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장애(mental disorder)는 마음의 “점착성(sticky) 경향”
AEON / Kristopher Nielsen
정신 장애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정신 장애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도, 정신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치료법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모두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두가 동의하는 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정신 장애를 뇌에 생긴 질병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그저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것이 마치 질병처럼 여겨지도록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정신 장애를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적응에 의해 가지게 된 특징이지만,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쓸모가 없어진 적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우리의 인지 능력에 새겨진 오류, 혹은 편향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든 아주 심각한 상황에 처하거나 경험할 경우 이같은 정신 장애의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자로 수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정신 장애에 대한 관점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왜 어떤 것은 장애 혹은 기능 장애가 될 수 있고 어떤 것은 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박사를 시작하게 되자 바로 이 문제를, 정신의학과 임상 심리학의 근본에 해당하는 이 개념을 먼저 확실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은 각자의 정신 장애에 대한 입장은 그들이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 곧 우리 신체와 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가진 자신의 생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물학자는 사회학자보다 정신 장애를 뇌 질환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사회학자는 이를 사회적 구성물로 바라볼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바로 인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이유와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다소 비현실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만약 우리가 타임머신을 이용해 르네 데카르트를 만나 정신 장애란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는 자신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바로 정신 장애는 영혼의 부패이거나 아니면 정신이 뇌 속에 위치한 송과체(松果體)를 작동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물리적인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식입니다.
이러한 발견은 곧 흥미로운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 중에 정신 장애를 더 잘 설명하는 방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분명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은 정신 장애 역시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나의 연구 주제를 좁혀가며 계속 질문을 던지다 보니, 나는 “체화된 행화주의(embodied enactivism)”라는 개념에 이르렀습니다.
체화된 행화주의는 마음 철학과 인지 과학에서 떠오르는 개념입니다. 이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생리 과정을 중요하게 본다는 점에서 ‘생물학적’인 관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의미와 사회적 관계를 통한 설명에도 같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이를 통해 인간이 생물학적인 육체를 가진 존재라는 점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환원주의적 관점을 피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이 체화된 행화주의가 정신 장애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관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체화된 행화주의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함에 있어 한 유기체가 세상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동적인 모델을 택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수준에서 이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체화된 행화주의는 마음을 체화(embodied), 구현(embedded), 행화(enactive)의 세 가지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체화’된 마음이란, 마음은 전적으로 물질적인 것이며 이는 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뇌와 신체를 함께 바라보는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자동차에서 운전자가 나오듯이, 누군가의 몸에서 뇌만을 꺼낼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은 뇌와 그 몸 전체를 통해 존재합니다. ‘구현’된 마음이란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다양한 측면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그 상호작용이 우리의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리적 환경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이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동시에, 우리는 이 환경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다시 변화시킵니다. 마지막으로 ‘행화’된 마음이란 우리는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유기체로서 우리가 가진 고유의 목적에 의해 의미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그저 무의미한 사실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의미와 함께 경험합니다. 그 의미는 외부 환경에 존재하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며, 생존을 위한 우리의 목적과 외부 세상의 상태 사이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의미는 우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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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된 행화주의는 뇌, 신체, 환경을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복잡계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정신 장애의 경우, 유전자에서부터 인간 사회와 문화가 모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 폭넓은 관점은 명백한 장점을 가집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 장애를 한 가지 생물학적 이상(예를 들어 뇌내 화학물질의 불균형 같은) 때문이 아니라 뇌-신체-환경 시스템의 다양한 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비적응적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관점 외에도, 체화된 행화주의는 가치(values)와 규범성(normativity)이라는 개념을, 유기체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주위 환경과 맺는 관계를 통해 만들어내는,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로 바라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정신 장애에 대한 현재의 두 관점, 곧 이를 규범과 가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평가주의자(evaluativists)’의 관점과 이를 선천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객관주의자(objectivists)’의 관점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체화된 행화주의의 관점에서, 정신 장애는 선천적인 동시에 규범적인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 생각, 감정의 패턴이 그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정신 장애를 체화된 행화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볼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잇점은 또 있습니다. 정신 장애는 명확하게 정의된 요소를 가진 질병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신체기관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뇌, 신체, 환경의 다양한 요소들이 정신 장애에 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삶 속에서 고유의 특이한 문제들이 섞여 드러나기보다는 우울증과 불안증 같은 인식가능한 기능장애를 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체화된 행화주의는 이러한 생각, 행동, 감정의 패턴이 인간의 뇌-신체-환경 시스템의 ‘점착성 경향’을 드러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점착성(sticky)’은 수학의 끌개라는 개념을 정신장애 문제에서 사용하기 위해 내가 만든 용어입니다. 끌개란 출발 위치와 무관하게 한 점으로 추락하고 계속 갇혀 있게 만드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정신 장애는 인간의 뇌-신체-환경 시스템을 쉽게 추락하게 만드는 생각, 행동, 감정의 패턴일 수 있으며 이 패턴은 자가-유지되는 성질이 있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은 뇌-신체-환경 시스템을 계속 우울증에 빠져 있게 만드는 생각, 행동, 감정의 패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택할 경우 정신 장애는 비록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적어도 판정되기 보다는 발견될 수 있는 실제 패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는 정신 장애가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임을 말해 줍니다.
이 개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두 손으로 손바닥만한 상자를 들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상자의 바닥에는 언덕과 계곡 같은 굴곡이 있습니다. 이제 바닥에 구슬 하나가 있어서 두 손을 이용해 그 구슬을 움직인다고 상상해 봅시다. 구슬은 계곡에 같일 수도 있고 언덕 위에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굴곡 중 특정한 패턴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구슬이 처한 상황을 어떤 사람의 상태로 생각해 봅시다. 이때 바닥의 굴곡은 화학물질에서부터 문화에 이르는, 그 사람의 행동에 주는 모든 영향을 의미합니다. 왼쪽 위의 깊은 계곡은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 장애일 수 있습니다. 구슬이 그 계곡에 갇힐 경우 상자를 기울이고 흔들어야만 구슬을 꺼낼 수 있습니다. 그저 상자를 좌우로 흔들어서는, 같은 패턴의 행동에 갇혀 구슬이 나오지 않으며, 이를 우울증에 ‘점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울증, 혹은 다른 정신 장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런 계곡을 만들어내는 요인들의 연결을 이해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연결이 어떻게 그 사람의 행동, 생각,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유지하는 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여기서 행화주의가 정신 장애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개념이 ‘무엇이 정신 장애인가?’라는 질문에 가능한 하나의 답을 줄 수 있으며, 내가 임상심리학 수련을 계속받는 과정에서 정신 장애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정신병리학의 발전을 위해 우리는 이 질문을 계속 던지고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