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인이 스스로를 “노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인디애나대학 역사학과의 엘런 우 교수와 저는 피부색과 정체성을 주제로 전화 통화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우 교수나 저처럼 동아시아계 혈통을 갖고 있는 사람을 지칭할 수 있는 말은 아시아계 미국인, 동아시아인, 동아시아계 미국인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남아시아나 동남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갈색(brown)”이라는 짧은 단어로 지칭하는 것을 떠올리면서, 약간의 망설임 끝에 “노란색(yellow)”이라는 단어는 어떤지 의견을 구했죠. 우 교수는 흠칫 놀라더니, 그 단어에는 너무 많은 뉘앙스가 묻어있다며 난색을 표했죠. 아파보이는 누런 안색, 독성이나 위험 물질을 연상시킨다고요. 어떤 사람들에게 “노란 사람”이라는 지칭은 “칭크(Chink), 국(gook), 닙(nip)과 비슷한 수준의 멸칭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란색“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급진적인 동시에 매우 구체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죠. 분명히 멸칭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인종주의와 그에 맞서는 저항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직시하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생생한 기억 중 하나는 언니들과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아 ”파워레인저“를 시청하던 장면입니다.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레인저들의 색깔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했죠. 분홍색은 여자(당연히 백인 여성), 검정색은 흑인, 이런 식으로요. 노란색 레인저를 연기한 배우는 베트남계 여성이었죠. 제가 무척 좋아한 캐릭터였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내 피부는 노란색이 아닌데? 피부가 노란 사람이 어디있담?
최근 ”파워레인저“의 배우들과 제작진이 각 레인저의 의상 색깔은 인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인터뷰를 하기는 했지만, 어린아이의 눈에 노란색 레인저가 아시아인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해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노란색은 어쩌다가 동아시아인을 상징하게 된 것일까요? 어쩌다가 이 색깔이 공포와 분노, 나아가 힘을 상징하게 되었을까요?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역사에도 불구하고 왜 그 단어를 되찾아 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요?
노란색이라는 단어가 언제, 어떻게 동아시아인을 지칭하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수백년에 걸쳐 진행된 과정이죠. 학자들이 지적하다시피, 피부색이 노란 인종은 없기 때문에 ”노란 사람=아시아인“이라는 공식은 만들어진 것입니다. 실은 ”아시아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죠.
스웨덴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였던 칼 폰 린네는 현대 분류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인물입니다. 그는 1735년 인류를 호모 아시아티쿠스(Homo Asiaticus)를 포함한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다른 세 집단인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메리카인의 경우에는 이미 지정색(흰색, 검정색, 빨간색)이 있었죠. 고민을 거듭하던 칼 폰 린네는 아시아인에게 ”luridus“라는 색을 부여합니다. ”누런“, ”병색이 있는“, ”안색이 안 좋은“과 같은 뜻을 가진 단어죠.
이 주제로 저서 ”Becoming Yellow: A Short History of Racial Thinking“을 낸 국립대만대학교의 마이클 키박 교수는 칼 폰 린네가 식물학에서도 튼튼하지 못한 식물, 독성이 있는 식물을 묘사하는데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고 설명합니다.
