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후에는 후회가 따른다는 미신에 대하여
미국 각 주에서 낙태를 규제하는 법은 대부분 낙태가 유별나게 힘든 결정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낙태를 앞둔 여성에게 낙태의 신체, 정신적인 위험성과 후유증에 대해 알리는 상담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주가 17곳에 달하죠. 상담과 수술 사이에 숙려 기간을 갖도록 하는 곳도 전체의 절반이 넘습니다. 초음파를 통해 아기의 영상을 보고 나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도 10개 주에 이릅니다. 이런 규정 뒤의 논리는 자명합니다. 힘든 선택인 만큼 충분한 정보와 상담을 받고,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는 낙태반대 단체는 물론,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과 같은 “프로 초이스(pro-choice)” 단체의 안내 책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힐러리 클린턴 역시 낙태를 “개인적이고 어려운 선택”이라고 말한 바 있죠.
하지만 지난주 학술지 <컨트라셉션(Contraception)>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신 중절 시술을 받고자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건강 및 의료 관련 결정에 대한 확신 정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낙태를 결정한 여성의 확신 정도는 유방암 치료, 임신 중 항우울제 사용, 침습적 산전 검사를 결정한 여성들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해당 연구의 1저자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대학의 로렌 랄프는 이러한 조사 결과가 “낙태란 모종의 이유로 다른 의료 관련 결정과 달리 특수한 것”이라는 관념에 반한다고 설명합니다. 나아가 “의무적인 대기 기간과 상담 서비스가 모든 여성에게 보편적으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연구진은 낙태 시술 전 72시간의 숙려 기간을 두고 있는 유타 주에 위치한 클리닉 4곳에서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참여 여성들은 클리닉 관계자를 만나기 전에 설문지를 작성했고, 질문 내용은 낙태 결정에 압박을 느꼈는지, 모든 선택지의 장단점, 위험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지 등이었습니다. 낙태 관련 흔한 괴담(유방암을 야기한다, 출산보다 위험하다 등)에 대한 질문도 있었죠. 연구진은 이렇게 얻은 설문 결과에 일반적으로 의료 관련 결정에 대한 확신도를 측정하는 데 널리 이용되는 척도를 적용했습니다. 다른 치료에 대한 환자의 태도를 파악하는 데도 사용되어 온 기준이므로 비교가 가능했죠. 설문 결과 낙태를 앞둔 여성들은 다른 여러 가지 치료(예를 들어 무릎 재건 수술)를 앞둔 환자들보다 훨씬 더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고 있었으며, 시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흘이라는 숙려 기간이 지나고도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경우가 89%로 훨씬 많았습니다. 다른 치료를 선택하는 환자들에 비해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이 훨씬 더 심적 갈등을 느낀다는 관념에 반하는 결과였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낙태 결정이 간단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해당 설문에서 낙태 결정이 “쉬웠다”고 답한 여성은 절반을 살짝 넘었습니다. “어려웠다”고 답한 여성은 30% 이하였죠. 낙태 시술 이후에 결정이 어려웠다고 답한 여성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또 다른 설문 결과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설문 응답자의 90%는 “나는 내 결정에 확신을 느꼈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답했습니다. 낙태에 대한 근거없는 소문을 믿는 여성일수록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당연한 상관관계도 함께 파악되었죠.
불안한 선택은 곧 후회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하고 나면 후회한다”는 낙태 반대 진영의 단골 무기이기도 하죠. 실제로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을 위한 상담소나 낙태 반대 활동가들은 “낙태 후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인정하지 않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하지만 낙태 이후 후회 역시 그렇게나 흔한 경험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대학 연구팀이 작년에 낸 논문에 따르면, 낙태를 한 여성의 95%가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대형 표본을 대상으로 시술 후 3년간 진행된 설문에 따르면 시술 직후에도, 시간이 지난 후에도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여성들이 절대 다수였죠.
한편 부모가 된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우리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은 유감스럽습니다. 2008년 네브래스카 주에서 아동 유기가 비범죄화되자, 병원과 경찰서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이들로 넘쳐났습니다. 주 의회는 황급히 해당 법이 갓난아기에게만 해당된다고 수정안을 냈죠.
낙태 전 병원에 가기를 망설이고, 시술 후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유는 다양할 테지요. 종교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낙태는 살인”이라고 공공연히 외치는 단체들이 있다는 사실도 고통의 원인 중 하나일 겁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가지 않은 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고,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수많은 여성들 역시 종종 ‘후회’라는 것을 합니다. 만약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인생이 더 쉽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지곤 하죠. 이런 문제의 어려운 점은 그 답을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 없는 삶을, 낳지 않으면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없으니까요. 아이를 낳는 것, 낳지 않는 것 모두 “개인적이고, 어려운 선택”입니다. 두 가지 길 중 한 쪽을 택한 여성에게만 정부가 나서서 손을 잡아주며 간섭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슬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