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대선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한 집단, 바로 클린턴의 열성팬들입니다
2016년 11월 2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오하이오 주에 있는 한 회사의 인사과장인 킴 말론(50) 씨는 평생 정치 운동에는 참여해 본 적이 없는 교외 지역의 평범한 주민입니다. 매일 저녁 6시쯤 퇴근해 아이들의 저녁식사를 챙기죠. 하지만 8시부터 그녀는 거실에 앉아 트위터 전사로 거듭납니다.

이번 대선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모든 언론이 집요하게 조명하고 분석해 온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킴 말론과 같은 힐러리 클린턴의 열성팬들은 지금껏 트럼프의 성난 팔로워들에 가려 거의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클린턴의 비호감을 다루는 기사의 물결 속에 간과된 분명한 팩트는 그녀에게도 대단히 충성심 강한 지지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의 민주당 후보처럼 클린턴도 다양한 소수자 집단의 지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 캠프에서 전략가로 일했던 벤 털친은 클린턴의 가장 큰 무기가 50세 이상 민주당 지지 여성들이었다고 말합니다. 클린턴을 지지할 뿐 아니라, 그녀의 삶에 자신의 삶을 대입해 공감하는 사람들이죠. 이들이 경선 과정에서도 흔들림 없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이루며 클린턴의 경선 승리를 이끌었다는 것이 털친의 분석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트럼프가 싫어서 그나마 나은 선택, 차악으로서 클린턴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기다려 온 대통령 후보가 드디어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말론이 트위터에 올리는 글들 가운데는 트럼프를 비방하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클린턴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녀는 트럼프가 아닌 어떤 공화당 후보가 나왔어도 클린턴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인물, 특히 남성중심적인 분야에서 여성으로서 높은 지위에 오른 인물이 드디어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이들은 클린턴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매우 높이 평가합니다. 직업인으로서 그녀의 삶과 희생에 공감하죠. 제 2세대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성년기를 보낸 이 여성들은 남성들과 달리 클린턴이 영부인으로서 적극적이고 정치적인 행보를 보인 것에도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린턴이 여성인 것이 유일한 지지 이유는 아닙니다. 클린턴의 지성과 직업 윤리, 그리고 끈기를 존경하고, 그녀가 겪은 좌절과 성공에 모두 감정을 이입하죠. 오랜 세월 클린턴을 끈질기게 괴롭힌 논란들도 이 여성들에게는 오히려 호감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필라델피아 유세 현장에서 만난 가정주부 로즈 마리 닌(70) 씨는 “공적인 삶, 사적인 삶 속에서 그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버텨왔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샌더스 지지자들이 진보의 탈을 쓴 보수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하는 부분, 트럼프 지지자들이 “직업 정치인”이라고 비하하는 부분이 오히려 열성팬들에게는 장점입니다. 클린턴이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해온 리버럴로, 중요한 경험을 갖춘 공직자로 살아왔다는 뜻이니까요. “오랜 세월 공직자로 살면서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왔죠.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필라델피아 유세 현장에 참여했던 도시공학자 에이미 크뢰거의 말입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클린턴은 “실패한 현재”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클린턴 지지자들이 바라보는 미국은 다릅니다. 실패는커녕, 오바마 8년 동안 여러가지 진보를 이뤘죠. 장애인인 말론 씨의 남동생은 오바마케어 덕분에 의료보험을 얻었고, 게이인 또 다른 남동생은 텍사스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클린턴은 과거의 성과를 그대로 지키면서도 점진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적격자죠.

잘 나가는 전문직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비 그린은 40대 고졸 여성으로 경기침체 때 직장을 잃었지만, 여전히 부유한 아이비리그 출신 변호사의 삶에서 공감할 구석을 찾아냅니다. 그린 씨 역시 쌍둥이를 낳으면서 하던 일을 그만 두어야했기 때문이죠. 그녀는 클린턴이 남편의 유명세에 묻어갔다는 비난에 분노를 감추지 못합니다. “너무나 모욕적인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남편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해왔나요? 조금만 들여다봐도 빌 클린턴이 오히려 부인 덕을 본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클린턴이 정직하지 못하고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비난도 열성팬들 앞에서는 힘을 잃습니다. 클린턴은 오히려 성별 때문에 부당한 평가를 받은 피해자죠. “헤어스타일서부터 안경, 행동까지, 갖은 지적을 받고 다 바꾸었죠. 얼마나 모욕적이고 상처가 되었겠습니까? 남자들이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린 씨의 말입니다.

타고난 연설가인 오바마에게 열광하던 젊은 세대는 클린턴의 화법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50대 이상의 민주당 여성들은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남성 중심의 업계에서 성차별을 겪으며 고군분투하다 은퇴한 61세의 컴퓨터 전문가 벳시 트루는 클린턴이 자신의 남편을 탄핵하려 했던 상원의원들과 함께 원만하게 일해온 것을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잖아요.”

마지막 TV 토론회에서 트럼프가 클린턴을 “고약한 여자(nasty woman)”라고 부르자, 수많은 여성들이 트위터에서 자신의 이름 앞에 “고약한”을 붙이며 연대를 표했습니다. 트루 씨도 여기에 동참했죠. “클린턴이 고약한 여자라면, 세상에 고약한 여자들이 수없이 많다는 걸 알아야 할 겁니다.” (토론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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