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읽은 제프리 웨스트의 ‘스케일’ (1/2)
제프리 웨스트는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연구원이자 행정 직원으로 일하면서 핵무기가 아닌 평화의 물리학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생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은퇴한 뒤에는 가까운 산타페 연구소의 소장으로 부임해 연구 분야를 물리학에서 복잡성 과학(complexity science)으로 알려진, 더 광범위한 융합 학문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산타페 연구소는 복잡성 과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물리학자, 생물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 컴퓨터 전문가와 수학자가 함께 일하는 그룹입니다. 연구소의 목적은 과학적 방법으로 자연환경과 인간 사회의 복잡성을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스케일(Scale)은 산타페 연구소에서 제프리 웨스트와 그의 동료들이 얻은 통찰을 요약한 중간 보고서입니다. 작가로서 웨스트는 놀랄 만큼 뛰어난 방법으로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시켜 설명해냅니다. 그는 그림과 도표를 이용하여 사실을 설명하고, 공식을 사용하지 않고 적절한 상황에 해당 사실을 가져다 놓은 느긋한 문장으로 설명을 이어갑니다. 이 보고서에는 과학적 결론에 상식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와 개인적인 의견, 그리고 많은 여담이 담겨 있습니다. 문장과 그림은 똑똑한 열 살짜리 아이나 별로 똑똑하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의 제목을 ‘스케일’로 지은 데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책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웨스트는 “성장, 혁신, 지속 가능성의 보편적인 법칙 및 유기적 조직, 도시, 경제와 기업의 삶의 속도”라는 부제를 추가했습니다. 이 제목은 책이 규정하는 보편적인 법칙이 규모의 확장에 관한 법칙임을 설명해줍니다. “스케일”이라는 단어는 “함께 변화한다”는 의미의 동사입니다. 각 확장의 법칙은 두 가지의 측정 가능한 수량이 특정한 방식으로 함께 변화해감을 이야기합니다.
각 양의 변화를 백분율의 증가나 감소로 표현한다고 가정해봅시다. 확장의 법칙에서 고정수 k와 수량 B의 백분율을 곱한 수를 수량 A의 백분율이라고 지정합니다. 숫자 k는 확장의 법칙의 승(power)으로 명명합니다. A와 B의 백분율 변화는 복리로 누적되므로 확장의 법칙은 A가 B의 k승에 따라 변화한다고 설명하며, 여기서 말하는 ‘승(乘)’은 수학에서 제곱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던 ‘승’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물체가 공기 저항 없이 낙하하고 있다면 낙하 거리와 시간 사이에 ‘k=2’라는 확장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거리는 시간의 제곱으로 변화합니다. 당신이 1초에 16m를 추락한다면 2초에는 64m, 3초에는 144m를 추락하는 것입니다.
확장 법칙의 또 다른 전형적인 예는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가 1618년에 발견한 제3 행성 운동법칙입니다. 케플러는 세심한 관찰을 통해 행성이 태양의 궤도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행성 궤도 지름의 3/2 승에 비례함을 발견했습니다. 즉, 시간의 제곱은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뜻입니다. (주: 행성 공전 주기의 제곱은 궤도의 긴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 케플러는 당시 알려진 여섯 개 행성의 궤도 지름과 주기를 측정했고, 확장의 법칙을 정확하게 따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59년이 지난 뒤 아이작 뉴턴은 케플러의 행성 운동법칙은 만유인력의 수학적 이론의 결과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케플러의 법칙은 뉴턴에게 물리적 우주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돕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습니다.
천문학에서 케플러의 제3 법칙만큼이나 중요한 확장의 법칙이 생물학에도 존재합니다. 모투 키무라가 처음 그 중요성을 발견했으므로 그의 이름을 붙여 마땅한 유전자 부동의 법칙(Law of genetic drift)이 그것입니다. 유전자 부동은 자연선택과 함께 진화를 이끄는 두 개의 큰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 다윈은 자연선택을 진화의 주요 원인으로 이해하여 칭송받지만, 유전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유전자 부동을 그의 이론에 포함하지 못했습니다.
유전자 부동은 개별적인 유전자의 임의 변형으로 인한 집단 평균 구성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유전자 부동으로 인해 선택의 부재에서도 종은 진화하게 됩니다. 모집단의 구성원 수가 다수일 때는 자연선택이 지배적이며, 집단의 크기가 작을 때는 유전자 부동이 더 지배적으로 작용합니다. 즉, 유전자 부동과 자연선택은 함께 유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 겁니다.
