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 인류의 진화(1/3)
비행기 창밖으로 스페인 남단에서 지중해를 향해 비쭉 튀어나온 석회암 바위산인 지브롤터가 보였습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 가운데 하나였고 한때는 지구의 끝을 상징했으며, 그리스의 선원들은 이 바위 너머로는 항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미지의 대륙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믿었지요.
2016년 여름, 지브롤터는 21세기판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리학적으로는 스페인의 일부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영국에 속해 있으므로 브렉시트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는 것입니다. 7km2도 되지 않는 이 작은 지역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이곳은 사실 지난 수천 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고대 유럽인들은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 페니키아인들은 대서양으로 나서기 전 축복을 받기 위해, 그리고 카르타고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 이곳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전 이곳에 살던 이들 때문입니다. 3만~4만 년 전, 해수면이 지금보다 매우 낮았고 기후는 빙하기를 넘나들던 때입니다. 새와 같은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더 따뜻한 남쪽으로 향했고, 여러 동물이 멸종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버티던 대형 동물 가운데는 사자와 늑대, 그리고 적어도 두 종 이상의 인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현생 인류’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우리의 사촌격인 네안데르탈인입니다.
이들 원시 인류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바로 지금의 우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경험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고, 그 경험 속에 아마도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 곧 당뇨에서 우울증에 이르는 질병의 해답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고고학자인 클라이브와 제랄딘 핀레이슨은 고고학자들이 몰 법한 오래된 차로 나를 데리러 호텔로 왔습니다. 이 작은 반도의 특징에 맞게 그들의 모습 역시 전혀 달랐습니다. 클라이브는 창백한 피부에 머리는 은발이었고, 스코틀랜드 출신이었습니다. 제랄딘은 올리브색 피부에 검은 머리였고, 나폴레옹의 정복을 피해 떠났던 제노바 출신입니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우리와 정말로 다른 종의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을 방문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 얼마나 많은 인간의 종(species)이 있었는지, 그리고 인종(race)은 얼마나 다양했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 증거는 60만 년 전 즈음, 불을 쓸 줄 알고 간단한 석기와 동물의 뼈를 도구로 사용하며 집단으로 대형 동물을 사냥하던 한 인간종이 아프리카에서 발생했음을 말해줍니다. 호모 하이델베르그로 알려진 이들은 50만 년 전, 주기적으로 아프리카를 녹지로 만들었던 기후 변화의 이점을 활용하면서 점차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나 30만 년 전, 유럽으로의 진출은 끝났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심한 빙하기 때문에 생긴 사하라 사막을 더는 넘어가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지리학적 분리는 진화에 의해 유전적 차이로 이어졌고, 서로 다른 인종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같은 종이었고, 서로 교배가 가능했습니다. 아프리카에 남아있던 인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곧 ‘현생 인류’가 되었고 더 추운 북유럽에 적응한 이들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그리고 우리가 유전학을 통해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는 여러 인종이 되었습니다.
약 6만 년 전, 현생 인류 일부가 아프리카를 벗어나던 시점에 네안데르탈인들은 시베리아에서 스페인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퍼져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만났고 종종 그들과 교배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으로 알 수 있으며, 나를 포함한 오늘날의 모든 유럽인에게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일부 남아 있습니다. 이미 유럽의 환경에 적응했던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우리 조상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일까요?
절벽을 따라 나 있는 좁은 터널로 차를 몬 우리는 군 초소에 당도했습니다. 클라이브는 경비병에게 증명서를 보여주었고, 우리는 공원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운 우리는 낙석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할 헬멧을 쓰고 절벽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철제 계단은 우리를 60m 아래 좁은 해변으로 안내했습니다. 파도가 조약들 사이로 몰려왔고 바위 위를 걸으며 우리는 길을 찾았습니다.
