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당근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2016년 2월 3일  |  By:   |  건강  |  2 Comments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의 한 남자에 관한 사연이 짧게 소개됐습니다. 이 남자는 캘리포니아에서 당근 농사를 짓던 마이크 유로섹(Mike Yurosek)이란 사람인데, 사연이 소개 되기 1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기리는 말은 30초를 채 넘지 않았을 만큼 짧았지만, 그 내용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아마 눈이 번쩍 뜨였을 겁니다.

당시 <뉴욕 선>에서 부고를 쓰던 스테판 밀러가 미니 당근 한 팩을 들고 이렇게 말했죠. “마이크 유로섹은 바로 이 미니 당근을 발명해 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미니 당근이 원래 이런 작은 품종이 아니라는 걸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전채 요리 혹은 주 요리에 곁들여 내는 야채 중에 보통 당근보다 크기가 작은 당근이 있기는 합니다. 실제 당근을 크기만 줄여놓은 듯한 모습이죠.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는 미니 당근, 한 입에 넣을 수 있는 크기로 가공돼 미국의 당근 소비를 두 배로 늘린 일등 공신은 다릅니다. 미니 당근은 우리가 흔히 아는 당근을 깎아내고 썰고 가공해 만든 것입니다. 소비자가 미니 당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것이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정작 우리가 먹고 있는 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미니 당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코넬대학에서 소비자들의 식품 선택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저스트는 말합니다.

“소비자 대다수는 그들이 지금 무얼 먹는지, 이것이 어떻게 식탁에까지 왔는지 모릅니다. 사람들 중에 미니 당근이라는 품종이 따로 있어 밭에서 날 때부터 딱 저 정도 아담한 크기에 표면도 매끄럽게 나고, 농부들이 그걸 수확해 그대로 포장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거예요.”

미니 당근은 정말 간단하면서도 대단히 기발한 발명품입니다. 채소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혁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근 모양으로 썬 아주 조그만 크기의 미니 당근 (그래서 영어로도 그냥 ‘baby carrots’이라고 안 쓰고 좀 더 친절하게 baby cut carrots’라고 써놓은 경우도 있습니다) 덕분에 당근 업계 전체가 전성기를 맞았고, 쓰레기로 버려지는 당근의 양도 확 줄었으며, 심지어 미국인의 식단에 충분한 비타민 A를 공급하는 효과까지 생겼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미니 당근의 탄생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1980년대 초 당근 업계는 정체돼 있었습니다. 재배 기간은 길었고, 수확한 당근의 절반 이상은 모양이 반듯하지 못하거나 부러지기 일쑤라 소위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야 했습니다. 겉보기에만 문제가 있지 실제 신선도나 영양소에는 차이가 없는 이 버리는 당근을 활용하는 건 모든 당근 재배 농가의 큰 숙제였습니다. 1986년 유로섹도 마찬가지 이유로 고심하던 끝에 버리는 당근 가운데 성한 부분을 골라내 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작게 잘라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냅니다.

당근을 어떻게 깎고 자를지가 문제였는데, 처음에 유로섹은 감자 껍질 까는 칼을 썼습니다. 하지만 너무 품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유로섹은 이번에는 깍지콩을 써는 칼을 사서 당근을 잘라보았습니다. 이 기계로 썰어낸 약 5cm 길이의 당근은 이내 미니 당근의 규격이 됐습니다.

유로섹은 이렇게 개발한 미니 당근 한 줌을 원래 당근 납품 계약을 맺고 있던 동네 식료품점 체인인 본스(Vons)에 가져갔습니다. 소비자들로부터 어떤 반응이 나올지 유로섹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당근을 좀 다른 방식으로 포장해 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좀 알려주시겠냐고 (본스에) 부탁했죠. 다음날 본스에서 전화가 왔는데, 원래 당근 말고 그 작게 자른 당근, 그것만 가능한 한 많이 갖다 달라더라고요.”

2004년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유로섹이 한 말입니다.