유전자 부동은 집단이 오래 소수로 유지되는 경우 새로운 종의 형성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소수의 집단에서 유전자 부동이 지배적인 이유는 단순 확장의 법칙 때문입니다. 유전자 부동은 인구의 제곱승에 반비례합니다. 인구 100만 명일 때보다 인구 1만 명일 때 10배 빨리 유전자 부동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확장은 모든 종류의 무작위 변화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키, 달리기 속도, 사춘기 나이 또는 지능검사 점수같이 측정 가능한 양을 관찰할 경우, 유전자 부동은 인구의 역제곱승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게 됩니다. 제곱승은 임의적인 현상의 통계적 평균에서 도출된 결과입니다.
웨스트는 이 책에서 엄청난 주장을 합니다. 케플러의 법칙, 유전자 부동의 법칙과 유사한 확장의 법칙으로 생물학, 사회학, 경제 및 상업을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을 정당화하고자 그는 확장의 법칙을 논의하고, 그 법칙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이런 증거들과 주장이 어떻게 이해로 이어지는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즉 논의와 증거 제시까지는 훌륭하게 해냈지만, 마지막 과제인 이해를 끌어내는 과정은 썩 잘 해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을 법칙의 서술과 증거를 제시하는 데 썼으며 설명에는 아주 적은 부분만 할애했습니다. 산타페 연구소의 관찰자들은 현대의 케플러 역할은 잘 해냈지만, 현대 뉴턴의 역할에는 근접하지 못했습니다.
과학 각 분야의 역사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자연이 무엇을 하는지 바라보는 탐험의 시기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연을 바르게 묘사하기 위한 정확한 관찰과 측정의 시기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우리가 자연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론을 세우고 설명하는 단계입니다. 물리학은 케플러 시대에 두 번째 단계에 이르렀고, 뉴턴과 함께 세 번째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웨스트가 정의하는 대로 경제학과 사회학을 포함한 복합성 과학은 빅데이터가 시작된 2000년까지 첫 번째 단계에 머물렀습니다. 정보를 전자문서 형태로 저장하는 비용이 폐기하는 비용보다 더 저렴해질 무렵, 빅데이터의 시대가 갑자기 시작되었습니다. 정보의 저장은 자동화될 수 있는 데 반해 정보를 폐기하는 과정은 대부분 인간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정보의 폐기 비용이 서서히 감소한 반면 정보의 저장 비용은 급격히 감소한 것입니다. 2000년부터 세계는 빅데이터의 홍수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비즈니스와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 분야에서 데이터베이스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저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보다 정보의 축적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산타페 연구소의 복합성 과학을 주도하는 것도 인간사와 생태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빅데이터입니다. 웨스트가 쓴 책의 주요 주제인 확장의 법칙의 형태로 빅데이터를 제시할 때 인간은 빅데이터를 가장 쉽게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장의 법칙을 모았다고 곧바로 이론이 되지는 않습니다. 복잡성 이론은 더 깊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야 합니다. 왜 조류는 10,000개의 종이 있는데 포유류는 5,000종 밖에 없을까? 온혈동물은 있는데 왜 온혈식물은 없을까? 왜 인간 사회에서는 자주 치명적인 다툼이 벌어질까? 인류의 숙명은 무엇일까? 빅데이터가 이런 질문에 실마리를 줄 수는 있겠지만, 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복잡성 과학이 세 번째 시기로 들어서면 이런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이 밝혀지고 새로운 질문이 도래할 것입니다.
이 책의 첫 장인 ‘큰 그림’은 물리학의 가장 기본법칙 중 하나인 열역학 제2 법칙이 어떻게 삶을 불안정하게 하고 생존을 어렵게 하는지 설명하는 “에너지와 신진대사, 엔트로피” 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자세한 논의를 위한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입니다. 제2 법칙은 엔트로피가 모든 닫힌 시스템에서 예외 없이 증가한다고 설명합니다. 웨스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죽음, 세금 및 다른 최악의 상황처럼 열역학 제2 법칙은 우리와 주위의 모든 것을 힘들게 합니다. 엔트로피는 죽이는 것이죠.”
