패했다며 더 많은 기자를 현장으로 보내려 할지 모릅니다. 유권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민심을 파악하는 건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다만 지역적으로 관심을 덜 기울였던 중부 시골 마을까지 취재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멀어서 못 갔다는 건 핑계입니다. 롱아일랜드나 퀸스, 마이애미 근교나 심지어 시카고 도심 한복판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읽지 못했으니까요.

특히 백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 나라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트럼프의 거짓말이나 탈세 의혹, 부당한 경영, 부적절한 개인적 처신 같은 건 아무리 보도해봤자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정부도, 경제 체제도, 그리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듯이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사도 물론 전부 다 망가졌습니다. 무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잘못된 체계를 고칠 방법이 있을 겁니다. 다만 이번에는 이를 한꺼번에 다뤄야 할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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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겔루스 노부스

    좋은 이야기인데 “쟁쟁한 후보들” 이란 말은 틀린거 같군요. 만약 공화당에 매케인이나 뢈니가 있었다면 순순히 트럼프가 되었을까요? 크루즈나 루비오 케이식 같은 약체들에, 사람들은 간과했지만 결국 클린턴도 강점만큼이나, 아니 강점 이상으로 약점이 많은 후보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정치분석에서 구조적 접근은 당연히 기본이지만, 특정 시기에 어떤 인물들이 플레이어인가, 하는 부분을 간과해서는 정치분석은 성공하기 힘듭니다. 트럼프는 미국 시스템의 진폭의 틈새에서, 그 진폭이 가장 저조한 틈에 파고 들어온 측면이 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시스템도 강세와 약세흐름이 엇갈리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선, 그 역시 구조적 이유인 것입니다.

    • http://www.newspeppermint.com ingppoo

      앙겔루스 노부스 님, 지적 감사드립니다. 사실 ‘쟁쟁한 후보’ 부분은 원문에는 없는 내용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제가 임의로 넣었던 부분입니다. 자의적으로 집어넣는 문장인 만큼 최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했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만 정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 과정이 상당히 오랜 기간 반복되며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공고화된 미국에서 어쨌든 가장 경쟁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골라 후보로 추대하고자 하는 원칙이 무너지지는 않았던 공화당 경선이었기에 거기 참가했던 후보들을 ‘쟁쟁한 후보’라고 표현했던 겁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표현을 다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