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멈출 수 없는 사람: 강박장애 (OCD), 그리고 생각에 인생을 먹혀버린 사람들
(역자 주: 아래는 지난 주 출간된, “멈출 수 없는 사람: 강박장애 (OCD), 그리고 생각에 인생을 먹혀버린 사람들 (The Man Who Couldn’t Stop: OCD, And The True Story Of A Life Lost In Thought) 의 부분 발췌입니다.)
브라질의 레이싱 선수 아일톤 세나(Ayrton Senna)가 사고로 사망했던 날, 나는 맨체스트에 있는 수영장의 화장실에 박혀있었습니다. 문은 열려있었지만 나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1994년 5월, 나는 스물 두살이었고 배가 고팠습니다. 수영장을 몇 번 왕복한 후 나는 물에서 빠져나와 락커룸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나는 날카로운 부분에 발 뒤꿈치가 긁혔고 곧 피가 방울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첫번째 방울을 손가락으로 옮겼고, 두번째 방울이 맺혔습니다. 나는 발에 대고 누르기 위해 휴지를 뽑았습니다. 손가락에 올려졌던 피는 물과 함께 팔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그 피를 바라보았을 때의 긴장감은, 지금도 기억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내 어깨는 처졌고 가슴은 답답해 졌습니다.
4주 전, 나는 버스정류장 기둥의 튀어나온 못에 손가락을 찔렸습니다. 그때는 붐빈 토요일 오후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정류장을 지나갔을 겁니다. 나는 그 중 누군가가 나처럼 손가락을 찔렸을 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가 에이즈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 사람의 감염된 피가 이 못에 남겨졌다면? 내 혈관에 그의 에이즈 바이러스가 들어왔다면? 사람들은 에이즈가 그런식으로 감염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신체 바깥에서는 살 수 없다고 말이죠.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충분히 따져본다면, 그들도 그 가능성이 단지 불가능에 가까울 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겁니다. 즉, 그들도 확신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실제로 내가 아는 몇몇은 이론적으로 그런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한 손에는 수영안경을, 다른 손에는 피가 묻은 휴지를 들고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했던 생각들을 다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못에 어떤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고 – 적어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고 –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왜 그 때 더 확실히 보지 않았을까? 나는 내 손가락을 보았습니다. 잠깐,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거야? 나는 방금 휴지를 상처에 댔습니다. 그 휴지에는 무언가가 먼저 묻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멍청이. 나는 이제 휴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거기에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물론 나의 피였습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에이즈를 가진 이가 나처럼 피를 흘린 후 나보다 먼저 이 휴지를 만졌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두 번째 휴지를 뽑아 자세히 바라보았습니다. 피는 보이지 않았고, 그 사실은 나를 조금 안도하게 했습니다. 그 다음 휴지에도 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첫 번째 휴지에는 묻어 있었을 지 모르지. 나는 첫 번째 휴지를 휴지통에서 꺼냈습니다. 여기에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잠깐, 이 휴지의 피가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왜 나는 지금 이걸 꺼내고 있을까? 나는 빨리 손을 씻었습니다. 나는 쓰레기통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피가 묻은 다른 휴지는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당연히, 나는 버스 정류장의 못에 긁혀 에이즈가 옮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보같은 생각이라는 건 알았습니다.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수영복을 가방에서 꺼내 침실의 라지에이터에 올려 놓았습니다. 나는 옷장을 뒤져 겨울 장갑을 손에 낀 후, 수영 수건을 조심스럽게 펼쳐, 피 묻은 휴지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이 휴지를 라지에이터에 올려 놓았습니다. 자세히 검사할 수 있도록 충분히 마르는 데는 10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리고 나는 쓰레기통에서 꺼낸 휴지를 꺼내 책상위에 펼쳤습니다. 나는 이 휴지도 자세히 검사했습니다. (탈의실에서는 이 휴지를 자세히 검사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나는 장갑을 벗고 텔레비젼을 켰습니다. 그랑프리가 막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이상한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는 강박 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로 불리는 병입니다. 나는 내가 에이즈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나는 충동적으로 내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앞으로도 걸리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합니다. 나는 모든 곳에서 에이즈를 봅니다. 에이즈는 칫솔, 휴지, 수돗물, 전화기에 있습니다. 나는 컵과 병을 씻고, 다른 이와 무언가를 같이 마시는 것을 싫어하며, 모든 상처에 여러 겹의 반창고를 붙입니다. 나는 녹슨 못이나 유리조각에 긁혔을 때 그 상처를 흡수성 종이로 감싸고, 그 곳에 혹시 감염된 피가 있는지를 조사합니다. 나는 기차 좌석에 혹시 주사기가 꽂혀있지 않은지, 좌변기에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지 않은지를 항상 검사합니다. 나의 이성적 자아는 이런 공포가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내 경력의 대부분을 가디언과 네이처의 과학 저술가로 보냈습니다. 나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에이즈가 걸릴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 불안은 항상 나를 찾아옵니다.
많은 이들이 강박장애(OCD)를 들어보았을 겁니다. 이 병은 종종 기벽 정도로만 여겨집니다. 그러나 OCD 는 심각한 장애이며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상한 생각들 같은 정신적 고통과 반복해서 손을 씻어야 하는 것 같은 육체적 문제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OCD환자들은 하루에 6시간을 자신들의 강박(obssesion)에, 그리고 4시간을 충동(compulsion)에 소모합니다. 마커스라는 브라질의 한 OCD 환자는 자신의 안와(눈 구멍)의 형태에 강박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끊임 없이 손으로 이를 만지고 싶었던 나머지, 결국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스스로 장님이 되었습니다.
강박 – 심각한 의학적 강박, 곧 사고의 독점 – 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보통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양한 창이 열려 있고, 각각의 작업이 동시에 일어나는 컴퓨터를 생각해 봅시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윈도우에서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고,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는 축구경기의 결과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나는 원하는 윈도우를 선택할 수 있고, 크기를 바꿀 수 있으며, 적절하게 창을 열거나 닫을 수 있습니다. 평소 내가 나의 생각을 조절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잠재의식은 각 윈도우의 내용을 바꾸고 나의 주의를 끌려 하지만, 나는 어떤 작업에 어느 정도로 집중할지를 의식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박은 움직일 수도, 닫을 수도, 끌 수도 없는 커다란 윈도우입니다. 다른 윈도우가 앞으로 나오더라도, 강박은 여전히 그 뒤에 남아 있습니다. 이 작업은 계속해서 베터리를 소모하며, 다른 작업의 성능을 저하시킵니다. 당신은 이 기계를 끌 수 없습니다. 당신이 깨어 있는 동안, 강박 윈도우는 그 곳에 있습니다. 당신이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리려 할 때, 당신은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합니다. 그리고 곧, 강박 윈도우는 앞으로 나와 다시 당신의 주의를 요구합니다.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