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하포드 칼럼] 멀티태스킹: 21세기의 생존술(1/3)
2015년 9월 22일  |  By:   |  과학  |  2 Comments

투명인간이나 공중부양술이 아닙니다. 21세기에 우리가 원하는 초능력은 바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한꺼번에 해내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다른 초능력과는 달리, 이 멀티태스킹은 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기본적인 능력으로 간주됩니다. 여러 대의 모니터를 보며 작업하는 이도 있고, 가게에서 삼겹살과 냉동 오렌지주스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트윗을 날리기도 합니다. 킨들로 책을 읽으며 스마트폰을 만지다가, 가게 구석에 있는 텔레비전 화면 하단에 지나가는 자막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동료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메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그가 몇 분 안에 이 이메일을 확인하리라는 사실을 확신하지요.

현대 사회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멀티태스킹 능력은 읽기나 산수처럼 누구나 가진 능력으로 여겨집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은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린든 존슨이 포드 대통령에 대해 ‘그는 껌 씹는 일과 방귀 뀌는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라는 평처럼 말이지요.

이런 변화는 기술의 발전, 그리고 사회의 변화 모두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더 이상 돈을 벌어오는 일과 가정을 유지하는 일에만 각각 전문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두 영역을 모두 해내야 합니다. 일과 놀이의 경계도 모호해졌습니다. 친구의 이메일이 오전 10시에 오는 반면, 직장 상사의 이메일이 밤 10시에 오기도 합니다. 사무실에서 집에서 먹을 식료품을 주문하기도 하고 슈퍼 계산대에서 줄을 선 채로 직장 동료의 질문에 답하기도 합니다.

여러 면에서 이는 좋은 변화입니다. 전에는 낭비되던 시간에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예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일을 우리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더 이상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고통스럽게 끊임없는 반복작업만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심각한 문제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동시에 처리해야 할 일들의 가짓수는 우리를 압도하며, 또 어떤 순간에도 대기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불편한 느낌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행동 역시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숙제를 하면서 메신저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음악을 듣고 왕좌의 게임 드라마를 봅니다. (미국 노동통계국(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사브리나 파빌로니아의 최근 연구는 고등학생이 숙제를 하는 시간 중 절반 이상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는 등 다른 일을 동시에 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이 모든 일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도 꽤 많습니다.

결국 멀티태스킹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의 현대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해 12월, 이 운동의 한 결과물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 올라왔습니다. 보통의 공책, 수첩보다 훨씬 비싼 $499(약 60만 원)이라는 가격을 단 “더 헤밍라이트(The Hemingwrite)”라는 이 제품에는 작은 바탕 화면과 키보드만 달려있습니다.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으니 이메일도 되지 않고, 유튜브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글자만 칠 수 있을 뿐이죠. 제품 개발에 4억 원 이상의 돈이 모였습니다.

Hemingwrite

지금은 프리라이트(Freewrite)로 이름을 바꾼 이 제품은 반(反) 멀티태스킹 문화의 한 상징입니다. 또 일정 시간 동안 웹브라우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자유(Freedom)”나 “자제(Self-Control)”와 같은 프로그램도 등장했습니다. 워드프레스는 “집중 집필 기능(distraction-free writing)”을 제공합니다. 바덴바덴에 있는 호텔 빌라 스테파니에는 “궁극의 럭셔리(ultimate luxury)”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스위치가 침실 옆에 있습니다. 이 스위치를 켜면 그 방의 무선인터넷은 차단됩니다.

두 가지 문화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한 쪽에는 우리가 어떤 시간에든 준비되어 있기를 요구하는 오늘날의 업무 문화가, 다른 한 쪽에는 멀티태스킹이 자아를 어지럽히며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 쪽일까요?


‘인지 부하’

많은 실험적 사실들이 멀티태스킹보다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편의 손을 들어줍니다. 유타대학 데이비드 스트레이어의 실험을 봅시다. 2006년 스트레이어는 운전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운전 중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과 음주운전을 비교했습니다. 핸드폰을 이용한 이는 술취한 이처럼 공격적이거나 무모하게 운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위험했습니다. 이들은 외부 사건에 대한 반응 속도가 느렸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운전 중 통화가 음주운전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잘 알려진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린 다른 결론 중의 하나는 위의 사실만큼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핸즈프리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결코 위험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화 통화가 위험한 것은 한 손을 핸들에서 뗀 채 운전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뇌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결과는 사람들의 주목을 충분히 끌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운전 중 통화가 불법이지만 핸즈 프리를 사용하는 것은 허용됩니다. 이는 인간에게 손이 둘 뿐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머리가 하나 뿐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스트레이어와 데이비드 산본마츠 등의 다른 연구는 우리가 자신의 멀티태스킹 능력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도 보였습니다. 자신이 멀티태스킹을 많이 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의 실제 멀티태스킹 능력은 오히려 더 나빴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으며 충동 조절에도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이 결과는 어쩌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을 때 이를 멀티태스킹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멀티태스킹이 어떻게 자신을 속이는지를 그 순간에는 알지 못합니다. 나는 2010년 영국 총리 후보들의 토론을 TV로 보면서 트위터를 시작했습니다. 그 일은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후보들의 주장과 트위터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의견을 보고 내 의견을 140자로 요약했으며, 이들이 공유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이 모든 상황을 만끽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토론이 끝난 뒤, 나는 브라운, 카메론, 클레그가 실제로 뭐라고 말했는지를 한 마디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적이 놀랐습니다.

2006년 UCLA의 연구는 나의 경험이 특별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심리학자 카린 포어드, 바바라 노울튼, 러셀 폴드랙은 학생들로 하여금 카드들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나타나는지를 관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낮은 음과 높은 음을 들려주며 높은 음이 몇 개인지 세는 작업을 동시에 시켰습니다. 음의 수를 세는 것과 패턴을 파악하는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꽤 힘든 일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학생들은 음의 수를 세면서도 패턴을 잘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더 복잡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자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멀티태스킹을 했던 학생들은 자신들이 관찰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순간에는 두 가지 일을 모두 해내는 듯이 보였지만, 이를 다른 상황에 적용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결과입니다. 지루한 회의 중에 다른 이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 우리는 지금 회의에서 무슨 이야이가 오가는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냅챗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축구 경기를 틀어놓은 학생들도 자신의 공부가 방해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UCLA의 연구는 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그 지식을 훗날 기억하거나 다른 상황에 적용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즉 멀티태스킹은 기억을 방해합니다. 이는 멀티태스킹과 음주의 또 다른 공통점입니다.

(2부로)

(파이낸셜 타임스)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