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R이 제 3세계를 제 3세계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
NPR은 2014년부터 “제 3세계”와 관련된 포스트를 올리는 “염소와 소다(Goats and Soda)”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 이름을 짓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이 블로그가 다루어야 할 지역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은 더 어려웠습니다. 제 3세계? 개발도상국? 남반구? 중저소득국? 이 모든 명칭이 “문제적”인 동시에, 나름대로 흥미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명칭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알게된 사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20세기 중반, 서구의 자본주의 대 소비에트 연합의 공산주의가 대결 구도를 이루면서 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에는 양 진영에 속하지 않는 나라들도 있었습니다. 1952년 프랑스의 인구통계학자 알프레드 소비(Alfred Sauvy)는 옵세봐테르 지에 “하나의 행성, 세 개의 세계”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미국, 서유럽과 편을 이룬 국가들은 제 1세계, 소련과 중국 및 그 우방은 제 2세계, 나머지는 제 3세계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아주 애매한 표현이었습니다. 경계가 불명확한 개념이었고, 편의를 위해 쓴 표현에 가까웠죠. 제 3세계의 국가들은 대부분 가난했기 때문에, 제 3세계는 곧 가난한 지역이라는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제 모욕적일 뿐 아니라 시대에도 뒤떨어진 구분법이 되었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어떤 지역을 다른 지역 앞에 놓을 수 있을까요? 가난한 나라를 한데 묶었다기엔 제 1세계에도, 제 2세계에도 속하지 않지만 부유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도 있고, 무엇보다 소련은 이제 지구 상에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제 1세계가 모든 면에서 앞서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 1세계에는 하버드 의대의 한 교수가 “제 4세계”라 표현한 극빈 지역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NPR은 예전의 체계를 지칭하거나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는 경우 정도를 예외로 두고, “제 3세계”, “제 1세계”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ies)”이라는 표현은 어떨까요? 얼핏 보면 확실히 나아 보이는 선택지입니다. 우리 블로그는 분명 보건, 교육, 기본 인프라 부문을 더 발전시켜야 하는 나라들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이른바 개발도상국의 국민 가운데서도 이 표현을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가 분명 발전 중이고, 발전의 여지가 있다면서요. NPR 등 많은 언론사들이 따르고 있는 AP 가이드라인에도 “제 3세계”보다는 “개도국”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사 과정에서 이 표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대학의 한 사회심리학자는 “발전 중”이라는 표현이 서구 국가들을 하나의 이상향으로 놓고 국가 간의 위계를 조장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미 “발전을 완성한” 국가 내부의 문제들을 도외시하는 가운데, 개도국 출신은 무지하고 게으르다는 선입견을 심어주기도 한다고요. “개발”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국이 빈국을 착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남반구(global south)”라는 지리적 표현은 가난한 나라들이 대부분 남반구에 있기 때문에 나온 표현입니다. 하지만 북반구에도 아이티 같은 나라가 있고, 남반구에도 뉴질랜드 같은 나라가 있죠.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데이터에 기반한 새로운 분류법을 도입하면 어떨까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그런 식으로 국가들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의 소득 통계를 활용해 전 세계 나라들을 고소득 국가, 중소득 국가, 중저소득 국가, 저소득 국가로 나누는 것이죠. MICs(middle income countries), LICs(low income countries)와 같은 약어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GDP 산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나라가 있을 수 있고, 이 생소한 약어들이 사회 전반에서 자리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최근에는 전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서구”가 소수에 불과하고, 인구의 80% 이상이 하루 10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간다는 점을 들어 “다수 세계(Majority World)”라는 표현을 쓰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표현을 알려줬더니 마음에 들어했던 전문가들도 있었습니다. 새로 생긴 말이니 역사적 앙금도 없고, 사고를 자극하는 표현인 데다, 정확하기까지 하다면서요. 하지만 쉽게 입에 붙지 않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세계를 구역으로 나누어 이름을 붙이기란 어렵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명칭에는 어떤 식으로건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 우리 블로그는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나라 이름을 쓰라고 말합니다. 세네갈의 의료 제도와 스위스의 의료 제도를 비교한다면, 직접적으로 “세네갈”과 “스위스”를 언급하라는 것이죠. 지난 1년 간 우리는 최대한 정확한 표현을 적절한 곳에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분명히 문제 있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발생할 테고, 그럴 땐 독자 여러분들이 지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되도록이면 좋은 말로요. (N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