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환자들: 의료 서비스의 세계화 전망
미국에 사는 클레어 모리스씨는 무릎 교체 수술을 받기 위해 조사를 하다가 미국에서는 15000달러가 드는 수술이 코스타리카에서는 반 값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널리 퍼지면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의료 관광의 미래는 아주 밝아보였습니다. 같은 의료 서비스를 싼 값에 받을 수 있다면 환자들은 기꺼이 해외로 나갈 것이고, 보험회사와 정부는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죠. 2008년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는 2012년까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미국인의 수가 10배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통계 자료 자체가 조사 주체별로 제각각이긴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 의료 관광객의 수는 업계 예측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우선 환자들의 관심이 예상보다 낮았습니다.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국에서도 적정한 가격에 적정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 막상 여러가지 리스크와 복잡한 절차를 무릅쓰고 해외로 나가기 보다는 집에서 치료를 받길 원했던 것이죠. 일례로 2008년 미국의 한 수퍼마켓 체인이 직원들에게 싱가포르에서 수술을 받는 조건으로 골반과 무릎 교체 수술비 전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지만, 이 옵션을 선택한 직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의료 관광이 활성화되려면 환자들의 관심 뿐 아니라 보험회사와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데 이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보험회사의 입장에서는 확실한 고객층이 확보되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없었고, 정부 입장에서도 국민들에게 해외 의료 관광을 권했다가는 의료 정책의 실패를 시인하는 꼴이 되니까요. 유럽의 상황을 보면, 현재 유럽의 공공 의료 보험 지출의 1%만이 국경을 넘나드는 수준입니다.
의료 관광의 오늘은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의료 관광으로 이익을 누리는 주체는 환자도 보험회사도 정부도 아닌, 병원입니다. 거꾸로 병원들이 다른 나라의 환자들을 찾아 해외 진출에 나선 것입니다. 미국의 클리브랜드 클리닉은 내년에 아부다비에 지점을 열 계획이고, 싱가포르의 파크웨이 헬스는 아시아 전역에 지점을 설립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의료보험회사들이 국내 유명 병원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해외 의료 관광보다는 국내 의료 관광이 뜨고 있는 형국입니다.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