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기글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라별 인종차별 지수, 한국은 최하위권 (5/20, Washington Post)
heesangju: 원래 경제/경영 글을 맡고 있는 필진으로 전문 분야 밖의 흥미로운 글을 발견하고는 고민 끝에 선택한 글입니다. 여러 웹싸이트에서 인용되며 조회수가 증가하였는데 뉴스페퍼민트답지 않은 공격적인 답글이 많이 달려 당황스러웠습니다. 욕설이 섞인 답글 삭제 여부를 두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에 대한 검열인가 험악한 욕설을 다음 방문자가 보게 하는 것이 또다른 폭력인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삭제했네요. 가능한 객관적으로 측정하려는 조사방법론(링크)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 의식을 수치화하려는 시도가 처음부터 논란의 여지를 안고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조사방법론의 한계점을 지적하고, 더 나은 실험을 구상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왜 이 조사방법론에 따르면 인종차별지수가 높다고 결론나는지, 답글을 통해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라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년에는 뉴스페퍼민트 홈페이지 답글을 활성화하고, 에디터픽이나 댓글추천 시스템 등을 통해 생산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뉴스페퍼민트 독자들 간의 토론 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제 개인적 바람입니다.
로스쿨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 (7/21, The Atlantic)
arendt: 올 한해 미국 교육계의 여러가지 화두 중에서 “로스쿨의 위기”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월에는 직접 나서서 로스쿨 3년 과정을 2년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고 로스쿨에 지원하기 위해서 치뤄야 하는 시험인 LSAT 응시자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생존 전략으로 로스쿨들 중에서는 금융이나 기술분야에서 특성화된 법조인을 키우는 방향으로 커리큘럼을 바꾸는 곳도 등장했습니다. 뉴스페퍼민트 올해의 인기글 10에 든 “로스쿨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 글은 어떻게 보면 앞서 소개한 우려와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글입니다. 법학 교수와 경제학자가 함께 쓴 이 논문은 로스쿨 학위를 받는 것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가정 환경이나 인종, 성별 등을 통제한 뒤에도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로스쿨 위기론 논의가 객관적인 사실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 논문의 결과에 상관없이 2014년에도 로스쿨이 위기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미국 학교를 다니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서 학부생들 중에서 로스쿨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버드 대학 학부생의 경우 2008년에 비해 2012년 로스쿨에 지원한 학생이 30%나 줄었고 다른 학교들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학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창업을 하거나 기술이나 혁신 분야와 관련된 직업을 찾거나 아니면 좀 더 적극적이고 글로벌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직업들을 선호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뉴스페퍼민트 글 들 중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이유는 아마도 한국에 로스쿨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로스쿨이 아직 완전히 자리잡히지 않았고 로스쿨의 경제적 가치와 미래에 대해서 여전히 불확실성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미국의 로스쿨을 다룬 글이긴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 글을 관심있게 읽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과 직업이 변하고 또 그에 따라 관련 전공들이 흥망성쇠를 겪는 것이 로스쿨의 사례를 통해서 어느 정도 보여지는 것 같네요.
