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잠들었다 한밤중에 깨어났을 때 유난히 창의적이 되는 이유
모든 동물, 곤충, 그리고 인간은 저마다의 생체시계를 지녔습니다. 이 생체시계는 약 24시간의 리듬, 즉 활동일주기(circadian rhythm)에 맞추어 우리의 생체 및 행동반응을 조절합니다. 평소에 느끼는 기분, 식욕, 수면 패턴 및 시간이 흐르는 감각은 활동일주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사람의 생활이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맞춰지면서 ‘시간 절약’이나 ‘시간 낭비’와 같은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조명이 널리 퍼지면서 잠자리에 드는 방식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수면 패턴을 알게 되면 아마 놀랄 것입니다. 해가 지면 잠들어 동틀 때 깨어나는 것이 수면 리듬의 전부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은 동물이나 곤충이 한 번에 길게 이어지는 잠 대신 짧게 여러 번, 혹은 두 번에 걸쳐 잠이 듭니다.
버지니아 공과대학의 역사학자이자 <하루를 마무리할 무렵: 과거의 밤> (At Day’s Close: Night in Times Past, 2005)의 저자인 로저 에커흐 박사는 예전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수면 시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잠과 잠 사이, 적게는 한 시간에서 많게는 여러 시간에 걸쳐 깨어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수면 패턴은 ‘조각난 수면(segmented sleep)’이라 불렸습니다. 에커흐 박사는 영어로 된 문헌에서 “첫번째” 잠과 “두번째” 잠을 나타내는 표현을 수도 없이 찾아냈습니다. 다른 언어에도 이러한 수면 패턴을 가리키는 낱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어의 “premier sommeil”, 이탈리아어의 “primo sonno”, 그리고 라틴어의 “primo somno”가 그러합니다.
“첫번째” 잠이 지속되는 시간은 계절과 사회적 계급에 따라 달랐으나, 보통은 해질 무렵 잠들어 약 서너 시간 후, 즉 한밤중에 깨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전깃불이 보급되기 전 부유한 가정에서는 가스 램프처럼 인공 조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좀더 늦게 잠자리에 들기도 했습니다.
에커흐 박사가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 조상은 힘든 하루의 노동이 끝난 직후 너무 피곤해 “첫번째” 잠자리에선 사랑을 나눌 수 없었습니다. 일단 잠들어 재충전을 마치고 깨어나야 비로소 준비가 되는 것이죠. 겨울 밤이라면 아홉 시 즈음 잠들어 자정 무렵 일어나,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거나 잡담을 한 다음 다시 잠이 들어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는 식이었습니다.
에커흐 박사는 밤에 깨는 습관을 잃어버리면서 깨어 있던 시간이 가져다 주던 특별함마저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찾아낸 문헌을 보면, 밤에 깨어 있는 시간은 낮에 깨어 있는 시간과는 다른 성격을 지녔습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은 도덕철학에 관한 책을 읽고 잠든 후 중간에 깨어나 잠들기 전 읽은 것을 한층 더 깊게 돌이켜볼 수 있었다고 적고 있었습니다.
깊은 밤, 잠에 취한 뇌는 꿈의 찌꺼기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그러모아 새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자아냅니다. 밤 시간에는 창조적인 일에 적합한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깨어 있는 밤 시간 동안 뇌하수체에서는 프로락틴(prolactin)이 다량 분비됩니다. 이 호르몬은 잠결에 겪는 평화로운 느낌, 꿈처럼 몽롱한 상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프로락틴은 보통 잠든 상태에서 분비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멜라토닌이나 코티졸 같은 다른 호르몬처럼) 잠과 잠 사이 “조용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지속적으로 분비됩니다. 수면 그 자체보다도 빛의 밝기와 어둡기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메이슨 커리 박사는 그의 저서 “일상의 의식: 예술가들은 어떻게 일하는가 (In Daily Rituals: How Artists work, 2013)”에서 유명한 작가와 예술가들의 생활 패턴을 보여줍니다. 그 중 다수가 아침형 인간이거나 조각난 수면 패턴을 따르는 이들이었습니다. 커리 박사는 한밤중에 깨어나 일하는 창조적인 사람들이 각자의 리듬에 따라 일하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를 쫓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밤중에 일어나는 창조적인 작업은 흡사 꿈처럼 흘러갑니다. 잠과 잠 사이의 빈틈이 가져다 주는 고요하고 가지런한 마음가짐은 대낮보다는 오히려 꿈 속 상태와 더 비슷합니다.
근대의 기술은 꿈으로 연결되는 시간을 없애고 자연스런 생활 패턴에 어긋나는 일상을 가져왔으나,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 된 걸지도 모릅니다. 빛의 홍수를 불러온 산업혁명과는 달리, 디지털혁명은 조각난 잠을 자는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좀더 관대할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