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매년 맞을 필요 없는 독감 백신은 언제 나올까?
2022년 4월 25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코로나19 백신 이전에도 백신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매년 추워질 때쯤 맞는 독감(influenza) 백신이죠. 다만 매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조금씩 다르고, 백신 접종으로 생긴 항체의 지속 기간도 반년 정도에 불과해 독감 백신은 매년 맞아야 한다는 중대한 단점이 있습니다. 저도 올해 코로나19 백신만 신경 쓰고, 독감 백신에 관해선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다른 일로 병원에 갔을 때 의사의 말을 듣고 바로 백신을 맞았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 이렇게 물었죠.

“매년 안 맞고 한 번 맞으면 5년, 10년 걱정 안 해도 되는 독감 백신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렸을 때 배운 상식대로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안 그래도 연구진이 그런 백신을 개발하고 있어요. 저도 요즘엔 찾아본 지 좀 됐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잘하면 몇 년 안에 나올걸요? 코로나19 백신 만든 것처럼 자원만 투자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텐데 말이죠.”

모든 독감에 다 듣는 백신의 이름은 말 그대로 “Universal Flu Vaccines”이었습니다. 관련 기사를 찾아봤더니 뉴욕타임스가 마침 최근에 기사를 썼고, 복스는 동영상으로 이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해놓았습니다. 내용을 요약해 정리했습니다.

 

인류가 독감 백신을 만들어 접종하기 시작한 건 1940년대의 일입니다. 1918년 이른바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진 인플루엔자 팬데믹으로 적어도 5천만 명이 목숨을 잃은 지 약 한 세대가 지난 뒤였죠. 그런데 독감 백신을 생산, 보급, 접종하는 방식은 지난 8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수만에서 수십만 명의 목숨을 살려온 독감 백신인 만큼 검증된 방식을 따르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개선할 지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현재 인류가 독감 백신을 만들어 접종하는 방식의 가장 큰 단점은 변이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매년 조금씩 결합 방식을 바꾸는 바이러스를 예측해 백신을 새로 만들어 새로 접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아예 근본적인 단백질 구조가 조금 다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그때는 기존 백신으로 항체를 만들지 못해 또 다른 팬데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코로나19 팬데믹 전의 네 차례 팬데믹(1918, 1957, 1968, 2009)은 모두 인플루엔자 팬데믹이었습니다.

사진=Unsplash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인류가 발견한 가장 큰 희망 중 하나는 백신을 개발하고 대량으로 생산해 보급하는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점입니다. 그럼 비슷한 혁신을 독감 백신 개발에도 접목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제가 의사 선생님께 물었던 것처럼 정말 매년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도 적어도 몇 년, 잘하면 한 번 맞으면 평생을 독감에 걸릴 염려 없이 살 수도 있을 겁니다.

이른바 계절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관해 간략하게 알아봅시다. 한국어로 인플루엔자를 독감이라고 쓰다 보니, 독감을 ‘독한 감기’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둘이 엄연히 다르다는 건 알고 계시죠? 저도 개인적으로 2018년에 독감에 한 번 걸리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독감을 앓고 나서야 그 차이를 몸소 절감했습니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그 종류가 다양한데,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유형을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두 가지 단백질의 조합에 따라 분류합니다. 하나는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 또 다른 하나는 뉴라미니데즈(Neuraminidase)라는 단백질인데, 앞글자를 딴 H와 N에 각기 다른 단백질의 세부 유형을 숫자로 붙이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이름 붙이기가 끝납니다. H1 타입과 N1 타입의 단백질이 결합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H1N1, H9 타입과 N5 타입이 결합하면 H9N5와 같은 식입니다.

위에 설명한 건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에 국한한 이야기고, 인플루엔자 B 바이러스도 있습니다. 또 다른 유형의 단백질 조합과 변이 특성이 있는 바이러스인데, 모든 독감에 다 듣는 백신은 A와 B 바이러스에 모두 효과가 있습니다. 항체를 형성하는 방식이 지금의 백신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항체 형성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 우선 현재 독감 백신을 생산하는 방식을 먼저 살펴봅시다.

