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쇼빈 유죄 평결과 갈 길 먼 미국의 경찰 개혁
(애틀란틱, David A. Graham)
배심원 평결 전 주 검찰 측 변호사 스티브 슐라이처 마무리 발언
조지 플로이드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데릭 쇼빈에 대한 재판에서 미네소타주 배심원단은 검찰과 피고 변호인단의 10시간 넘는 공방을 지켜본 끝에 전직 경찰관 쇼빈에게 씌워진 세 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라는 평결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경찰이 자행한 폭력으로 인한 재판 가운데 지난 수십 년간 가장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 배심원단의 평결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경찰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시민에 관한 사건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적이 또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역설적으로 이번 사건이 얼마나 예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분명 배심원단이 쇼빈에게 유죄를 물은 것은 정의에 부합하는 결정으로 보이고, 많은 사람이 이번 결정에 안도했습니다. 유죄 평결이 나지 않으면 또 한 번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으로 보였던 만큼 미네소타주 정부나 경찰도 한숨을 돌렸을지 모릅니다.
지난해 5월 미니애폴리스의 한 편의점 앞에서 위조지폐를 쓴 것으로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쇼빈과 경찰관들은 용의자로 지목한 조지 플로이드 씨를 수갑을 채우고 두 팔을 뒤로 묶은 채 땅에 눕혔습니다. 특히 쇼빈은 체중을 싣고 무릎으로 플로이드 씨의 목을 9분 29초 동안 짓눌렀습니다. 숨을 쉴 수 없다고 애원하던 플로이드 씨는 의식을 잃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지나던 행인들은 쇼빈을 향해 저항하지 않는 시민을 그렇게 진압하지 말라고 거세게 항의했지만, 쇼빈과 동료 경찰관들은 오히려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위협하고 경고했습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동영상으로 찍혔고, 언론에 공개돼 거센 공분을 샀죠.
데릭 쇼빈에게 적용된 혐의는 세 가지입니다. 우선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숨지게 한 2급 살인입니다. 쇼빈은 플로이드 씨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그 과정에서 플로이드 씨를 살해한 겁니다. 두 번째 혐의는 3급 살인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일 의도는 없었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신경 쓰지 않고 저지른 행위로 피해자가 숨졌을 때 적용할 수 있는 살인죄입니다. 마지막 혐의는 2급 과실치사로 피해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행동을 멈추거나 개입해 피해자를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죄입니다.
미국에서 경찰관의 손에 (특히 유색인종이고)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는 일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조지 플로이드 씨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지나던 행인들이 모든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쇼빈은 플로이드 씨의 목을 짓누르고 있는 내내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평소 경찰의 폭력을 지적하던 시민뿐 아니라 사법당국 안에서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역사적으로 경찰이 공무 중 살해 혐의로 기소되는 일은 정말 드뭅니다. 기소 자체도 많지 않고, 유죄 판결이 나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잘 없죠. 검찰이나 배심원도 사건을 재구성해봤을 때 경찰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또는 공무 집행을 위해 그럴 수 있었다며 정상을 참작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플로이드 씨 사건이 결정적으로 달랐던 건 바로 사건의 재구성을 당사자나 목격자의 진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됐다는 점입니다. 검찰 측 변호사로 나선 스티브 슐라이처가 마무리 발언의 마지막에 한 말처럼, 공소를 유지하기 위해 재판부와 배심원에게 “방금 여러분이 본 것, 처음 이 영상을 봤을 때 느꼈던 것, 그 상식적인 판단을 믿고 따라 달라”고 말하면 충분할 만큼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은 명백한 증거가 됐습니다. 심지어 9살배기 어린이 목격자도 “쇼빈이 플로이드를 죽였다”라고 말했다는 점도 강조했죠.
검찰은 다른 경찰의 진술, 증언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수갑을 찬 상태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며, 저항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말하는 무장하지 않은 시민에게 저렇게 오랫동안 위력을 가하는 건 경찰 훈련 교범 어디에도 없으며, 경찰의 행동 강령, 윤리에도 분명 어긋나는 일입니다. – 미니애폴리스 경찰서장 메다리아 아라돈도
검찰 측 슐라이처 변호사는 동시에 이번 재판은 경찰의 직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피고 데릭 쇼빈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지, 경찰 조직 전체에 도덕적인 비난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수세에 몰린 경찰 조직이 반발했을 때 날 수 있는 역효과를 우려한 거죠. 슐라이처 변호사가 “이번 사건을 반경찰 사건으로 부르는 건 옳지 않다. 오히려 이번 기소는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경찰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데릭 쇼빈을 이른바 “썩은 사과”, 도려내야 할 대상으로 만든 겁니다.
사건의 모든 장면을 고스란히 담은 증거가 명백히 있다 보니 쇼빈 측 변호인단에게 이번 변호는 매우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에릭 넬슨 변호사도 그래서 쇼빈의 행위 자체보다는 플로이드 씨의 사인이 반드시 쇼빈의 폭력 때문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플로이드 씨가 기저 질환이 있었고, 약물 복용 이력도 있으며, 심지어 옆에 세워둔 경찰차의 배기가스의 일산화탄소 때문에 의식을 잃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죠. 쇼빈이 플로이드 씨의 목에서 무릎을 떼지 않아 지나던 시민들의 항의를 자초한 면도 있지만, 어쨌든 거칠게 항의하는 군중이 몰려오는 것이 쇼빈에게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그러나 쇼빈 측 변호인단의 변론에 배심원단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배심원단의 평결은 하급심 법원의 최종 판결입니다. 평결에 근거해 쇼빈에게 장기 징역형이 선고될 수도 있습니다. 쇼빈은 아마 선고에 불복하고 항소할 가능성이 크겠죠. 전국적으로 워낙 관심이 쏠린 재판이다 보니 찬반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매우 이례적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서 배심원단이 올바른 평결을 내려주길 기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에 같이 출동했던 쇼빈의 동료 경찰관 세 명에 대한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선 배심원단의 평결이 유지돼 쇼빈이 유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죄를 지은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는다면, 무고한 시민의 허망한 죽음에 분노했던 수많은 사람은 그래도 정의가 조금은 살아있다며 안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환경을 바꾸기 위해선 여전히 갈 길이 너무나 멉니다. 당장 경찰관들이 (해고된 전직 경찰관이어도) 과거의 동료를 이렇게 분명히 비판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씨 사건처럼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동영상에 담기는 경우는 여전히 매우 드물 겁니다. 증거가 명백하지 않은 많은 사건에서 검찰은 지금껏 그랬듯 동료 사법기관인 경찰에 우호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려 할 겁니다. 그래서 여전히 경찰 폭력은 하루가 멀다고 자행되지만, 기소돼 법의 심판을 받는 경찰은 거의 나오지 않는 상황이 이어질 겁니다. 그럴 경우 결국, 경찰 개혁은 법원 밖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