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묻기 꺼려하는 10가지 질문들
위의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불리한 아동기 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s)”점수 혹은 ACE 점수를 산출할 수 있습니다. ACE 점수를 지지하는 이들은 힘겨웠던 어린 시절이나 그와 관련된 경험, 즉 부모님의 사망이나 학대 및 방치 등 건강상태에 장기적인 영향을 주는 부정적 경험에 대하여 개략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샌디에고 대학의 빈센트 펠리티 박사는 ACE 점수에 대해 다수의 연구를 진행했으며, 정기적인 신체검사의 일부로 포함시켜도 될 만큼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ACE 점수가 아직껏 검사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의대에서는 ACE 점수에 관해 가르치지 않습니다. 일부 임상의들은 어차피 과거는 바꿀 수가 없는데 그런 점수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결과를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시하는 정규 프로토콜도 없습니다. 그러나 펠리티 박사는, (ACE와 같은) 진단 도구가 미국 임상현장에서 널리 쓰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임상의들의 개인적 불편감”이라 지적합니다. 일부 의사들은 ACE에 수록된 질문이 환자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환자가 울음을 터뜨리거나, 트라우마가 밖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죠. 빡빡한 진료 일정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펠리티 박사는 보니 래틀리프라는 환자를 진단하면서 의료기록 양식에 ACE 질문을 포함시켰습니다. 환자와 직접 대면하기 전 그는 ACE 점수를 확인하고 그와 관련된 질문, 즉 어머니를 알콜중독으로 만든 정신적 문제나 과거에 당한 학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래틀리프는 말하길 “굳이 감정적이 될 필요가 없더라구요. 그냥 체크리스트 같은 거라서 어린 시절에 뭐가 일어났는지 ‘네, 네, 네’ 정도로 체크하고 넘어가면 돼요.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아요.”
펠리티 박사는 ‘ACE 점수’라는 말을 언급하거나 10점 만점에 4점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는 대신,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했을 뿐입니다. 진료 후 래틀리프는 펠리티 박사와 나눈 대화 덕분에 문제의 원인을 좀더 잘 파악하게 되었다고 응답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떻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 지금의 내가 어떻게 그 경험을 품고 살아가는지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어요.” 라고 래틀리프는 말했습니다. “진단을 받기 전엔 신체적 문제와 과거의 정신적 경험을 연결지을 생각을 딱히 해본 적이 없거든요.”
이것이야말로 펠리티 박사가 생각하는 ACE의 효용입니다. ACE 점수를 활용하면 환자가 그들 스스로의 건강상태를 더 잘 이해하게 도울 수 있을 뿐더러, 의사 입장에서는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파악하기도 쉽습니다.
맥아서 펠로우이자 소아과의로 근무하는 제프 브레너 박사에 따르면 ACE 점수는 전반적인 헬스케어 시스템 상에서 환자를 좀더 잘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브레너 박사는 “ACE 점수는 흡연이나 알콜중독, 물질남용에 관한 의료관련 이용 및 지출을 예측하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진단도구”라고 칭찬합니다.
브레너 박사 자신도 ACE 점수에 대해 알게 된 건 채 몇 년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ACE 점수를 임상현장에서 좀더 빨리 사용하지 못했던 점을 아쉬워합니다. 그럼에도 다른 많은 의사들처럼, 브레너 박사 역시 “다룰 수 있는 능력이나 시간이나 트레이닝이 충분치 못한 대상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교육받았습니다. 성인에게 불행한 어린 시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가정폭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큼이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듭니다.
사전진단을 원하는 의사들도, 막상 점수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는 건 까다로운 문제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환자의 답변을 검토하는 건 누가 되어야 하죠?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상담사? 일단 ACE 점수를 산출하면 의사는 무얼 해야 할까요?
텍사스의 포트워스에서 레지던트 교육을 담당하는 소아과의인 리차드 영 박사는, 험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건강에 문제가 많은 환자들을 거의 매일 상대한다고 말합니다. 영 박사의 경우 환자들이 어떤 삶을 거쳐왔는지 묻는 것을 딱히 꺼리진 않지만, 모든 환자에게 일일이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을 묻는 게 과연 효용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이미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 환자의 경우, ACE에 나온 것과 같은 질문은 오히려 그들이 터놓고 싶어하지 않는 이슈를 건드릴 수도 있다고 영 박사는 말합니다. 게다가 질병을 일으키고 수명을 줄이는 가장 큰 요인들, 즉 우울증이나 알콜중독, 물질남용, 당뇨나 비만처럼 만성적인 건강상태는 굳이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보지 않고도 찾아낼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ACE와 같은 사전진단도구를 대규모 집단에 적용함으로써 환자가 중요시 여기는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무선통제 연구가 아직 없어요.” 라고 영 박사는 말합니다. “환자의 삶에 확실히 (긍정적인) 변화를 미칠 수 있다는 걸 누가 좀 보여 줬으면 하거든요. 내가 아는 선에선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펠리티 박사 역시 ACE 점수가 환자에게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추적한 연구가 없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다만 직접 겪었던 수천 건의 임상 케이스를 감안할 때, ACE 점수가 가져다줄 수 있는 혜택은 의학적이라기보단 정신적이고 영적인 문제, 즉 수치심을 완화하는 데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가 묻기 전까지 환자들은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던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살아 왔다고 합니다. 펠리티 박사에게 과거를 열어 보임으로써 큰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고 환자들은 털어놓았습니다. (N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