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니카라과 커피농장 노동자들의 보릿고개
보릿고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이 아닙니다. 커피의 세계적인 생산지 가운데 하나인 중앙아메리카의 2백만 커피농장 노동자들에게도 3, 4월 두 달은 보릿고개라 불러도 좋을 만큼 먹을 게 부족한 시기입니다. 겨우내 자란 커피를 수확하는 동안 번 돈으로 가지치기나 비료를 주기 시작하는 5월에 다시 일감이 생길 때까지 버티는 게 보통이지만, 3년 전부터 심각한 흉년이 계속되면서 커피 작황이 너무 안 좋아 일거리를 잃은 노동자, 농민들은 수확하다 떨어진 커피 열매들을 주워모아 이 가운데 쓸만한 것들을 내다 팔며 보릿고개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특히 전체 GDP의 20%를 커피에 의존하고 있는 니카라과의 국가 경제는 3년 연속 계속된 흉년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경제활동 인구의 1/3에 가까운 75만 명의 생계가 직간접적으로 커피 농사, 수출에 달려있는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는 현재 커피 농장의 80%에서 커피 나무를 기를 수 없게 될 거란 전망이 나올 정도이니, 말 그대로 막막한 상황인 셈입니다. 흉년의 직접적인 원인은 헤밀리아 바스타트릭스(Hemileia vastatrix)라는 균에 의해 발생하는 이른바 곰팡이병으로 현지 농민들이 로야(roya)라고 부르는 병입니다. 커피 원두를 생산하는 아라비카 종에 나타나는 이 곰팡이병에 걸린 나무들은 녹색 이파리에 주황색 반점이 생기고 이내 반점이 검게 변해 구멍이 뚫리며, 열매인 커피 원두도 원래 색깔인 붉은색 대신 잿빛을 띄며 시들어갑니다.
수십 년 커피 농사를 지어온 니카라과 농민들에게 이 곰팡이병은 3년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낯선 재앙입니다. 농민들은 누군가가 하늘에서 비행기로 고의로 균을 살포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바나나 나무에서 균이 옮은 거라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추정하는 원인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전에 없던 변화무쌍한 날씨, 특히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전반적으로 습해진 환경입니다. 실제로 헤밀리아 바스타트릭스 균은 섭씨 10도 이하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니카라과의 커피 농장들은 대개 해발 1,300미터 이상에 위치해 있어 기온이 10도를 넘지 않던 곳인데, 3년 전부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겨울 기온이 10도를 넘는 일이 잦아지며 곰팡이균이 살기에 알맞은 곳이 되어버린 겁니다.
중앙아메리카의 커피 농장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흉년에 시달렸고, 지난 2년 동안 수확량이 30% 가까이 줄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커피 흉작은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도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문제로, 지난달에는 공급이 부족할 거란 우려에 국제 시장에서의 커피 원두 가격이 70%나 오르기도 했습니다.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원두의 가격 폭등이 실제 커피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시장에서 커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원인이 현물에 대한 투기 수요인 것도 그렇고,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농민들이 새로운 품종을 들여오거나 병에 걸린 나무들을 바꿔 심는 것과 같은 투자를 해도 그 결과물을 최소한 3~4년은 있어야 거둬들일 수 있는데, 이후의 수요를 예측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대개 높은 부채에 시달리고 있어 투자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그렇고 구조적인 문제들이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지난달 커피값이 폭등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국제커피기구가 발표한 올해의 수요-공급 예측 탓도 있었습니다. 발표에 따르면 공급이 수요에 30만 톤이나 못 미칠 것으로 예측됐는데, 기호식품인 커피가 당장 대대적으로 부족해지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책임 있는 소비자들은 이제 생산자들을 제대로 지원하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등 지금 내가 마시는 커피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좀 더 신경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니카라과의 커피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떨어진 커피 열매를 주워 버는 돈은 2천 원 남짓입니다. 이 기사를 쓴 가디언지의 기자가 만난 니카라과의 커피 노동자들 가운데 한 명은 기자가 영국에서 거의 매일같이 2파운드(약 3,500원) 하는 카푸치노를 한 잔씩 마신다고 말하자,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사마실 정도로) 커피를 좋아한다면, 당신네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궁핍하게 커피를 생산하고 있는 우리를 어떻게든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