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가정폭력 비범죄화 움직임, 배경은?
2017년 2월 7일  |  By:   |  세계, 정치  |  10 Comments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은 범죄일까요? 많은 나라에서 이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 의회는 상습적인 폭력과 큰 상해를 입힌 폭력을 제외한 가정폭력을 비범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많은 러시아인이 개인의 권리라는 자유주의적 개념을 받아들였음에도, 푸틴 치하의 러시아는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정폭력 비범죄화 움직임은 2016년, 정부가 러시아 법률상 폭력 가운데 가장 정도가 약한 “구타(battery)”를 비범죄화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에서 가정폭력만을 다루는 법이 따로 없는 나라는 러시아를 포함해 3개국뿐입니다. 배우자와 자녀가 일반적인 피해자보다 더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폭력 범죄와 똑같이 다룬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구타를 비범죄화할 때도 가정폭력만은 예외로 두었고, 다만 인종차별적 폭력 범죄와 마찬가지로 최대 형량을 2년으로 두었습니다.

당시의 결정에 시민사회는 만족했지만, 분개한 쪽은 러시아 정교회였습니다. 교회는 “합리적이고 사랑이 담긴 체벌은 하느님이 허락한 부모의 권리”라고 주장했죠. 또한, 보수 단체들은 자신의 자식을 때린 부모가, 옆집 아이를 때린 어른보다 더 무거운 벌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이런 목소리에 따라 의회는 구타 초범에 대해 벌금형과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처하고, 피해자가 증거를 수집해 소를 제기해야 하는 사인기소의 영역으로 넣는 법안을 추진하게 되었죠. 반복되는 폭행은 제외되었지만, 1년의 기간을 두고 다시 폭행하면 초범과 같이 처리되는 구멍이 있습니다. 그렇게 추진된 법안은 두 번의 투표를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했고, 무난히 3차 투표를 통과해 입법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이 법안을 두고 국회의장은 “튼튼한 가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법”이라고 말했지만, 모스크바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아나 자브네로비치 씨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브네로비치 씨는 남자친구와 수년간 함께 살며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 사이의 언쟁이 폭행으로 번졌습니다. 그녀는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도움을 자청한 변호사를 만나 겨우 남자친구를 기소할 수 있었죠. “많은 사람이 가정폭력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가정폭력에는 문화적인 뿌리도 있습니다. “그가 너를 때리면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러시아 속담도 있죠. 가정폭력 관련법 입안을 주장하고 있는 활동가 알레나 포포바 씨는 러시아에서 폭력이 “규범일 뿐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러시아 내무부의 통계만 봐도, 폭력 범죄의 40%가 가정 내에서 일어나죠. 포포바 씨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여성의 70%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습니다. 관료주의적인 장애물은 피해자들을 좌절시키는 주범입니다.

풀뿌리 운동에 힘입어 사회적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겠지”라는 인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해시태그(#IAmNotAfraidToSpeak)를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많은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나누기도 했죠.

하지만 극단적인 보수층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동성애 확산” 금지법 발의로 유명세를 떨친 엘레나 미줄리나 의원은 “여자들도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모습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가정사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법안 찬성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학부모 단체 관계자는 “가정은 각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한때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가정의 사생활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었던 시절을 경험한 러시아인들이 이 문제에 민감한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가정폭력 관련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부패한 경찰이 가정사에 개입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중세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반발에, 비범죄화 법안 찬성파는 “중세가 아니라 19, 20세기 유럽 문명의 가치를 되찾자는 것이라고도 반격합니다. 그 정도도 많은 여성에게는 충분히 큰 퇴보가 되겠지만요. (이코노미스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