웨스트의 큰 그림은 심각하게 일방적입니다. 그림의 이면인 질서와 무질서의 역설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천문학과 생물학의 현실에서 질서 있는 구조가 무질서에서 자연스럽게 발현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질서 있게 움직이는 태양계는 무질서한 가스와 먼지구름에서 생겼습니다. 호랑이의 무서운 대칭 무늬와 공작의 아름다움은 무질서하고 죽은 행성에서 나왔습니다.
천체물리학자 팡리즈가 아내 리슈시안과 함께 펴낸 유명한 책 “우주의 창조”(1989)에는 질서와 무질서의 역설에 대한 최고의 설명이 담겨 있습니다. 그 설명은 물리적 세계에서 중력의 특이한 행동에 있습니다. 에너지의 회계 대차대조표에서 중력 에너지는 적자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거대한 물체에 가까이 있을 때, 당신의 중력 에너지는 질량에서 무한대로 멀어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뺀 값이 됩니다. 당신이 지구의 언덕을 올라갈 때 중력 에너지는 더 작은 음수가 되지만 결코 0이 되지는 않습니다. 중력의 지배를 받는 모든 움직이는 물체는 온도가 증가하면 에너지는 감소하고, 온도가 감소하면 에너지는 증가합니다.
열역학 제2 법칙의 결과로 에너지는 하나의 물체에서 또 다른 물체로 흐르는데, 뜨거운 물체는 더 뜨거워지고 차가운 물체는 더 차가워지게 됩니다. 태양계가 진화하면서 태양은 더 뜨거워지고 행성은 더 차가워졌습니다. 중력이 지배적인 모든 상황에서 제2 법칙은 엔트로피와 함께 국소적 대비를 증가시킵니다. 이는 태양과 같은 천체, 뇌우나 허리케인 같은 지구의 현상에도 적용됩니다. 생물을 포함한 천체와 지구 물체의 다양성은 제2 법칙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 사회와 자연 생태의 진화는 이 패턴의 일부입니다. 제프리 웨스트는 이러한 팡리즈와 리슈시안의 통찰력을 모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웨스트의 책에 담긴 사실적인 내용은 81개의 숫자 도표에 담겨있으며, 이 도표들은 다양한 관찰된 수량이 따르는 다수의 확장의 법칙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도표는 동물의 신진대사율에 관한 도표인데, 쥐로 시작해서 코끼리에 이르는 온혈동물 종의 이름이 표시된 28개의 점을 보여줍니다. 점은 정사각형 그래프에 표시되는데 수평 위치는 종의 평균 질량을, 수직 위치는 평균 에너지 소비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도표를 보면 28개의 점이 놀랍게도 정확히 하나의 직선 위에 놓여있습니다. 직선의 기울기는 곧 에너지 소비량의 질량에 대한 확장의 법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량은 질량의 3/4승으로 증가합니다. 에너지 소비의 4승은 질량의 3승에 비례해 증가한다는 뜻입니다. 이 확장의 법칙은 포유류와 조류에게 정확하게 적용됩니다. 어류나 파충류와 같은 냉혈동물은 일정한 체온이 없기 때문에 이 법칙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파충류의 에너지 소비량은 체온에 따라 달라지며, 체온은 날씨에 따라 변합니다.
유사한 도표는 다른 수량이 보여주는 확장의 법칙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법칙들은 일반적으로 동물의 해부학과 생리학에 가장 정확하게 맞았고, 도시나 기업들과 같은 사회 제도에 적용했을 때는 비교적 덜 정확했습니다. 책 속의 10번 도표를 보면 포유류의 심박 수는 질량의 1/4승에 반비례하며, 35번 도표는 미국에서 승인된 특허의 숫자가 인구의 1.15승에 비례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36번 도표는 일본에서 보고된 범죄 건수가 인구의 1.2승에 비례하며, 75번 도표는 미국의 영리 회사는 회사가 창업한 지 몇 년 됐는지에 상관없이 폐업률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회사의 기대 수명은 약 10년으로 항상 일정했습니다. 기업의 짧은 수명은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모두 가져오는 자본주의 경제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먼저 실패한 기업을 제거할 수 있다는 점은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실패한 기업도 도태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원을 소비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반면 장기적 계획과 선견지명에 대한 동기가 사라진다는 점은 나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Freeman Dy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