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선거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어떨까?
* 스탠포드대학교 정치학과의 교수 두 명이 투표율을 높이고 민의를 더 잘 반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미국의 투표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지난 2014년 중간 선거에 투표한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 세 명 중 한 명꼴에 그쳤습니다. 1945년 이후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 투표율로는 최저치였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안도라의 투표율이 한 차례 더 낮았던 적이 있기는 합니다) 미국의 투표율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로 미국이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선거하는 날도 일하거나 학교에 가야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일은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 유권자들이 투표를 못 한 이유를 물은 조사 결과를 보면, 투표소에 갈 시간을 내지 못했다는 답이 가장 많습니다.
유권자들을 직업이나 직군에 따라 나눠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중간선거에서 가장 투표율이 높은 직군은 변호사나 교수, 경영진과 같이 근무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전문직 종사자들이었습니다. 반대로 투표율이 낮은 직군은 시간당 급여를 받고 일하는 식당 종업원이나 소매점 점원 등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투표하러 가기 어림도 없는 사정을 알 겁니다. 지난 2014년 중간 선거에서 학생들의 투표율도 20% 정도에 그쳤습니다. 투표하는 날 학교가 쉬지 않으니 시간을 내지 못한 겁니다.
이처럼 누구는 마음만 먹으면 투표할 수 있지만, 누구는 하고 싶어도 투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근본적으로 공정하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소득이나 직업군에 따라 투표율이 달라지는 선거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요? 유권자라면 내 삶을 결정하는 선거에 누구나 동등하게 참여하고 투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도 당연히 마찬가지입니다.
선거일을 휴일로 지정하거나 원래 쉬는 날 선거를 치러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투표할 수 있게 유도하는 나라는 많습니다. 다만 미국은 지금까지 이런 나라들의 예를 따르지 않았죠. 미국 안에서도 몇몇 주는 시민들의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 선거일에 노동자들에게 적어도 몇 시간은 쉴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했지만, 대부분 유권자는 이 사실을 모릅니다. 연방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거나 주말에 선거를 치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얼마 전 있었던 콜럼버스 데이가 선거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도를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 그전까지 각 기업과 시민단체를 비롯한 고용주들이 먼저 직원과 노동자들에게 적어도 4시간 정도는 유급 휴가를 줘야 합니다. 당장 오는 11월 6일 중간선거부터 이를 실시해야 합니다. 이날 만큼은 학생들도 개인의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 더 나은 공동체를 가꾸는 데 이바지하도록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의 제안이 기업에는 추가로 드는 비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는 오랜만에 호황을 이어가고 있으며, 성장률도 높습니다. 이럴 때 투표율을 높이는 데 쓰는 비용은 일종의 애국이자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이해해보면 어떨까요? 시민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신성한 책무라 할 수 있는 정치 참여를 돕는 일은 무엇이든 명예로운 행위일 겁니다. 직원과 노동자들에게 투표하러 갈 얼마 안 되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면 시민들이 나서서 건전한 민주주의보다 사적인 이윤을 앞세운 기업에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민주주의가 정부를 운영하는 최선의 제도라는 데 대체로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최대한 많은 시민이 투표를 비롯한 정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전제가 따릅니다. 시민들이 정치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내 손으로 선출한 정부라고 느끼지 못하고 엘리트들이 정치 과정을 장악해 전체 사회가 아니라 그들만의 정치를 한다고 느끼면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의 뿌리가 흔들리게 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미국 민주주의를 좀먹고 있는 정치 혐오 현상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문제입니다.
더욱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뒤로 미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선거에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해 더 좋은 정책을 가려내고, 더 훌륭한 정치인이 공직에 진출하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투표 한 번 하기가 지금처럼 대단한 의지를 요구하지 않는 사회라면 미국 시민이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대하는 태도도 지금보다 더 긍정적으로 바뀔 겁니다.
모든 시민이 참정권과 투표권을 보장받는다고 그 사회가 곧바로 민주주의 사회가 되지는 않습니다. 시민들이 참정권과 투표권을 원하는 만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며, 그래서 실제 유권자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 정책을 고르고 그런 후보가 공직을 맡아 대의 정치를 하는 사회가 진짜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선거일에 투표하는 어찌 보면 간단한 행위가 정치인들에게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를 더욱 튼튼하게 가꾸는 일을 정부에만 맡겨둘 이유도 없습니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쉽고도 간단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선거일에 투표에 참가하는 겁니다. 노동자, 학생들에게 투표하러 갈 시간을 보장해주는 일은 기업이나 학교가 이들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이라기보다 민주주의를 가꿔나가야 하는 책무를 함께 짊어진 시민들이 그 책무를 나누어 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번 중간선거는 정치 참여에 관한 한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되는 선거입니다. 이미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시민의 숫자, 정치 캠페인이나 시위에 참여한 시민의 숫자, (투표하기 위해 해야 하는) 유권자 등록을 마친 시민의 숫자가 급증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없는) 중간선거치고는 보기 드물게 정당을 가리지 않고 정치 참여의 열기가 무척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못 하면 급여를 받지 못해서, 강의를 빠지면 불이익이 생겨서, 유치원에 간 아이를 지금 데리러 가야만 해서 투표를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민들이 나서서 가장 기본적인 참정권을 지켜야 합니다.
수많은 시민을 노동자로 고용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영리 목적의 법인 이전에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시민들이 모여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선거 당일 우리 직원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몇 시간 근무 시간을 줄여주고 해당 시간에도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이름 있는 기업이 먼저 발표한다면 중소기업과 학교들도 시민의 책무를 다하는 신성한 흐름에 동참할 겁니다. 직원들에게 경영진은 민주주의 제도가 번창하는 것을 기업의 성공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세요. 직원들이 회사를 더욱 존중하고 아끼게 될 겁니다. 단지 몇 시간 유급 휴가를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직원들도 결국,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는 시민들이기에 그 가치를 함께 가꿔나간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선거일을 휴일로” 캠페인이 어쩌면 무척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기업을 알아보고 그 기업을 아껴준다면 기업으로서는 절대 손해 볼 것 없는 장사가 될 겁니다.
(워싱턴포스트, Adam Bonica & Michael McFa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