호주나 남아메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뉴스페퍼민트 콘텐츠를 읽어주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글을 읽는 대부분 독자는 북반구에 살고 계시겠죠. 북반구에서는 10월이나 11월이 되면 독감 백신을 맞을 시기라는 광고가 나옵니다. 이때 맞는 독감 백신은 언제 만든 것일까요? 이르면 2월, 늦어도 3월에 올겨울 (북반구에서)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형을 예측해 만들기 시작한 백신입니다. 주로 남반구에서 겨울에 유행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형을 분석한 다음 같은 단백질 구조의 바이러스가 다음 겨울에 북반구에서 유행할 거로 보고 백신을 만드는 거죠.

백신을 개발해 대량 생산하는 데는 보통 6~8개월이 걸립니다. 어떤 백신을 생산할지 결정을 내리는 시점이 2월보다 늦어지면 안 됩니다. 독감 백신이 적중률이 100%보다 낮은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시간입니다. 지난 겨울 남반구에서 유행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맞춰 백신을 만들어놨더니, 올 겨울 북반구에서는 변이가 일어나 다른 바이러스가 유행할 수도 있는 거죠. 실제로 독감 백신의 적중률은 매년 다른데, 과학자들의 예측이 잘 맞아떨어지는 해에는 70% 정도 효과를 나타내고, 반대로 예측이 실패한 해에는 30% 정도에 머물기도 합니다.

1940년대부터 인류는 계란에 단백질을 배양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만들었습니다. 이 방식은 아직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래서 미국 정부가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 비밀리에 운영하는 양계장은 최고 등급 보안 시설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백신을 빨리 개발할 수 있던 건 mRNA 기술을 접목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배양할 필요가 없던 덕분에 개발 기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죠. 닭도, 계란도 당연히 필요 없었습니다. mRNA 기술을 이용해 독감 백신을 만들 수만 있다면, 지금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맞는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게 되므로, 이른바 백신의 적중률도 높일 수 있습니다.

백신 생산 기간을 단축하는 건 분명 획기적인 진전이겠지만, 모든 독감에 다 듣는 백신을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려면 수많은 변이에 개의치 않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전반에 항체를 형성하는 백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앞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킨다고 했는데, 변이가 일어난다고 바이러스 전체가 모습을 바꾸는 건 아닙니다. 대신 비유하자면, 튤립 모양을 닮은 헤마글루티닌의 끝부분만 색깔을 바꾸는 식으로 변이를 일으킵니다. 기존 독감 백신은 헤마글루티닌의 끝부분에 반응해 항체를 형성하라고 우리 몸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올해는 노란 튤립에 반응해 항체를 형성했던 백신이 내년에는 빨간 튤립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매년 변이를 일으킬 때마다 색깔이나 모양을 조금씩 바꾸는 헤마글루티닌 끝부분과 달리 헤마글루티닌의 줄기 부분은 변이와 무관하게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모든 독감에 듣는 백신이 목표로 삼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면역 체계가 튤립을 닮은 헤마글루티닌 끝부분에 반응해 항체를 만드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줄기를 인식하라는 명령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위해 튤립 부분을 아예 제거한 상태에서 백신을 만들거나 튤립 부분을 더 자주 바꾸는 바이러스에 백신을 노출시켜 백신이 줄기 부분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실험을 진행해 왔습니다. 또한, 줄기를 인식하는 백신을 만들었을 때 바이러스가 또 변이를 일으킬 때를 대비해 바이러스 안에서 변이가 일어나도 바뀌지 않는 부분이 또 어디인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독감에 다 듣는 백신이 나온다면 백신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매년 변이 바이러스에 따라 백신을 또 맞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2008년 (당시에는 신종플루라고 불렸던) H1N1 팬데믹 이후 과학자들은 본격적으로 모든 독감에 다 듣는 백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앤서니 파우치 박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한 번 맞으면 적어도 몇 년은 효력이 있는 독감 백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백신의 장점은 매년 독감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어져 번거로움을 더는 것 이상입니다. 코로나19 백신만큼 극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독감 백신에도 지구적인 빈부격차가 크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나라에서는 매년 독감 백신이 충분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독감 백신이 늘 모자라서 문제입니다. 백신이 부족한 나라는 의료 제도도 취약할 가능성이 커 독감이 크게 유행하면 희생자도 더 많이 나오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래 가는 독감 백신은 가난한 나라, 지역에 가장 큰 혜택을 줄지도 모릅니다.

더 읽을거리: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데 사용한 mRNA 기술을 독감 백신 개발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뉴욕타임스 과학 칼럼니스트 칼 짐머가 긴 기사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