키박 교수에 따르면, 초기 유럽 인류학자들은 ”아시아가 유혹적이고, 신비로우며, 쾌락과 향신료, 향수, 엄청난 부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아시아인을 노란색으로 지칭했다고 합니다. 노란색은 “평화로운”, “행복한”과 같은 긍정적인 뉘앙스와 동시에 “독성의”, “불순한”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담은 색이었죠. 서구인들이 아시아에 대해 가졌던 무언가 위험하고, 이국적이고, 위협적인 느낌을 “노란색”이라는 단어가 더욱 강화했다고 키박 교수는 설명합니다. 아시아인이 백인 문명을 압도한다는 공포를 의미하는 “yellow peril(황화, 黃禍)”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황화”라는 단어는 빌헬름 2세가 1895년에 꾼 꿈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꿈에서 용의 등에 올라탄 부처가 유럽을 휩쓰는 장면을 보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게 해 유럽과 미국의 지도자들과 공유했습니다. 아시아의 “노란 세력”으로부터 유럽을 지키자는 의미를 담은 이 그림은 원래 “유럽인들이여, 당신의 가장 성스러운 것을 수호해라”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지만, 1898년 미국에서 수십만 명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던 잡지 “하퍼스 위클리”에 실리면서 “The Yellow Peril”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시아에 대한 공포가 대중문화로 스며든 것은 놀랍지 않은 일입니다. 1913년, 영국의 작가 색스 로머는 푸 만추 박사(Dr. Fu Manchu)라는 가상의 악당을 만들어 냅니다. 황달에 걸린 듯한 노란 피부에 긴 콧수염을 기른 이 캐릭터는 이후 색을 밝히는 광인으로 묘사되는 모든 중국 남자의 기본형이 되었죠. 푸 만추 박사는 1923년 “푸 만추 박사의 미스테리”라는 작품으로 스크린에 진출했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명을 유지했습니다. 저만해도 놀이터에서 그의 이름이 인종차별적인 맥락으로 쓰이는 것을 셀 수 없이 들었습니다. 2013년 중국을 “푸 만추의 땅”이라고 부른 GM 광고가 등장했다가 비판을 받고 내려진 일도 있었죠.
1956년에는 “옐로 클로(Yellow Claw, 노란 갈퀴)”라는 마블 악당이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집니다. 대머리에 긴 턱수염, 찢어진 눈, 갈퀴 모양의 손가락을 가진 악당이었죠. 피부색도 선명한 노란색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모두 가상의 인물이지만, 이렇게 한 인종을 이런 식으로 악마화한 결과는 현실의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1943년까지 중국계 이민자의 입국을 금지한 미국의 이민법,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필리핀계 농장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강제 수용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미국에 아시아인들이 건너오기 시작한 이래,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에게 라벨을 붙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용어를 정하는 것도 백인들의 몫이었죠. 수십년 동안 “오리엔탈”이라는 단어가 쓰였고, 그 외에도 아시아계를 향한 다양한 멸칭이 존재했습니다.
상황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 건 6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난 때죠. 이러한 변화는 당시의 정치적인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합니다. 이후 저명한 역사학자가 된, 당시 UCLA 대학원생 유지 이치오카가 이 단어를 처음 쓴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 이른바 한국계, 베트남계, 일본계, 인도계, 라오스계, 캄보디아계 등 여러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옐로 파워 운동”이라는 깃발 아래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뭉치게 됩니다.
“아시아계 미국인 정치 동맹”이라는 단체를 창립한 유지 이치오카는 힘이 머릿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단체는 단순히 미국 내 대학에 아시아계 미국인에 관련된 수업을 개설해달라는 요구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회주의적 정책과 흑인 해방 운동, 여성 해방운동에 대한지지, 반 베트남전, 반제국주의적 노선이 포함되었죠.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명칭은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65년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죠.
하지만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명칭이 정체성 문제에 대한 답이 되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슈가 얽혀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우선 “아시아계 미국인”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에스닉 집단이나 모국에서 찾고 있었죠. UC리버사이드의 캐틱 라마크리슈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동아시아인들만을 “아시아계 미국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관련 저서를 낸 캐런 이시주카는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명칭이 여전히 정치적인 힘을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단어가 어떤 정치적인 정체성보다는 단순한 형용사가 된 만큼, 단어가 가진 뜻에 대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라마크리슈난과 이시주카의 이야기는 제가 새로운 명칭을 찾고 싶었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 합니다. “노란색이라는 말을 쓰면 왜 안 되는가”는 제가 너무나도 존재론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런 느낌은 어쩌면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말의 정치적인 의미가 모두 사라지고 그저 단순한 형용사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깊이있는 명칭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1969년 일본계 미국인 활동가 리리 구보타는 “옐로 파워!(Yellow Power!)”라는 선언문을 썼고 이는 UCLA의 급진주의 아시아계 활동가들이 출판한 잡지 “기드라(Gidra)”에 실렸습니다. 인종주의 사회에서 강요받던 침묵을 멈추고 제 3세계의 흑색, 갈색, 붉은색 형제들과 연대하자는 호소를 담은 글이었습니다.
