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환경, 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1/2)
사회정의활동가들은 “당신이 백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이점인지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정체정 정치에서 유래한 이 표현이 태생적으로 가진 인종주의는 나로 하여금 “그래 나는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와 같은 반감을 가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주장이 가진 보다 깊은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나는 “백인”으로 태어난 것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행운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2017년 11월에 그런 내용의 칼럼을 썼습니다. 곧, 나를 포함해 성공을 이룬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행운을 타고 났으며, 이 행운이 대부분 보수주의자의 관점에서 볼때에도 스스로 노력해 얻었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행운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할수록 내 의지로 얻어낸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보지요. 왜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할까요? 성공한 사람은 날때부터 영리하고 성실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자라나는 과정에서 야망을 가지고 규칙적신 생활을 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모든 것이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일까요? 이 문제는 수백 년 동안 철학자, 신학자와 보통 사람들이 고민해온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왜 사람들 사이에는 계급이 있을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권력과 부를 누리는 것일까요? 타고난 능력과 운이 명백하게 불평등하게 존재하는 세상에서 진정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정치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할까요?
다른 모든 질문들처럼 이들 질문 또한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자들은 “공정한 세상 이론(Just World Theory)”이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곧, 누군가가 성공하고 부를 얻었다면 그것은 그가 성실하고, 영리하고, 창조적이고, 위험을 무릅썼기 때문이며 그 성공은 자기 절제와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난은 그의 게으름, 무지, 상상력 부족, 위험 회피, 그리고 자기 절제와 의지의 부족 때문입니다. 곧, 보수주의자들은 이 세상이 이미 공정하며 지금 존재하는 명백한 불공정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질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며, 곧 공정한 사회는 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고 이러한 기회의 평등이 자연스러운 결과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은 이 세상이 “불공정한 세상 이론(Unjust World Theory)”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이는 성공을 위해 필요한 성실함과 창조성, 위험 감수 등의 특성을 배울 수 있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는 행운을 누린 이이며, 또한 성공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뛰어난 친구, 가족 등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불안정한 가족에서 태어나 지역 사회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위험한 환경에 처했던 불운한 이들에게 사회는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어야할 의무가 있으며, 그들이 가진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차이는 이들이 여러 종류의 사회 제도에 가지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세상이 이미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기존의 제도와 전통, 신앙과 가족, 국가와 애국심을 강조하며 지금의 사회 제도가 놓치고 있는 약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기존의 질서와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들은 권위에 도전하고, 다양성을 지지하며, 신앙과 전통을 종종 비웃을 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 무질서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세상을 바꾸어 정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점 또한 다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토마스 소웰은 자신의 책 “비전의 충돌(A Conflict of Visions)”에서 이런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 차이가 진보와 보수로 하여금 이민, 의료, 복지, 세금, 사법정의, 치안, 전쟁과 같이 언뜻 무관해 보이는 사회 문제에도 서로 다른 주장을 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것이라면,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기껏해야 범죄자를 가두고 엄격한 규율을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한계가 없다면, 사회적 불평등은 불행한 가족관계, 의료와 교육 제도, 그리고 사회 정책의 문제일 것이며 따라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소웰은 이렇게 말합니다. “본성에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사회적 악이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충분한 사회적 참여만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본성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인간이 본래 가진 악한 본성을 개선하거나 완화시킬 어떠한 수단이나 전략은 그 자체로 비용을 가지며, 따라서 이를 제도화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화적 문제를 만들어내어 결국 모든 시도는 사실상 또다른 문제를 만들어낼 뿐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어떤 이론을 따르느냐에 따라 정부의 규모, 세금, 이민, 의료, 환경, 범죄, 의회, 무역 등의 사회적 정책의 효과에 대한 판단 또한 바뀌게 됩니다.
내가 2011년 출간한 “믿음의 탄생(The Believing Brain)”에서 나는 정치적 관점을 덜어낸,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현실적 관점(Realistic Vision)”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곧, 인간의 본성은 유전자와 생물학에 의해 상대적으로 한계를 가지지만 또한 가족, 지역, 문화,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유전자와 환경, 문화, 인간의 진화적 역사와 개인의 삶의 궤적이 모두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은 사회 제도를 바꾸어 정부가 원하는대로 결과물을 바꿀 수 있는 ‘빈 서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없을만큼 생물학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현실적 관점”은 가족, 관습, 법, 사회의 조화를 위한 전통적 제도의 중요성을 부모와 가족, 친구, 지역 사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성 교육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깁니다. 인간은 두 가지 상충하는 본성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고, 경쟁적이면서 협력적이며, 탐욕적이면서 관대합니다. 즉, 인간은 스스로가 옳은 일을 하게 장려할 수 있는 사회적 규칙을 필요로 합니다. “현실적 관점”은 또한 사람들이 유전적 요소에 의해 육체적, 지적으로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으며 또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없는 이들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진정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인생에 운이 미치는 영향에 있어, “우연성(contingency)”, 혹은 “예측불가능한 연속된 선행 상태(unpredictable sequence of antecedent states)”라는, 일반적으로 무작위적으로 주어지는 운과는 다른 개념이 있습니다. 우연성은 자연의 법칙인 필연성과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1990년, 나는 역사의 진행을 설명하기위해 우연성-필연성 모델을 만들었꼬, 여기서 우연성을 “계획되지 않은 연속된 사건”으로, 필연성을 “제한된 조건하에서 강제되는 일련의 행동”으로 정의했습니다.
우연성은 한 쪽에 왕국이 올려져 있는 양팔 저울에 못이 몇 개 떨어지는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며 대체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저울이 기울기 시작할 때 수십만 개의 못이 떨어져도 이를 막지 못하는 것처럼 필연성은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역사는 우연성과 필연성이 결합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요소의 관계를 표현하는 하나의 용어인 ‘우연성-필연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개념은 ‘선행하는 조건에 의해 주어지는 일련의 사건이 강제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곧, 우리는 우리의 미래 행동을 제약하는 선행 조건들 때문에 전적으로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자신의 유전자와 환경, 운 등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여러 요소들을 인식하고 이를 바꿀 수 있으며 따라서 완벽하게 결정된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닙니다. 다음의 예들은 우연성과 필연성이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줍니다.
(퀼레, Michael She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