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15년 1월 29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나치에 의한 유대인 말살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해방된지도 이번 주로 70년이 됩니다. 1942년부터 전면 가동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는 나치가 운영한 수용소 가운데 가장유명하고 규모도 크죠. 이 곳에서 죽어나간 사람만 유대인 100만 명을 포함해 110만 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언급만으로도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 수용소는 바로 그 유명세와 존재감 때문에 홀로코스트와 나치에 대한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아우슈비츠에 대한 역사적, 대중적 기록은 대부분 예의 잔인하고 관료주의적인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의 기술적, 산업적 우위로 인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이죠. 그러나 나치가 유럽 각지에 대규모 가스 시설을 갖춘 수용소를 짓지 않았다면 엄청난 학살을 저지를 수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나치 독일과 그 협력자들이 2차 대전 기간 동안 살해한 유대인 600만 명 중 절반 가량은 “공장식”이 아닌, 보다 전통적인 방식(총살, 아사 등)으로 죽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조립 라인식 학살”이라는 말은 얼핏 들으면 이 방식이 효율적이었다는 뜻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기차에 실어 수송하고 큰 시설에 가두는 것 보다는 이들을 찾은 장소에서 바로바로 죽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니까요. 나치 지도부가 수용소를 지은 이유는 유대인들을 신속하게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살자와 피해자들 간의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첨단 학살 기술”을 강조하는 기술 역시 오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1994년 르완다 사태 때 후투족은 나치보다 훨씬 단기간에 투치족 80만 명을 학살했지만, 당시 사용된 것은  칼, 곤봉과 같은 원시적인 도구였으니까요.

“죽음 공장”이라는 아우슈비츠의 강렬한 이미지 덕분에, 우리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말살해버리려는 시도란 국가 정책과 기술적 수단이 맞아떨어지는 드문 경우에만 성공한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대량학살과 인종 말살의 정치학에서 기술의 유무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필수 요소는 학살을 저지르겠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 다수 협력자들의 동참, 그리고 더 많은 일반 대중의 동조,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에게 특정 집단을 절멸하는 것이 필요하고 옳은 일이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아우슈비츠가 중요한 이유는 이 시설이 독일 사회에서 갖추어졌던 이 모든 요소들을 상징하기 때문이지, 기술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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