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수십 년째 줄어들던 미국 범죄율의 불안한 반등 조짐
지난 9월 19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쓴 글입니다.
2022년 상반기 미국의 범죄 실태 조사 결과에서 불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살인 범죄는 감소하고 있지만, 폭력 범죄 전체 건수는 1월 초부터 6월 말 사이, 작년 동기 대비 4.2%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2019년 같은 조사와 비교하면 살인은 50%, 가중 폭행은 35% 증가했습니다. 액시오스(Axios) 기사가 인터뷰한 검찰 관계자는 노숙, 중독, 정신 건강 등 팬데믹과 관련된 사회경제적 이슈가 범죄의 증가로 나타났다고 분석합니다.
미국의 범죄율이 수년간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코로나19 시국에 폭력 범죄를 중심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여러 데이터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 대법관의 이름을 딴 뉴욕대 로스쿨 내 비영리 연구기관 브레넌 정의 연구소(Brennan Center for Justice)는 범죄율의 극적인 변화가 2020년에 시작되었다며, 당시 30%나 증가한 살인 범죄, 특히 총기에 의한 살인이 75%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범죄율 문제를 정치화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이러한 현상은 민주, 공화당 집권 지역을 가리지 않고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다만 가난하고 역사적으로 낙후한 지역의 범죄율이 더 가파르게 올랐다는 사실은 통계에서 드러납니다. 아직 공식 통계는 없지만, 지난해부터 미국 최대 도시 5곳을 중심으로 살인 범죄가 계속 증가했다는 사실이 보이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은 1990년대 초반 이후 살인 범죄율이 급락했습니다. 2020년의 살인 범죄 건수는 인구 10만 명당 6.5명으로, 9.8명에 달했던 1990년대 초반보다 낮습니다. 폭력 범죄 건수도 2019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1990년대 초반에 비하면 여전히 절반 수준이죠. 브레넌 정의 연구소는 형사법 개혁이나 경찰력 감소가 범죄율 증가로 이어졌다는 세간의 분석은 근거가 빈약하다며, 정부는 이런 근거 없는 낭설에 휘둘리거나 문제를 과도하게 단순화시키는 대신,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브레넌 정의 연구소는 급증한 총기 판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안정과 커뮤니티의 붕괴를 가능성이 좀 더 높은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빈곤층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도심 빈곤 지역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폭력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추구하게 되는지 등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해, 경찰 개혁과 총기 관리는 물론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 방안에 이르는 해결책을 다양하게 제시했습니다. 특히 다른 서구 선진국에서도 소수 인종 커뮤니티에서 살인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나, 조직폭력단을 중심으로 폭력 범죄가 확산하는 양상이 있다는 점, 책임 없는 경찰력과 불평등 문제가 폭력 범죄의 배경이 된다는 점 등은 미국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의 최근 범죄율 추세는 어떨까요? 국가지표체계 사이트에 게시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범죄율은 최근 30년간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조금 더 최근으로 범위를 좁히면 강력범죄 건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성 범죄는 오히려 급증했다는 몇 년 전 보도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물론 살인 범죄율은 2020년 기준 10만명 당 0.6건으로 미국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고, 총기 문제 등은 우리 사회에 해당 사항이 없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이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을 받지 않을 나라는 없습니다. 2021년 국내에서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팬데믹 동안 5대 강력 범죄는 감소했지만, 디지털 성범죄, 보이스피싱 등 비대면 범죄가 증가하고 있으며, 폭력 범죄 감소에도 아동 학대와 생계형 범죄는 급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