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주제의 글
  • 2013년 8월 2일. 영국 여왕의 3차대전 전야 연설문 공개되다

    목요일 영국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문서 가운데는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을 연설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소련과 서방의 갈등이 고조되던 1983년에 핵 전쟁 상황을 가정하고 써둔 전면전 전야 여왕의 대국민 연설문입니다. 감정을 고조시키면서도 음울한 기운을 내뿜는 이 연설문은 영국 정부가 3차대전을 대비해 써둔 320쪽짜리 대응 시나리오의 일부로, 30년 전 영국에 드리웠던 핵 전쟁의 공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설문은 바로 직전의 성탄절 대국민 연설를 언급하며 시작됩니다.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던 그 때만 해도 전쟁의 공포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1939년 2차대전 당시 아버지인 조지6세의 연설을 라디오로 듣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토록 무거운 책무가 자신에게 주어질 날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회상합니다. 그리고 당시 헬리콥터 조종사였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가 이미 부대로 복귀했다며, 미지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라고 강조합니다. 당시 주 소련 영국 대사는 유리 안드로포프 총서기의 호전적인 수사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소련이 서독과 스칸디나비아, 이탈리아,  터키를 침략하고, 뒤이어 핵 공격과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한다는 시나리오를 세웠습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당시 영국 정부는 소련의 핵 공격으로 런던에서만 100만명, 전국적으로 33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파악했습니다. 83년 총선으로 선출될 신임 총리 보고용으로, 총리 관저에 설치된 핵 미사일 발사 장치에 대한 설명과 핵 전쟁 발발시 대응책도 담고 있습니다. 소련의 핵 공격이 임박하면 장관들을 영국 각지로 분산시켜 런던의 마비와 총리의 죽음에 대비하라는 내용입니다. 공격이 임박하면 수십 만 명이 피난길에 오르고, 폭력적인 반전 시위가 발생하며, 주류 매출은 급등하고, 병원의 의약품 창고는 약탈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세세한 예측도 담겨있습니다. 당시 영국 국방부는 NATO가 먼저 선제 핵 공격을 하지 않으면 소련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영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우리의 적은 소총을 둔 군인도, 도시와 마을을 공습할 전투기도 아닌, 치명적인 힘을 가진 악용된 기술입니다.” 연설문 속 핵무기에 대한 묘사입니다. 대책에 관해서는 “이 슬픈 세기에 우리의 자유를 두 번이나 지킬 수 있도록 해준 그 자질들이 이번에도 우리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연설문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새로운 악에 맞서 싸우려는 이 때에, 우리 조국과 세상 모든 곳의 선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신의 가호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Guardian) 원문보기

  • 2013년 4월 9일.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철권통치자의 말년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 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각각 소련이 무너진 뒤 20년 넘게 나라를 통치해 왔습니다. 중앙아시아의 라이벌 관계인 두 나라는 권력자의 철권통치 속에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두 대통령이 모두 70대로 노쇠해지면서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권력을 바꿔본 경험이 부족한 나라에서 어떻게 권력이 승계되고 이양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특히 나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면서 두 나라의 정국이 혼란에 빠질 경우 지역 정세가 덩달아 불안해질 수 있다는 더 보기

  • 2013년 1월 3일. 2013년의 오바마가 1989년의 고르바초프에게 묻고 싶은 것은?

    “값 비싸고 인기 없는 아프간전을 끝내기로 결심한 젊은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에 철군 후 장기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반군과는 화해를 도모한다. 그러나 대통령 주변의 고위 관리들은 철군을 미루는 동시에 아프간 군을 훈련시킬 병력을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4년을 목표로 아프간전 전면 철군을 준비 중인 오바마 대통령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1989년 고르바초프의 이야기 입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공산주의 정권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10년 만에 철군한 역사는 소련에 뼈아픈 기억일 뿐 아니라, 소련의 개입으로 더욱 더 보기

  • 2012년 10월 15일. 쿠바 미사일 위기 50주년

    현재까지 인류가 핵전쟁의 재앙에 가장 근접했던 ‘사건’이 꼭 50년 전에 일어난 쿠바 미사일 위기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되돌아봅니다. 1959년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이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뒤 미국은 좁은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어선 공산주의 국가를 없애기 위해 전전긍긍합니다. 쿠바는 쿠바대로 안보를 지키기 위해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들여오기 시작하고, 미국은 쿠바 섬을 해군, 공군을 총동원해 봉쇄하기에 이릅니다. 쿠바로 향하던 소련 함대와 쿠바 해협을 봉쇄하고 있는 미국 함대가 마주치면 순식간에 전면전으로 번질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