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지 않는 영국 학생들, 여파는 길게 갑니다
2015년 3월 10일  |  By:   |  세계, 칼럼  |  1 comment

영국 남부 웨일즈에서 산업 기기 제조 회사를 운영하는 새라 그레인은 최근 사원을 채용했습니다. 러시아어와 폴란드어, 독일어를 구사하는 리투아니아인입니다. 직전에 고용한 두 사람은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이탈리아인과,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베네수엘라인이었죠. 세 사람은 물론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합니다. 외국인만 고용한 이유에 대해 그레인은 영국인 지원자 중에 필요한 언어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영국인이 외국어를 못한다는 것은 사장 한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2012년 유럽 14개국의 14-15세 청소년 5만 4천 명의 외국어 능력을 조사한 결과, 82%의 학생이 일정 수준 이상을 기록한 스웨덴이 1위에 올랐고, 14개국 평균은 42%였습니다. 영국은 9%로 꼴찌였습니다. 물론 많은 유럽인들이 제 2의 언어로 영어를 배우고 있으니,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영국인에게는 다른 언어를 배울 동기가 크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사소통 면에서는 불편이 없다해도, 외국어를 배우지 않는 수많은 영국인들이 문화 교류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물론 취업 전선에서 뒤쳐지는 것도 현실입니다.

정부의 정책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2004년에 노동당 정부는 14세 이후 교과 과정에서 외국어를 필수에서 선택으로 돌렸고, 이후 외국어를 선택하는 학생의 수는 7년만에 반토막 났습니다. 이에 놀란 다음 연합 정부는 2011년 “영어 바깔로레아”라는 새로운 시험 방식을 채택하면서 5개 핵심 과목 중 하나로 언어를 넣었고,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의 수도 차차 늘어나기 시작했죠. 그러나 정부는 이런 추세를 독려할 의지가 없어보입니다. 2016년부터 핵심 과목 수를 8개로 늘리기로 하면서, 외국어 과목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것이죠.

중등 교육의 외국어 경시는 대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전공하는 학생 수는 20년 전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고, 외국어과를 둔 대학의 수도 크게 줄었습니다. 중국어나 아랍어 전공의 인기가 예전에 비해 늘어나긴 했지만, 절대적인 비중을 보면 미미하죠.

노동 시장도 영향을 받습니다. 2012년 영국 상공회의소가 영국 기업 8천 개를 상대로 조사했더니, 96%에 외국어를 구사하는 직원이 없었습니다. 수출업에 처음 뛰어든 기업들도 언어 장벽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죠. 그 뿐이 아닙니다. 영국 인구는 EU의 12%인데, 브뤼셀의 EU 본부에 영국인 직원은 5% 뿐이죠. 다국적 기업은 여전히 영어밖에 못하는 영국인도 채용하지만, 가장 높은 급으로 승진하는 데 결국 외국어 능력이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민의 외국어 능력 부족은 국가 경제 성장에도 영향을 줍니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언어 장벽이 무역을 얼마나 저해하는지를 파악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총 언어 효과”는 2012년 기준 GDP의 3.5%에 달한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변화도 일어나고는 있습니다. 대학들도 외국 문학 전공을 없애는 대신 법학이나 경영학과 연계한 실용 외국어 과목을 증설하고 있고, 과학자들이 취업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필수 점수를 딴 후에도 외국어를 계속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2014년 9월부터는 초등학교에서도 반드시 하나의 외국어를 가르치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외국어 조기 교육을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여전합니다. 대학이 배출하는 외국어 전공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초등학교 외국어 교사 수요를 어떻게 충당하는가 하는 문제죠.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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