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의 명왕성 탐사(1/2)
천문학자들은 지구로부터 50억 킬로미터 떨어진, 얼음산과 넓은 평원, 그리고 나머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명왕성의 근접 사진을 받아 태양계의 가족사진을 컬러사진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 항공 우주국 나사(NASA)의 뉴호라이즌스 우주선은 명왕성을 근접 비행하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이는 인간 지성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그러나 이번 명왕성 탐사 역시 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만약 어느 하나의 요소라도 치명적인 문제로 발전했다면, 명왕성은 지금도 우리에게 그저 희미한 작은 점 하나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뉴호라이즌스 계획은 회의적인 나사 공무원들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예산 문제는 계속 발목을 잡았습니다. 우주선을 개발한 뒤에도 에너지원인 플루토늄이 속을 썩였습니다. 행성들의 공전에 의해 이미 정해진 데드라인은 이런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명왕성까지의 거리와 여행 기간 자체가 사람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소설로 썼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뉴호라이즌스 비행의 연구책임자인 S. 알란 스턴의 말입니다.
뉴호라이즌스 계획의 시작은 15년 전,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행성으로 분류하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작은 명왕성으로 작은 우주선을 띄워 보내자는 계획이었습니다.
명왕성 탐사 계획은 오랫동안 연구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2000년이 되어, 명왕성 계획 중의 최신 명칭이었던 플루토-카이퍼 익스프레스 계획은 완전히 무산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계획이 취소되었을 때, 당시의 행정 책임자였던 에드 와일러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명왕성 사업을 접습니다. 다 끝났어요. 끝이에요(It’s dead). 끝이에요. 끝이에요.’ 그는 마지막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죠.”
많은 천문학자와 명왕성의 팬들은 분노했습니다. 특히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명왕성을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명왕성은 1989년 태양에 가장 가까이 다가왔고,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행성의 온도는 내려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명왕성의 희박한 대기가 곧 얼음으로 바뀌어 표면에 덮일 것이며 명왕성의 특징을 연구할 기회가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명왕성이 다시 태양과 가까워지는 것은 200년 뒤입니다. 지금의 과학자들이 세상을 떠나고도 한 참 뒤의 일이겠지요.
그리고 행성들의 궤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명왕성에 도착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목성의 중력으로 가속을 받아 목성을 끼고 좌회전하는 것으로, 도착 소요 시간을 4년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06년 1월 이후에 우주선을 발사하면 더 이상 목성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메릴랜드에 있는 존스 홉킨스 응용 물리연구소의 소장이며 나사의 자문위원이었던 스타마시오 크리미지스는 와일러 박사가 자신에게 몇 년 전 근지구 소행성 탐사 때 자신들이 만들었던 것과 같은 저렴한 우주선으로 저비용의 명왕성 탐사가 가능할지 물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답했지요.” 그는 흥미를 느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크리미지스 박사는 자신의 연구팀과 추수감사절을 반납하며 비용을 추산했습니다. 이들은 로켓 비용을 포함해 5억 달러(약 6천억 원)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시 이들이 대략 그린 그림이 뉴호라이즌스 계획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몇 달 뒤 나사는 5억 달러보다 작은 비용으로 2015년까지 명왕성에 도착할 수 있는 탐사계획의 제안서를 받는다는 공고를 냈습니다.
존스 홉킨스 연구팀은 우주선을 만드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명왕성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크리미지스 박사가 콜로라도 볼더 대학의 사우스웨스트 우주 연구소 소장인 스턴 박사를 만난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스턴 박사는 1989년 볼티모어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어떻게 하면 나사가 명왕성 탐사에 나서게 할 수 있을지 논의했던 열 명 남짓한 천문학자들의 모임 “플루토 언더그라운드”의 일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여러 명왕성 탐사계획을 제안했지만, 어느 것도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나사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던 스턴 박사는 크리미지스 박사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들은 논의를 시작했고, 접점을 찾아 곧 의기투합했습니다.
2001년 11월, 나사는 뉴호라이즌스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마침내 해낸 것이죠.”
그들은 4년 2개월 안에 우주선을 디자인하고, 만들고, 테스트한 후 발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계획을 시작하자마자 첫 번째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두 달 뒤, 부시 행정부는 뉴호라이즌스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스턴 박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2003년 예산안에도 명왕성 탐사 계획을 지원하는 돈은 잡혀있지 않았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2년 연속 이 계획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메릴랜드의 상원의원 바바라 A. 미쿨스키는 명왕성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의회를 설득했고, 의회는 매년 예산안에 명왕성 탐사 계획을 차후 고려해야 한다는 조항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매년 의회가 우리의 목숨을 연장해주어야 했죠.” 뉴호라이즌스의 프로젝트 매니저 글렌 파운튼의 말입니다.
2002년, 미국 국립 과학아카데미(NSA)는 명왕성 탐사를 나사의 최우선순위 사업으로 정했습니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주 탐사 계획을 관리하는 이들은 종종 우주 계획은 비용, 기한, 위험요소 사이의 조절이라고 말합니다. 너무 싸게 만들거나 너무 급히 일을 진행하면 실패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우리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크리미지스 박사의 말입니다.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