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셋째주] 100단어로 보는 금주의 기사 – 4월 13일
지난 10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한 사람이 웃고 있는 다른 사진 두 장을 실었습니다. 한 장은 진짜 기분이 좋아 나오는 환한 미소, 다른 한 장은 다소 억지로 지어낸 가식적인 미소를 담았습니다.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은 두 사진 가운데 어떤 사진 속 웃음이 가식적인지를 구별해내는 데 공감 능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반 대중이 가식적인 웃음을 구별해내는 성공률은 60% 정도인데, 최근 과학자들과 과학전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두 웃음을 구별해달라고 부탁한 결과 기자들은 73%를 기록해 60% 대에 그친 과학자들보다 정답률이 높았습니다. “진짜 미소를 지을 때 사람은 얼굴 근육을 더 많이 쓰고 눈가에 잔주름이 생긴다”는 와이즈먼 교수의 설명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세요. 두 사진 가운데 진짜 미소를 찾아내셨나요?
미국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간다는 건 높은 소득보다는 심리적 안정감
미국에서의 중산층은 무얼 얼마나 소유하고 얼마나 버는지가 아니라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로부터 얼마나 심리적 안정감을 얻느냐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10일 뉴욕타임즈는 퓨리서치 센터가 얼마 전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가운데 소득과 자산의 위치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미국인이 90%에 육박한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예전에는 가족 건강보험 가입 여부, 교육 수준, 자동차의 보유 여부 등 중산층을 대표하는 객관적 지표가 있었지만, 이런 지표들은 점차 쓸모가 줄었습니다. 이제 경제 지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안정성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인데, 실질소득 증가율이 0에 가깝고 교육비와 주거 비용, 건강보험료가 가파르게 오르는 가운데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그동안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겨온 미국인들이 점차 미래를 불안해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지난달 잡지 뉴리퍼블릭은 존 닉슨의 최근 저서 <한나 아렌트와 우정의 정치학>을 소개하며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삶과 우정을 조망했습니다. 아렌트에게 우정이란 사적 영역에만 머무르는 관념과 공적 영역의 가혹한 현실 사이의 완충지대였습니다. 망명자 중의 망명자, 모국에서 추방당한 유태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해온 그에게 우정이란 전체주의의 군화에 짓밟힌 자유, 그리고 보다 높은 인간적 가치를 대변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지적 동료들에게 충실한 벗이었던 아렌트이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출간된 뒤 그는 가깝게 지내던 유태계 지식인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합니다. 결과적으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 무신경한 폭력을 저지른 거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따랐죠. 한편 친나치주의적 열정을 지녔던 철학자 하이데거를 향한 지속적인 존경을 표하는 아렌트의 모습에서는 우정과 신념 사이에 끝없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