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1%가 아닌 보통 99% 테니스 선수로 산다는 것
2015년 1월 22일  |  By:   |  경영, 스포츠  |  No Comment

만약 당신이 지구상에서 350번째로 축구, 야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를 잘 하는 (남자) 프로 선수라면? 아마도 당신은 부와 명예를 충분히 누리는 유명인의 삶을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계가 말해주는 이들의 평균 연봉은 5억 원이 넘습니다. 선수 생활을 하는 데 드는 기본적인 비용은 물론 적어도 돈 걱정을 하면서 살 이유는 없죠.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들 종목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테니스라면 어떨까요? 당신의 테니스 랭킹이 350위라면? 아마도 당신은 벌이가 충분하지 않아 은행에 빚을 지고 있거나 스폰서를 간절히 원할 확률이 높습니다. 집에 돈이 여유가 있어서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인 축에 속할 겁니다. 테니스는 남자보다 여자 선수들이 상금도 더 높은 이례적인 종목입니다. 하지만 여자 선수들 가운데도 대회에 참가해 버는 상금만으로 운동을 계속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선수는 전 세계에 200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최근 ATP(Association of Tennis Professionals: 남자 선수들의 프로 대회를 주관하는 단체, 여자 대회는 WTA(Women’s Tennis Association에서 관장))는 앞으로 4년간 대회 상금 규모를 크게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상금이 오르는 대회는 대부분 상위 랭커들이 겨루는 대회입니다. 미국 프로야구로 치면 트리플A 마이너리그에 해당하는 ATP 챌린저 대회의 경우 지난 6년간 물가 인상을 감안하고 나면 총 상금 규모가 25%나 줄었습니다. ATP의 발표 직후 국제테니스연맹(ITF, International Tennis Federation)은 선수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소득(상금) 통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를 보면 지난해 운동을 하고 대회에 참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상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선수는 남자 336명, 여자 253명에 불과합니다. 600명이 채 되지 않는 선수들을 제외한 테니스 선수들은 제대로 된 연습시설을 구하지 못하거나 새 라켓, 좋은 연습구를 구하지 못해서, 또는 대회 참가에 필요한 숙식비용, 코치들의 급여를 댈 수 없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국 테니스 협회에서 지원금을 받거나 스폰서를 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은 선수들은 일찌감치 테니스 선수의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립니다.

현재 열리고 있는 호주 오픈을 포함한 네 개 그랜드슬램 대회는 남녀 각각 랭킹 104위 안에 들면 참가 자격이 주어집니다. 전체 선수들 가운데 뛰어난 극소수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수입은 안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수가 네 개 대회에 모두 출전해 전부 다 1회전에서 탈락했다고 해도, 여기서 벌어들이는 상금만 약 1억 5천만 원입니다. 반면 국제테니스연맹이 지난해 각급 대회에서 한 차례라도 상금을 탄 남자 선수들 4,9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위 1% 랭커를 제외한 99% 선수들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상금은 평균 1,500만 원(여자 선수들은 2,500만 원)입니다. 상금을 제외하면 마땅한 수입원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액수입니다.

테니스 팬층은 상당히 넓지만 소위 말해 ‘돈이 되는’ 열정적인 팬들은 많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큰 대회를 제외하면 입장권 수익으로 흑자를 보는 대회는 많지 않고, 시청률도 높지 않아 중계권료도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하면 상당히 낮습니다. 각국 협회나 연맹 가운데 선수들을 충분히 지원할 만한 금전적 여유가 있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기량을 발전시켜 뛰어난 선수가 될 소질이 있는 선수들이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며 운동에 집중하지 못해 일찌감치 은퇴로 내몰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2000년에 비해 어떤 선수가 100위권 안에 진입하는 데 드는 기간이 1년 더 늘어났다는 통계는 그만큼 테니스계가 선수들의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제테니스연맹이 주관하는 ATP보다도 급이 낮은 기초 지역 대회 가운데는 만성적인 자금난 탓에 시합에 사용하는 공이나 코트, 네트 관리가 엉망인 대회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대회들 가운데 선수들에게 대회기간 동안 숙식을 제공하는 대회는 전체의 4%밖에 안 됩니다. 연맹의 임원을 맡고 있는 덴트(Kris Dent) 씨는 상금 규모를 대대적으로 늘리는 것보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에 대한 숙식 제공을 늘리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연맹은 프로골프처럼 시즌에 참가할 수 있는 선수 숫자를 제한하고 우수한 기량을 갖춘 어린 선수들이 시즌권을 더 많이 딸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이나 상위 랭커들이 상금 때문에 급이 낮은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FiveThirty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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