엉터리 과학에 기대고 있는 와인 감정 (6/23, Guardian)
Ingppoo: 뉴스페퍼민트를 통해 접하게 되는 글의 유형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글입니다. 평소에 제가 갖고 있는 의문을 풀어주거나 답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던져주는 글들인데, 과학 기사의 대부분이 이런 유형에 속하죠. 그래서 저는 국제/정치 분야의 글을 소개해드리면서도 독자 입장에서는 과학 분야를 가장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제목에 과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을 뿐 Guardian 지의 Life & Style란에 올라온 이 글을 과학기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저 스스로 평소에 천차만별인 와인 값이 도대체 왜 그런건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을 들어본 적이 없던 차에, 이 글을 발견하고 재미 있다는 생각이들어 소개드린 글입니다. 와인 애호가들이나 전문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실제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굉장히 어려운 ‘맛’, 그것도 ‘오묘한 맛’에 전문가라는 권위에 기대어 점수를 매기고, 그렇게 매겨진 점수가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와인의 생리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서 삶의 질이란? (10/26 The Economist)
Eyesopen1: 한국인은 외계인이 와도 거기서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장 먼저 물어볼 거라는 우스개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를 중시하는 것은 유례없는 고속 성장 등, 큰 변화를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낸 우리 사회의 자부심과 초조함이 함께 묻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언로가 사방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바깥 세상과의 접촉에 목말랐던 시절도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 국의 소식은 물론 한국에 대한 전 세계의 의견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누군가가 가져오는 외신 한 조각이 절대적인 권위를 얻는 시대는 지나갔고, 해외 언론사의 유명세가 한국 관련 기사의 질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잡한 현상을 한 편의 기사로 소개하기 위해 다소간의 일반화와 단순화 과정을 거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작업이겠지만, 언어의 장벽이나 내부인만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직관력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니까요. 다만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전한다는 것이 뉴스페퍼민트의 모토인만큼, 저는 ‘좋은’ 기사에 한해 옮긴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기사’란 매우 주관적인 개념으로, ‘제가’ 몰랐던, 혹은 ‘저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한국 소식을 전하고 있거나,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신선한 시각을 제시하는 기사를 의미합니다. 지난 10월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한반도 특집 기획은 그런 의미에서 옮겨볼 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많이들 읽어주신 “한반도에서 삶의 질이란?”에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의 근원으로 ‘너무나도 좁고 제한적인 성공의 개념’을 꼽은 것은 폐부를 찌르는 단순화의 좋은 예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분단이 낳은 이질적인 존재이면서 통합과 정책적 시혜의 대상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탈북자들을 ‘삶의 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본 사람들’로 규정하면서 ‘남한 사람들도 같은 고민을 해봐야 할 때’라고 지적한 점은 신선한 시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난은 어떻게 당신의 두뇌작용을 저해시키나 (08/29 The Atlantic Cities)
Jasonhbae: 다소 자극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제목의 글을 소개한 이유는 가난이란 사회적 문제를 구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가난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의 양단에는 개인적 원인과 구조적 문제가 각각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떤 한 개인이 가난한 것은 그 사람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는 생각과 가난의 원인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죠. 전자의 관점이 가질 수 있는 문제는 이 관점 속에서 개인은 처벌과 비난의 대상이 될 뿐, 구원의 대상은 될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반면, 후자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해이와 동기 부족 등으로 인해 사회 전체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는 문제가 발생될 여지가 있지요. 이러한 시각에서, 본 기사가 의미 있는 이유는 첫째, 서로 별개의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사회구조적인 원인과 개인적 원인을 상호 연결해주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공공정책이 우선적으로 이러한 개인과 구조적 문제 사이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때 비로소 개인에게도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참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이유도 많은 뉴스페퍼민트의 독자들 또한 이와 같은 저의 의견에 동조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계를 떠나는 한 박사과정 학생의 뜨거운 질타 (9/23, Pascal Junod의 블로그)
veritaholic: 뉴스페퍼민트에게 여러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의미있었던 글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평소보다 수십배 많은 사람들이 웹사이트를 방문했고 역시 수많은 분들이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물론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여러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내부자의 문제제기라는 점도 있었고 대학원과 학계라는, 여러 사람들이 경험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의 부끄러운 한가지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폭발적인 반응은 분명히 이 글에 적어도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저 역시 조그마한 흥분을 느꼈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자연스레 궁금했구요. 물론 반응이 있을거라 생각했던 모든 글들이 다 반응을 얻었던 것은 아닙니다.
후에 원문이 올라온 블로그의 답변들을 읽다가 이 글의 저자인 스위스 EPFL의 대학원생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 학생은 우연히도 제가 지금 있는 보스턴 출신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자신이 집으로 돌아오니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더군요. 식사중에 그는 자신의 글이 다수의 언어들로 번역되었다고 이야기하며, 또 사람들에게 여러번 이 질문을 받은 듯 자신이 지금이라도 학위를 신청하면 학교는 학위를 줄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동시에, 그렇다고 자신이 다시 학위를 신청할수는 없지 않겠냐고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가 대학원에 진학하기전 영어를 가르쳤던, 그리고 학위중에 공동연구를 했던 중국 내륙의 한 학교에서, 다시 영어와 자신의 전공인 응용수학을 가르치기로 했다더군요. 그리고 계속 자신의 방법으로 학문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우연히 발견했던 글 하나가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잠시나마 자신이 학문을 하는 이유와 이에 대한 자세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희들에게 많은 보람을 안겨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