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셰릴 샌드버그 사임과 다시 돌아보는 “린 인(Lean In)”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이자 모기업 메타의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셰릴 샌드버그가 사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업인 샌드버그가 걸어온 길과 함께 2013년에 그가 발표한 책 “린 인(Lean In)”의 유산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6월 2일자 기사를 통해 “린 인”에 대한 해석과 그 영향력이 지난 10년간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소개했습니다.
기사 도입부의 설명처럼 2013년은 미투 운동이 아직 폭발하기 전이었고, 페이스북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기 전이었죠. 여성들에게 직장에서 야망을 품고 더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독려한 샌드버그의 저서는 많은 이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직장생활의 로드맵이 되었지만, 동시에 성차별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는 눈을 감은 채 이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출신의 부유한 백인 여성의 경험과 조언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죠. 기사는 책과 “린 인 재단”을 통해 커리어에 도움을 받은 여성들의 이야기와 샌드버그의 조언에서 한계를 느끼고 불평등의 문제나 백인 여성을 중심에 놓은 페미니즘의 문제를 지적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샌드버그의 조언이 커리어에 도움을 준다고 느꼈지만, 출산과 건강 악화 이후에는 같은 이야기가 공허하게 느껴졌다는 독자의 소감도 실었죠.
페이스북이 2016년 대선 당시 가짜뉴스 확산의 플랫폼으로 논란이 되자 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기업을 끌어나가는 이가 개인적인 성취에만 집중하는 태도도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일터에서 내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일터에서 더 나은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가”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는 지적이었죠. 지난달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내용의 대법원 판결문이 유출됐을 때도 샌드버그는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지만, 정작 메타는 “의견이 갈리는 주제”에 대해 임직원들의 입단속을 지시했다는 보도도 또 하나의 단면이었습니다.
한편, 샌드버그와 “린 인”의 유산이 지나치게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6월 3일자 칼럼은 “린 인”으로 대표되는 종류의 페미니즘이 이제는 지나간 시대의 페미니즘으로 여겨진다면서도 여러 가지 변화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례로, “린 인”의 성공 이후 샌드버그가 책에서 언급한 직장 내 성차별이나 불평등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크게 늘어났고, 그런 연구 주제가 학계의 주류로 떠올랐다는 것이죠. 또, 가부장제를 타파할 수 없다면 그 일원이 되어버리겠다는, 이른바 “걸보스(Girlboss) 페미니즘”이 2022년에는 쿨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샌드버그 이전의 성공한 여성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샌드버그 이후로 더 많은 고위급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여성이 이야기하는 성평등에 대한 책의 수요를 확인한 출판사들이 비슷한 책을 대거 내놓기 시작한 것도 “린 인” 이후고요.
많은 이가 읽은 화제의 도서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재조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한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 기업인과, 그가 쓴 책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랫동안 몸담아온 기업에서 더 이상 “린 인”하지 않고 물러나기로 결심한 샌드버그의 행보에 앞으로도 많은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린 인”의 독자들에게는 그런 샌드버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일이 책의 후속편을 읽는 셈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