나는 갑자기 절벽의 동굴을 발견하고 놀라 발을 헛디딜까봐 발걸음에 최대한 집중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흰 절벽 면에 난 커다란 물방울 모양의, 안으로 들어가면 더 넓어지는 형태의 고람 동굴(Gorham’s Cave)에 도착했습니다. 지붕이 매우 높게 솟아 있어 마치 성당처럼 생긴 이 지형은 네안데르탈인이 수 만 년 동안 거주하던 곳입니다. 과학자들은 이곳이 네안데르탈인의 마지막 피난처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약 3만2천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이 지구의 유일한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입구에 있는 한 바위에 앉아 한때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어떤 이들이 이 자리에 앉아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브롤터에 도착하기 전 나는 내 조상을 찾아주는 유전자 검사를 받았습니다. 내가 시험관에 침을 뱉어 보내자 그들은 내 유전자 중 1%가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직은 이보다 더 많은 정보를 말해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사실이 건강에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 지적이며 다양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내게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주었고, 나와 그렇게 가깝다는 사실은 무척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살던 공간에 앉아 이제 그들 중 누구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더듬어보다가 어쩌면 그들이 아닌 우리 인류가 멸종하고 네안데르탈 여성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그녀의 멸종한 사촌을 생각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인간이 극히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고람 동굴은 거처로 삼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5년간 이 동굴을 꼼꼼하게 조사해온 클라이브는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시대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해수면은 훨씬 낮았고 바닷가를 향해 넓은 사냥터가 펼쳐져 있어, 네안데르탈인들은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목표물을 찾고 서로에게 신호를 보냈을 것입니다. 풀숲과 호수, 습지는 새, 사슴, 그리고 다른 동물들의 서식처였을 것입니다. 오른쪽의 반도 끝은 해안가로 이어지며 조개가 풍부했고, 석기를 만들기에 적절한 수석이 쌓여 있었습니다. 클라이브는 이곳의 풍경도 무척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변의 다른 동굴까지 포함해 이 지역은 아마 지구에서 가장 많은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지역일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의 도시였지요.” 그의 말입니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클라이브의 연구팀은 불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더 안쪽에는 잠을 자는 동안 하이에나, 사자, 표범 등의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들은 조개, 솔방울, 식물, 올리브를 먹었습니다. 대형 동물과 새를 사냥했습니다. 지금은 바닷속으로 잠긴 이 지역에는 여러 담수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유 시간에 앉아서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클라이브와 제랄딘은 고람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예술작품을 비롯해 그들의 문화를 나타내는 여러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해시태그’ 형태는 ‘기록’이 시작된 초기 모습일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이 보온을 목적으로 한 의복 외에 검은 깃털 겉옷이나 머리 장식을 만드는 등 일종의 의식을 치렀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이들이 아프리카에서 나온 우리 조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적 삶을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클라이브는 다양한 종류의 석기와 뼈, 동물의 머리뼈를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화살촉을 한 손에 쥐고 같은 기술이 생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이들에게 수만 년 동안 이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며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유럽의 다른 네안데르탈 유적지에서는 13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독수리 발톱 목걸이와 얼굴을 꾸미기 위해 쓰였을 황토 분을 담은 조개껍데기, 그리고 죽은 자를 묻기 위한 묘지가 발굴되었습니다.
이들은 아프리카 바깥에서 진화하면서 더 어려운 환경에 적합한 능력과 문화를 발전시켰을 것입니다. “현생 인류가 중동에는 7만 년 전, 호주에는 5만 년 전에 도착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세요. 이들이 유럽에 도착하는 데 그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린 이유가 뭐겠어요? 나는 네안데르탈인이 매우 뛰어났고, 그 때문에 현생 인류가 유럽에는 진출하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클라이브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3만9천 년 전, 네안데르탈인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근친 교배로 인해 유전적 다양성이 줄었고,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거주지를 잃게 되자 이들의 수는 극히 줄었습니다. 이들이 삶의 중심으로 삼았던 숲이 많이 사라졌고, 비록 도구를 만들고 기술을 익히는 지능을 가졌음에도 이들의 육체는 새로운 기후와 지형에 맞는 사냥 기술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유럽의 일부 지역은 단 한 세대 만에 울창한 숲이 사라지고 나무 한 그루 없는 평원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넓은 평원에서 단체로 대형 동물을 사냥하는 데 익숙했던 현생 인류는 이런 변화에 쉽게 적응했습니다. 누우 대신 순록을 잡으면 되었고, 사냥법은 사실상 동일했습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들은 숲에서 살던 이들이었습니다.”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요. 만약 기후가 더 습해지고 따뜻해졌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의 흔적을 찾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모자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