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재건 계획을 송두리째 흔드는 아편의 확산
양귀비(poppy)의 추출물로 만든 아편(opium)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마약 성분으로 분류돼 재배나 매매, 소지가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아편의 온상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대테러 전쟁을 명분으로 침략했다가 주둔군을 빼는 철군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입니다. 특히 탈레반의 근거지이자 미군 병력이 집중적으로 증파됐다가 빠져나간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양귀비 재배지는 빠르게 늘어가고 있습니다. 아편과 관련된 통계를 보면 지난 2002년부터 미국 정부가 약 8조 원을 들여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이른바 ‘아편과의 전쟁’을 벌여왔던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게 확연히 드러납니다.
우선 전 세계에서 (불법으로) 거래되는 아편의 3/4이 아프가니스탄 산으로 추정됩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 아프가니스탄 전쟁 감시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편 재배 면적은 20만 9천 헥타르로 제주도보다 넓습니다. 지난 2012년과 비교해 무려 36%가 늘어난 수치입니다. 3,200만 명 남짓 되는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 가운데 아편을 포함한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2012년 기준 13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100만 명이었던 2009년보다 훨씬 늘어난 수치입니다. 아편에 중독된 사람들도 2005년 13만 명에서 2009년 23만 명으로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아편은 총 550만 킬로그램. 이 가운데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경찰이 몰수한 건 4만 킬로그램 정도에 불과합니다. 미군은 애초에 아프가니스탄 재건 계획의 일환으로 마약 단속을 벌일 때도 충분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던 수도 카불과 동부 일대에 역량을 집중했지만, 사실상 아편이 널리 재배되던 곳은 그 때도 남부와 서부의 탈레반 주둔지였습니다. 미군이 탈레반을 몰아세우고 영향력을 확대한 뒤에 아편밭을 갈아엎고 농민들에게 포도나 석류, 밀을 심으라고 권유하자 생계 수단을 잃은 농민들은 탈레반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국무부 주도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추진해 온 계획이 사실상 헛수고로 돌아간 셈이죠. 여기에 미군이 철군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당국의 힘 만으로는 제대로 단속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아편 재배는 면적으로나 생산량으로나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겁니다.
지난 1월 아프가니스탄 고문관(Special Inspector General)인 존 스포코(John Spoko)는 지난 1월 의회에서 아편의 급속한 확산을 아프가니스탄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어, 그 동안 (미국 정부 주도 하에) 어렵사리 쌓아온 법치, 교육, 건강보험, 여성 인권 등의 성과가 모두 무산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