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이 직접 감독이 되는 축구팀, 유나이티드 런던 FC
2016년 9월 29일  |  By:   |  스포츠  |  No Comment

얼핏 보면 평범한 다른 아마추어 축구팀의 주말리그 경기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런던의 한적한 공터 잔디밭을 빌려 축구 골대를 가져다 놓고 펼쳐지는 경기. 필드 주변에는 여느 게임에서도 볼 수 있는 물병, 여분의 축구공, 몸을 풀고 있는 교체명단에 든 선수들이 있습니다. 경기 전에 골대에 그물을 묶는 것도 선수들이 직접 합니다. 아마추어 리그니까요. 관중이라고 해봤자 구단 관계자와 개 한 마리 정도가 다입니다.

그런데 어느 축구팀에나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이 한 명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감독입니다. 코치나 트레이너로 보이는 사람들은 있는데 분명 감독은 없습니다. 이 팀의 감독은 따로 있습니다. 수백, 수천 명의 팬이 매 경기 선발 라인업을 정하는 감독의 역할을 나누어 맡습니다.

유나이티드 런던 FC. 올해 창단돼 잉글랜드 전체에서 12부리그에 해당하는 영국 에섹스 연맹 프리미어리그(Essex Alliance Premier League)에 참가해 경쟁을 펼치고 있는 팀입니다. 유나이티드 런던 FC는 세계에서 유일한 ‘감독 없는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많이 쓰이는 시청자 투표나 온라인 팬투표 방식, 그리고 축구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풋볼매니저(FM) 류의 게임에서 사용하는 통계나 스카우팅 리포트를 한데 묶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팬들이 직접 그날의 선발 명단을 작성해 투표하고 투표 결과로 정해진 선발 라인업으로 경기를 치르는 겁니다. 팬들은 판타지 축구 게임에서처럼 선수의 출전 여부, 활약상에 따라 점수를 얻거나 잃습니다. 득점이나 도움을 기록하고, 수비수가 무실점 경기를 펼치거나 골키퍼가 페널티킥을 막아내면 득점, 옐로카드를 받거나 퇴장 당하면 감점인 식입니다.

“프로로 간주되지 않는 아마추어 리그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거든요. 모든 팬의 관심은 잘 아시다시피 프리미어리그에 쏠려 있으니까요. 그래서 차별화를 꾀한 겁니다. 많은 아마추어 팀들은 지역과 밀착해 연고를 형성하고 뿌리를 내리려 하는데, 저희는 온라인의 잠재적인 팬층에 눈을 돌렸죠.”

구단주 마크 노스(Mark North, 38)의 말입니다.

9월 3일 올 시즌 첫 번째 경기를 치른 유나이티드 런던 FC 홈페이지에는 (기사가 소개된 9/20일 기준) 약 2천여 명이 등록해 매주 선수 선발에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영국뿐 아니라 호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캐나다, 스웨덴, 미국 등 전 세계 각지에서 팬들이 모였습니다.

매주 팬들은 선수들의 경기 기록과 스카우팅 리포트, 지난 경기 영상 등을 토대로 선발로 뛰어야 할 선수를 뽑아 투표합니다. 경기 전날인 금요일 투표가 마감되는 동시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그주의 베스트11이 발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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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이티드 런던 FC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뉴저지 주 애버딘에 사는 축구팬이자 유나이티드 런던 FC의 감독 중 한 명인 존 프루시안트(19) 씨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고 말합니다.

“팬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니까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레알마드리드 팬들에게 지단 감독이 이번주에 호날두를 선발로 쓸지 말지 물어보지는 않잖아요. 물론 프로팀의 경우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요.”

