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는 어떻게 금융 위기를 극복했나?
몇 년 전 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은행 세 곳이 잇따라 파산하면서 주식 가격은 95%나 폭락했고, 거의 모든 사업은 문을 닫기 직전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아이슬란드 경제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실업률은 4%이고, 국제통화기금은 아이슬란드의 2015년 경제 성장률을 4.1%로 예상합니다. 관광 산업은 계속 번창하고 있습니다. 그리스가 국민투표 통해 채권국들의 요구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분명히 드러낸 상황에서 심각한 금융 위기를 경험한 아이슬란드의 사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아이슬란드는 그리스와 다릅니다. 인구 32만 명의 작은 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정치적인 의견을 쉽게 조율할 수 있습니다(국민이 총리를 만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의 인구는 1,100만 명이고, GDP는 2,420억 달러로 아이슬란드의 16배에 달하며 정부는 오랫동안 부패의 상징이었던 탓에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리스와 아이슬란드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경제 위기를 발생시켰지만, 아이슬란드가 회생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국 통화를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슬란드는 위기가 왔을 때 통화를 평가 절하했고 자본 흐름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아이슬란드 경제가 건전한 상태이긴 하지만, 정부는 7년간 실시했던 자본 통제를 서서히 완화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자본 통제가 완화되었을 때 아이슬란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입니다.
2008년 아이슬란드의 통화 크로나(krona)가 붕괴했을 때, 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세 은행은 국가 전체 GDP의 10배에 달하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은행들이 파산을 선언하면서 아이슬란드 금융 시스템의 85%가 붕괴했습니다. 국제 금융에 경험도 부족하고, 그에 맞는 규제를 갖춰놓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섣불리 국제 금융시장에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이자율이 높았기 때문에 투기성 자본이 많이 흘러들어온 것도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아이슬란드의 경제가 붕괴하던 시점에 트레이더들이 투자한 돈은 GDP의 4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자본 통제가 없었다면 이 돈은 순식간에 아이슬란드를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아이슬란드는 국제통화기금의 지지를 받아서 엄격한 자본 통제 정책을 폈습니다. 2007~2010년 사이에 실질 임금은 11%나 떨어졌지만, 정부는 사회 보장 정책을 급격히 줄이는 대신 세금을 올리고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채무를 갚아 줬습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다른 어떤 선진국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금융 시스템을 붕괴시킨 책임을 물어 몇몇 은행가들을 감옥에 가뒀습니다.
자본 통제 정책과 적극적인 통화 평가 절하로 하룻밤 사이에 중앙은행이 너무 많은 권한을 쥐게 됐고, 개인들은 소지할 수 있는 해외 통화량에 제한을 받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습니다. 통화 가치 하락은 수출을 활성화시켰고 수입은 줄었습니다. 아이슬란드에 여행 오는 비용이 싸지자 관광객들이 늘어났고, 실업률도 유로존 내에서 위기를 겪던 다른 나라들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본 통제는 많은 기업에는 고통을 안겨줬습니다. 투자자들은 자본 통제가 미칠 영향을 두려워해 투자를 늘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해외 투자 비율이 떨어졌고, 현재 해외 투자는 GDP의 16% 수준으로 금융 위기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자산입니다. 금융 위기 이후, 그리고 이상하게 2010년 작은 화산이 폭발한 이후 더 많은 관광객이 아이슬란드를 찾고 있습니다. 2006년과 비교해 2014년 관광객 수는 100% 증가했습니다. 도시 중심가는 한때 은행들과 금융 기업들로 가득 찼지만,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와 가게가 줄지어 들어섰습니다. 아이슬란드가 현재 걱정하는 것은 임금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상황입니다. 관광 산업은 경제 회복을 도왔지만, 아이슬란드는 어업과 전력 산업을 바탕으로 발전한 나라입니다. 아이슬란드의 자본 통제 정책이 성공한 원인은 바로 이런 산업들이 기저에서 국가 경제를 받쳐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