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과 김치: 어떻게 의류 산업이 방글라데시로 왔는가
1970년대 방글라데시는 전쟁과 기아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압둘 초우드허리(Abdul Chowdhury)와 누룰 퀘이더(Noorul Quader)는 조국 방글라데시를 이러한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싶어했던 두 명의 사업가였습니다. 그들에게 답은 명확해 보였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일자리를 필요로 했고 달러가 필요했습니다. 초우드허리는 방글라데시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류 산업을 부흥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의류 산업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눈에 한국의 사례가 들어왔습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가난한 농업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의류 산업을 통해 수출을 시작하면서 한국은 빈곤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초우드허리와 그의 동료 몇 명은 1970년대 한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의류 공장에서 수천 명의 여성들이 재봉틀들 돌리며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방글라데시에 있는 여성들 역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는 대우 그룹의 회장과 45분간의 면담을 허락받았는데, 실제로 무려 10시간 동안 대우 그룹 회장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회담의 성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대우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의류 공장에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우가 방글라데시에 의류 공장을 세우기로 한 이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습니다. 바로 리차드 닉슨 대통령입니다. 1970년대 초, 한국과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엄청난 물량의 의류가 미국으로 수출되었고 이는 미국 내 의류 산업 종사자들에게 위협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국가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닉슨과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다자간 섬유 협정(Multi Fiber Agreement)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 조약은 개발도상국가가 선진국에 수출할 수 있는 의류나 섬유제품 물량에 제한을 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기업들이 미국에 연간 수출할 수 있는 티셔츠의 양을 제한하는 식이었습니다. 초우드허리 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은 다자간 섬유 협정이 규정한 물량을 이미 채운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에 공장을 세워야 했습니다. 초우드허리는 방글라데시의 노동자 128명을 한국으로 데려와 6개월 동안 대우에서 기술을 전수받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김치를 먹을 수가 없던 것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당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을 훈련시킨 김은희 씨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옆에 오면 특이한 향료 냄새가 나서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자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을 때 한국인들은 차려진 음식을 하나도 먹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대우 그룹의 CEO가 직접 개입했습니다. CEO는 대우 직원들을 부른 뒤에 이렇게 훈계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국제 사회에 살게 될 것이고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인내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잔소리 말고 방글라데시 음식을 먹도록 하세요.”
대우 CEO의 추측은 맞았습니다. 1980년에 김은희 씨는 방글라데시로 날아가서 방글라데시의 첫 번째 수출 의류 공장인 데시 의류 (Desh Garments)를 설립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방글라데시는 전 세계에서 의류 수출 강국이 되었습니다. 의류 산업은 방글라데시에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런 산업화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올 초에 의류 공장 건물이 무너지면서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는 비극이 있기도 했지요. 오늘날, 방글라데시에는 4천 개가 넘은 의류 공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장은 30여년 전 초우드허리 씨가 한국으로 데려가서 훈련을 받도록 한 128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NPR Planet M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