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미국 정부, 북한 핵실험 전에 북한과 평화 협정 개시 합의
옮긴이: 북한과 미국이 올 초 북한 핵실험 전에 물밑에서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대체하는 평화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우리 언론이 앞다투어 소개했습니다. 해당 기사의 전문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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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근 핵실험을 하기 며칠 전,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평화 체제를 논의하는 협정을 시작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보여야만 협상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미국 정부는 북한의 수소폭탄 프로그램을 협상 의제에 포함하자고 요청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절했고 1월 6일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물밑에서 진행되어 온 외교 채널도 가동을 멈췄다고 미국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른바 ‘UN 채널’을 통해 북한과의 접촉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오바마 집권 2기 동안 미국 정부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폐기를 유도하는 협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북한과도 비핵화 협상 가능성을 타진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일요일 북한과 접촉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는 미국 정부의 오랜 원칙에 입각한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 측이 먼저 협상을 타진해왔다고 밝히며,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해 오랫동안 견지해 온 비핵화 원칙에 입각해 의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먼저 제안해 온 쪽은 북한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제안을 신중하게 살펴봤으며, 비핵화 문제가 논의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은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북한과도 비슷한 협상을 할 용의가 있음을 알린 일종의 신호와도 같았다. 다만 미국 정부는 북한이 (이란보다) 훨씬 불투명하고 비협조적인 상대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번 물밑 접촉이 무위로 돌아간 점도 북한과 미국이 현안을 직접 대화로 풀어가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현재 한반도는 63년 전 체결된 휴전 협정에 따라 전쟁을 멈춘 상태다. 2011년 말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은 휴전 상태를 공식적으로 끝내고 이를 대체할 평화 협정을 체결하자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이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기 위한 연막이라고 해석하는 전문가도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먼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지 않는 한 어떤 협상도 있을 수 없다는 이른바 선결 조건을 내걸었다. 이번에 협상을 타진하는 과정에서는 선결 조건을 거두어 들였지만, 비핵화 문제를 논의에 포함하자고 역으로 제안한 것을 보면 큰 틀에서 원칙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아산정책 연구원의 고명현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무기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대 미국 정책은 평화 협정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핵무기를 여기에 필요한 유용한 협상 카드로 인식하고 있죠.”
북한의 핵실험과 뒤이은 로켓(혹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국제 사회는 발빠르게 제재에 나섰다. 일본은 대북 제재를 강화했고, 한국 정부는 북한 정부의 자금줄을 조이겠다며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미국 의회도 새로운 대북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고,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8일 이 법안에 서명했다.
미국의 이번 제재 법안은 북한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중국을 최종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현재는 북한 내부에 있는 자산이나 개인을 주로 제재하고 있을 뿐이라 사실상 그 효과가 미미했지만, 이번 새로운 제재안은 북한 정부와 거래하는 기업까지 제재 대상을 확대해 북한 정부의 자금줄을 압박하는 데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정부와 거래하는 기업은 대개 중국 기업이다.
이란과 협상 과정을 예로 들며 이번 제재안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의 에드 로이스 위원장은 “새로운 제재안이 효력을 발휘하면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앉거나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방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실질적인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 안에서도 북한은 이란과 다르기 때문에 이런 식의 제재가 통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북한은 이란보다 더 오랫동안 국제 사회와 단절돼 있었기 때문에 제재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북한이 다른 나라의 기술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무기를 개발해왔기 때문에 중국의 중소기업 몇 군데를 제재해봤자 별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미국 고위 관리는 중국 정부가 북한에 지원을 끊지 않는 한 제재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은 오랫동안 국제적으로 거래를 해왔어요. 이 점이 (제재를 통해) 공략할 수 있는 약점이 되었죠. 하지만 북한은 달라요. 중국 정부의 원조가 있는 한 북한을 제재하는 건 쉽지 않아요.”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협상 타결을 발판 삼아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이슈의 우선 순위에서 북핵 문제는 시리아 사태보다 아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이란과 북한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란과 북한 모두 오랫동안 미국을 적대국으로 지정해 온,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온 나라입니다. 미국 정부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내비쳤을 때 이란과 관계 개선을 위해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북한은 달랐습니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거나 핵무기 개발을 멈추겠다는 어떤 제스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란 정부와 벌였던) 협상에 나설 수 없었던 겁니다.”
UN의 북한 대표부에 이에 관한 의견을 요청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달 초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 정부를 향해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했다.
김정은 제1비서는 로켓 발사를 성공리에 마친 것을 두고 “우리 조국의 진군을 가로막으려는 적들에게 호된 타격을 가했다”며 개발에 참가한 과학자들을 독려했다. 미국과 주변국들은 로켓을 우주 개발이 아니라 핵무기를 실어나르는 데 필요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보고 있다.
한국 정부는 평화 협정을 제안한 북한 정부를 향해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기존의 방침을 다시 확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국회 연설에서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북 제재를 둘러싼 미국와 중국의 견해 차이가 다시 한 번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미국과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문제를 논의한 데 대해 중국 정부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력 확대를 꺼리며 북한 체제가 불안정해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웨스턴호주 대학교의 퍼스 아시아-미국 센터의 고든 플레이크 센터장은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를 들여오면 중국 내에서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대로 중국의 영향력 아래 계속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UN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일도 미국에게 중요한데, 미국 관리들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이 문제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수잔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지난주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국제 사회에 북한을 감싸고 도는 것처럼 비치길 원치 않을 겁니다. 특히 최근 북한이 국제법과 UN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의안을 잇따라 어기면서 중국 정부가 난처해졌을 겁니다.”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중국이 강력한 새 UN 결의안을 지지할 것이라면서도 이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2012년 헌법을 고쳐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명시한 북한이 웬만한 외부의 압박에 핵무기를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기업연구소의 북한전문가 니콜라스 에베르스타트는 말했다.
“외세에 굴복한 비핵화는 체제 보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일로 여겨질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