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언제까지 양 쪽의 입장을 “균형있게” 보도해야 할까
2014년 1월 7일  |  By:   |  세계  |  5 Comments

지난달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 언론 매체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고인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습니다. 그를 테러리스트나 공산주의자로 부르며 추모 행렬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죠. 그러나 생각해보면 만델라라는 인물은 물론이고, 그가 평생을 바친 대의명분마저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던 때가 불과 수십 년 전입니다. 세상에는 어린이 대상 성범죄처럼 처음부터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도 있지만, 만델라에 대한 평가처럼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안도 있습니다. 어느 시점까지는 언론도 양 쪽의 입장을 균형있게 전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지는 시점이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안이 “논쟁적인 주제”에서 “합의된 사안”이 되는 과정에서 언론은 그 변화 과정을 주도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까요?

마틴 루터 킹이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남긴 워싱턴 대행진은 오늘날 미국에서 전국민이 기념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매체들도 기념일마다 크게 기사를 내지만, “공정 보도”를 위해 차별주의자들의 입장을 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한 지역 신문은 행진 참가자들이 버린 쓰레기 사진에 “검둥이 쓰레기가 치워지고 다시 깨끗해진 워싱턴”이라는 설명을 달기도 했죠. 그러나 연방정부 차원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하자, 이에 반대하던 정치인들도 결국은 주장을 굽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장을 고수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러자 언론도 인종 문제에 대해 양쪽의 “주장”을 모두 다루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보도할 만한 “논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치 엘리트들 간 논쟁의 지속 여부가 해당 사안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결정한 경우입니다.

반면 언론이 사회적 합의보다 한 발 앞서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동성결혼은 여전히 주민 투표의 안건이 될 만큼 뜨거운 논쟁거리지만,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는 이미 논쟁이 끝났다고 선언한 듯 합니다. 작년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 법제화에 유리하게 작용할 판결 두 건을 내리자, “두 개의 승리”라는 기사를 1면에 싣고 축제 분위기의 특집 기사를 냈죠. 편집장은 “변화의 선두에 서는 것이 옳은 일인 사안도 있다”며 언론이 “양 쪽에 똑같은 비중을 주어 보도하는 것이 정확한 보도라는 잘못된 관념” 뒤에 숨어서는 안 되며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는 보도를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생각과 토론을 자극하는 신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동성결혼 사례에서 보듯, 사안에 대한 여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한때는 논쟁의 대상도 되지 못했던 동성결혼이 이제는 가까스로나마 미국인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으니까요. 모두가 “진실”이라고 동의한 사안에 대해서도 언론이 끝까지 의심을 품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과학처럼 토론의 영역이 아닌 분야에서도 사회적인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인간 활동과 기후 변화 간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점점 명확해져 가는데도, 이에 대한 “논쟁”은 진행형이죠. 조사에 따르면 2009년 이후 공화당원들 사이에서는 진화론을 믿는 사람의 비율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레곤대학에서 저널리즘 윤리를 가르치는 스티븐 워드(Stephen Ward) 교수는 언론이 “적절한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충분히 많은 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언론은 이를 하나의 “입장”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워드 교수는 언론이 과학와 여론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과학을 주제로 “엉뚱한 균형”을 추구한 기사는 아주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논쟁 끝에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사안에 대해서도, 일부 신념이 강한 개인이나 이익집단의 항의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트위터의 시대에 이와 같은 소수의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미 죽은 논쟁”을 되살리기 위해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어, 오늘날 “사회적인 합의”에 이르는 길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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