구단주 마크 노스는 원래 금융권 인사 업무를 맡던 회사원이었습니다. 지난해 어느 토요일 밤, 아내와 TV를 보던 중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채널 어디를 돌려도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경연 프로그램을 보다가 노스는 그 프로그램들에서 흔히 사용하는 시청자 투표, 온라인 팬투표 방식을 축구에 접목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다음 라운드 진출 여부와 당락이 시청자 투표에 달렸듯이 유나이티드 런던 FC 선수들도 팬들의 선택을 받아야만 선발 명단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노스는 우선 선수들부터 채워야 했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팀에 선수를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노스는 잉글랜드 유수의 클럽마다 운영하는 유소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프로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저무는 수많은 유망주를 떠올렸습니다.

18살이 될 무렵 프로팀과 정식 계약을 맺는 선수는 많지 않습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당장 축구 말고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선수들에게 유나이티드 런던은 다시 한 번 꿈을 위해 도전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곳입니다. 구단 엠블럼도 불길을 뚫고 솟아오르는 불사조를 형상화했습니다.

새로운 축구팀과 (프로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유소년 아카데미 졸업생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 풋볼 커리어 센터(Football Careers Centre)의 존 윌리스(Jon Willis) 센터장은 유나이티드 런던 FC의 여름 선수선발전을 주최하고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8, 19, 아니 20살이 될 때까지 이력서 한 장 없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윌리스는 유나이티드 런던 FC가 좌절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더 좋은 무대에서 뛰는 꿈을 위해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고 말했습니다.

“매 경기를 구단이 손수 녹화하고 분석하거든요. 그것 자체가 다른 팀의 스카우트나 팬들에게는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죠.”

이미 많은 선수들이 유나이티드 런던 FC의 소문을 듣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축구선수로서 두 번째, 세 번째, 심지어 네 번째 도전에 나선 이들도 있습니다. 터키 유소년 국가대표 출신 선수부터 (구단이 직접 매긴 순위라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영국을 통틀어 네 번째로 발이 빠른 선수, 그리고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의 조카도 있습니다.

벨기에 3부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는 조르제 케코타는 유나이티드 런던 FC의 공격수입니다. 26살로 팀에서 고참에 속하는 그는 팬들이 선발 명단을 결정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너무 신경쓰지는 않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제게 출전 기회가 주어지면 그만큼 팬들이 저와 팀에 대한 저의 공헌을 좋게 봐주신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말죠.”

아직 유나이티드 런던 FC의 서포터들은 선발 명단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즉, 투표 결과는 경기 전에 베스트11을 뽑는 데만 영향을 미치죠. 아직 팬들이 이용하기에 깔끔하게 정리된 웹사이트라고 보기는 좀 어려운 — 노스도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 구단 홈페이지에 가면 각 포지션 별로 선수를 채워넣어 나만의 베스트11을 작성한 뒤 투표할 수 있습니다. 선수 위에 있는 별표를 누르면 그 선수가 주장이 되고, 주장이 얻는 점수는 두 배로 계산됩니다. 노스는 선발 명단뿐 아니라 경기 중 선수 교체나 전술 변화에도 팬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경기중에 내리는 결정은 구단의 코치진과 스태프들이 내리고 있습니다.

노스는 2천 명 넘는 팬 가운데 어느 정도가 매주 꾸준히 투표를 하고 유나이티드 런던 FC 소식을 챙겨보는 실제 활동적인 팬인지 숫자는 공개하지도 않을 생각일 뿐더러 구단주로서도 알고 싶지 않은 정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숫자를 알게 되면 자기나 스태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선발 명단에 들도록 투표를 조작하고 싶은 충동이 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단주 노스보다도 점수가 높은 천리안을 가진 감독들이 있습니다. 노스는 매일 선수들을 챙기며 경기 전에 골대에 그물을 다는 등 궂은 일을 같이 하는 건 물론이고 경기 영상을 분석해 패스나 태클 등 기록을 직접 정리해 팬들에게 데이터를 제공하는 일도 직접 챙깁니다. 그런데 매일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다시피 하는 노스보다 누가 활약할지를 기가 막히게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취재를 갔던 지난 9월 중순, 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현재 종합 점수 7등에 머물러 있어요. 스웨덴에 사는 팬이 현재 1등이죠. 상위권에 있는 분들 전부 다 직접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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