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 온대 기후 지역을 덮친 폭염과 따뜻해진 북극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 온대 기후 지역에 걸쳐 여름 날씨가 좀처럼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과학자들의 연구는 여름이 길어지고 전에는 좀처럼 드물던 무더위가 훨씬 더 자주, 오래 이어지는 원인으로 북극 지방의 기온 상승을 꼽았습니다.
북극 기온이 오르면 북반구 제트 기류를 비롯한 대형 행성 바람(planetary winds)이 순환하는 속도도 느려집니다. 그러면 고기압과 저기압은 한곳에 더 오래 머물고 기단도 잘 움직이지 않아 똑같은 날씨가 누그러지지 않은 채 더 오래 지속됩니다.
지난 20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된 이번 연구의 저자들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끔찍하게 극단적인 날씨”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기온이 너무 높은 날이 비정상적으로 오래 지속되면서 여느 여름이었다면 그냥 맑은 날이 폭염이 되고, 비가 오지 않아 바싹 마른 날이 계속돼 산불이 잦아지며, 그러다 비가 오면 한꺼번에 쏟아져 홍수가 되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올여름 우리는 기록적인 폭염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런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더 문제입니다. 유럽과 러시아, 중국으로 이어지는 북반구 온대기후 지역, 미국에 모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름은 원래 덥기 마련이니, 잠깐 며칠씩 더운 거야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무더위가 가지 않고 계속되면 모두가 영향을 받습니다. 당장 농작물 생산에 차질을 빚죠. 이미 올여름 지나치게 덥고 뜨거웠던 날씨 탓에 수확량이 예년보다 적을 것으로 전망되는 농작물이 많습니다. 폭염과 무더위는 사람들의 건강에도 중대한 위협입니다.”
이번 연구에 공저자로 참여한 포츠담 기후변화 연구소의 딤 쿠무의 말입니다.
기후학자들에게 대기가 순환하지 않고 정체되는 현상은 오랫동안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겨울에 나타나는 패턴을 관찰, 분석한 연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연구는 여름의 상황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랬더니 주로 태풍이나 폭풍우와 함께 움직이는 대기의 흐름이나 더 높은 대류권에서의 흐름 모두 훨씬 느려졌고, 갈수록 더 느려지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대기가 돌아야 날씨도 바뀌고 결국 계절도 바뀌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똑같은 날씨가 오랫동안 계속되는 겁니다.
대기가 순환하지 않는 원인으로는 먼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극지방과 적도의 온도 차이가 줄어든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지구 전체의 기온이 상승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북극 지방의 기온은 지구 전체 평균과 비교했을 때 2~4배 더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북극과 적도의 기온 차이도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지구 전체로 봤을 때 바람이 덜 불고 대기의 순환도 잘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태풍은 적도 지방의 에너지를 극지방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동시에 기단을 밀어내 대기를 순환시키기도 하는데, 그 역할을 할 만한 에너지가 잘 생기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 결과 해양의 습하고 선선한 공기가 육지에 머무는 열을 식혀주지 못하며, 반대로 바다에서 태풍이나 비구름이 형성될 때 육지에서 대류 현상을 통해 바다로 건너온 공기가 이를 약화해주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지난해 허리케인 하비(Harvey)는 뭍에 상륙한 뒤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바다로부터 계속 에너지(수분)를 공급받아 약해지지도 않은 채 해안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하비의 직격탄을 그대로 맞은 텍사스주는 미국 기상 관측상 가장 많은 폭우를 비롯해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허리케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갈수록 더 많은 비를 뿌릴 수 있다고 경고했었습니다.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출간된 또 다른 논문은 지난 2016년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일어난 사상 최악의 산불도 지구의 대기가 순환하지 못하고 한 곳에 갇혀버린 현상이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완전히 진화하는 데만 무려 두 달이 걸린 앨버타 산불은 총 4조 원 가까운 재산피해를 내며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습니다.
“순환하지 않는 대기가 산불의 유일한 원인이었다고는 물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화하기 너무 어려울 만큼 맹렬한 기세로 산불이 계속된 데는 분명히 정체된 대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분석해봤더니 지난 2016년 산불만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 이후 이 지역에서 일어난 산불에는 대부분 지구의 대기 순환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논문의 주 저자인 포츠담 기후변화 연구소의 블라드미르 페투코프의 말입니다. 페투코프는 대기의 흐름을 분석하면 이상 징후를 일찌감치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산림 보호나 산불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대기의 순환이 느려지면서 다른 기후변화의 정도도 훨씬 심해지는 연쇄 효과입니다. 딤 쿠무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기상 현상과 기후는 결국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고 말합니다.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기후 모델이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자들도 기후변화가 여러 지역과 기상 현상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상 이변이 일어나는 원인이 한 가지가 아니고, 그 과정도 복잡하므로 특정 지역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폭은 훨씬 커졌습니다.”
두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과학자들도 자연적인 기상 패턴이 어그러지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기후과학자 크리스 래플리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극에서 일어나는 이상 기후는 북극의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인류의 행위로 인해 적도와 극지방 사이의 온도 차이가 줄어들었다는 뜻이자, 지구의 에너지 균형을 유지하기 위태로워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기와 해류의 흐름이 장기적으로 바뀌어버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만 해도 예측이 어려울뿐더러 무척 파괴적인데, 문제는 앞으로 이런 극단적인 날씨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가 들어선 길은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보기 어려운 길입니다.”
(가디언, Jonathan Wat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