구보타 외에도 “노란색”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쓴 사람들은 더 있습니다. “노란색 씨앗(Yellow Seeds)”은 필라델피아의 급진주의 아시아계 단체이자 이들이 펴낸 중국어-영어 신문의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버클리에서는 제 3세계 해방운동을 지지하는 “옐로 정체성 심포지움”이라는 회의가 열리기도 했고요. LA에서는 한때 조직폭력단에 몸담았던 아시아계들이 갱과 마약 문제 소탕을 위해 “옐로 브라더후드(Yellow Brotherhood)”라는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었죠. 뉴욕 차이나타운에서는 활동가들이 “황화(Yellow Peril)”라는 표현을 비튼 “노란 진주(Yellow Pearl)”라는 이름으로 음악 프로젝트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UCLA의 명예교수이자, 급진주의 저널 “아메라시아(Amerasia)”의 편집자인 러셀 렁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옐로 파워 포스터를 만들던 인물이죠. 저는 그에게 스스로를 “노란색”으로 부르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친한 친구들끼리 있으면 나 스스로를 칭크, 차이나맨, 옐로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라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내가 중국 이름을 쓰기도 하고 영어 이름을 쓰기도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를 부를 있는 이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완벽한 하나의 명칭은 없지만, 여럿이 합쳐지면 강력한 도구가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을 빼면 우리를 한데 묶어줄 수 있는 명칭은 없는 것일까요? 엘런 우 교수는 우리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어떠한 명칭을 계속해서 찾아 헤매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재전유(Reappropriate)”라는 적절한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활동가 젠 팽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팽은 “노란색”이라는 명칭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이슈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화자가 매우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사용할 때, 또 듣는 사람들이 그 역사적 맥락을 잘 알고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널리 쓰이게 되면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게 팽의 생각입니다. 또한 동아시아인들이 스스로를 “노란색”이라고 부르게 되면, 스스로를 “갈색”으로 부르는 다른 아시아계와 구분짓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죠.
민권운동의 최전성기에 활동가들은 권리 증진의 의미로 “노란색”을 이야기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단어였죠. 그 흔적이 오늘날에도 군데군데 남아있습니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감독 존 추는 영화 주요 장면에 콜드플레이의 “Yellow”를 중국어 버전으로 삽입하고 싶었지만 아시아인에 대한 멸칭에 대한 우려로 반대에 부딪힙니다. 하지만 감독은 “우리 스스로를 노란색으로 부른다면,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취지라며 콜드플레이에게 노래를 쓰게 해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뉴욕에는 “옐로 재킷 콜렉티즈(Yellow Jacket Collective)”라는, 6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활동가 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노란색” 외에도 여성, 아시아계 미국인, 갈색, 중국계 이민자 자녀, 한국계 미국인, 1세대 이민자 등 다양한 수식어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왜 노란색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들은 길을 가다 만나는 동아시아인 모두를 무턱대고 “노란색”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며, “이상적인 의미에서 정체성이란 내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가, 나를 만들어온 것이 무엇이라고 여기는가를 담아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아무런 맥락 없이 나 자신을 “노란 사람”이라고 부르자는게 아닙니다. 나랑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온 사람과 이야기할 때라면 몰라도, 나를 멸칭으로 부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 단어를 쓰지 않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단어가 여럿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안도감을 줍니다. 나의 정체성이 하나의 표현, 하나의 역사, 하나의 경험으로 단정지어질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옐로 재킷”의 말을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이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의 가장 강한 모습이 바로 황화(YELLOW PERIL)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억압하는 자들은 우리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희를 지켜보고 있고, 행동하고 있다.” (N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