본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식료품점, 농산물 유통업체들은 물론이고 굴지의 당근 도매업체까지 미니 당근의 가능성에 매료됐습니다. 미니 당근은 이내 히트 상품 이상의 엄연한 제품이 됐습니다. 미국 내 최대 당근 생산업체인 볼트하우스 팜스(Bolthouse Farms)의 판매팀장 팀 매코클은 1998년 <시카고 선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너도 나도 여기에 뛰어들었죠. 미니 당근이 당근 재배 붐을 일으켰어요.”

당근 소비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유로섹이 미니 당근을 발명해낸 이듬해인 1987년 당근 소비량은 전년보다 30% 크게 늘었습니다. 1997년 미국인들은 연간 6kg이 좀 넘는 당근을 먹었는데, 이는 10년 전보다 117%나 껑충 뛴 수치입니다. 미니 당근 덕분에 전체 당근 소비가 배로 불어난 것이죠.

오늘날은 주객이 확실히 뒤바뀌었습니다. 미니 당근이 당근 산업을 이끌고 있는 게 수치로도 분명히 드러나죠. 전체 판매되는 당근의 70% 가량이 미니 당근입니다. 미니 당근이 당근 산업 전체에 미친 영향은 2007년 미국 농무부가 펴낸 보고서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당근을 작게 자른 뒤 신선 포장을 해서 스낵 형태로 판매하는 방식은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990년대 내내 성장을 거듭한 이 방식 덕분에 과거에 당근을 싼 값에 큰 들이로만 팔던 당근 재배 농가들은 고부가가치 농업의 상징이 되었다. 현재 채소를 날것 그대로 잘라서 파는 상품의 시장 규모는 총 13억 달러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당근이다. 감자나 셀러리 등 다른 품목은 당근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미니 당근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편리함이었습니다. 현대인은 갈수록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여유롭게 외식하는 일도, 집에서 요리해서 먹는 일도 갈수록 줄어드는데, 그러면서 편리함이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아무런 요리도 할 필요없이 그냥 바로 드시면 된다는 제품 설명이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거죠.

저스트 교수는 미니 당근이 사람들이 당근에 대해 갖고 있던 통념 자체를 바꿔놓았다고 말합니다. “껍질을 깔 필요도 없고, 거의 아무 준비 과정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점이 핵심이죠. 게다가 한입에 먹기 좋게 쏙 들어가는 크기잖아요.”

미니 당근의 기원이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당근 업계는 미니 당근이 우리가 아는 그 당근을 깎아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굳이 알리려 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당근 업계는 미니 당근을 인스턴트 식품이 대부분인 간식의 대체재로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당근을 섭취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다른 과자나 패스트푸드 대신 채소를 가득 실은 트럭을 보여주며 건강에 호소했습니다. 광고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는데, 판매가 13%나 증가했죠. 그러는 사이 미니 당근은 가면 갈수록 당근과는 아예 다른 종자로 여겨집니다.

사실 미니 당근이 원래 그렇게 아담한 크기까지만 자라서 먹기 좋은 크기로 수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혹자는 껍질을 까고 가공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완전한 자연주의 식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과정을 거쳤다고 미니 당근을 가공 식품이라고 분류하는 건 지나칩니다.

미니 당근은 당근 재배 농가에 적잖은 부를 안겨준 효자 상품일 뿐 아니라,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여 효율성을 크게 높여 환경 보호에도 기여한 제품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미국에서는 상품성이 없다고 분류되는 채소 대부분이 그대로 버려집니다. 그런데 못생긴 당근의 경우 간단한 작업을 거쳐 조그만 당근으로 다시 만든 뒤 값을 얹어 판매할 수 있습니다. 가정용 쓰레기통에 버려지던 당근 껍질이 미니 당근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공장에 모이면 또 따로 쓰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흙이 좀 묻어있는, 밭에서 나온 당근을 직접 구매하는 게 친환경 소비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라는 거죠. 미니 당근이 오히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낭비를 막아줍니다.”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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