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전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3월 7일에 쓴 글입니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우크라이나는 물론 러시아 국민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지구촌에서 고립을 자처하는 나라가 아니고서야 당사국 외의 나라들도 전쟁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전쟁이 세계, 특히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본 기사, 칼럼들을 모아봤습니다.
미국 공영방송 NPR은 “전쟁이 나(미국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쟁이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력을 정리했습니다. 첫째는 미국의 러시아 제재가 가져올 “부수적 피해”입니다. 제재란 기본적으로 내가 입을 손해보다는 상대에게 줄 타격이 큰 것을 전제로 하지만, 그렇다고 시행하는 쪽에 전혀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은 러시아와 무역 규모가 크지 않지만, 의존도가 상당한 원자재 쪽에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역 의존도가 높고 10대 교역국에 러시아가 포함되는 우리나라가 받을 타격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에너지 가격 상승입니다. 특히 러시아가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 등 유럽 내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에너지 수출을 중단하거나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가스관, 송유관이 전쟁의 영향을 받을 경우 군사 공격 못지않은 타격이 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지 않는 국가도 전 세계적인 에너지 가격 폭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러시아는 희토류와 희귀 금속의 주요 생산국으로서 반도체, 자동차, 우주항공산업 등이 직접 영향을 받게 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비료에 크게 의존하는 유럽의 농업·식품업계도 타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에너지 부문과 마찬가지로 식량 가격도 전 세계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각국 주식 시장의 하락은 전쟁 직후 곧 회복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지만, 갈등이 장기화하거나 지정학적 구도가 완전히 재편되는 경우에는 투자자들의 기본 전제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여론을 흔들고 상대 진영에 혼란을 초래하는 데 능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이나 유럽 홀로 감당하기 벅찬 대규모 난민 문제도 세계 다른 지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최근 몇 년간 시장이 지정학적 불안 요인을 그럭저럭 잘 넘겨왔지만, 이번 러시아 사태는 그런 패턴에서 예외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러시아가 세계 11대 경제 대국이자 가장 큰 원자재 수출국이기 때문입니다. 즉각적인 영향으로는 물가 상승률 증가, 성장률 저하, 주식 시장 혼란을, 장기적인 영향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및 금융 시장의 약화를 꼽고 있습니다.
또한, 물가 상승과 에너지원 가격의 상승으로 각국 중앙은행의 딜레마가 더 커지고, 시장의 불안으로 기업 투자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도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 경제가 서방으로부터 더욱 분리돼 중국과의 관계가 강화되면서, 우방국이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서로 얽힐 수밖에 없다는 세계화의 큰 전제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며, 중국은 러시아의 케이스를 보고 세계 경제에 의존도를 줄이는 자급자족 기조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즉, 전쟁으로 인해 지금 당장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치지는 않더라도 세계 경제가 재편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코노미스트는 또 다른 기사를 통해 특히 신흥국(emerging markets)이 받을 타격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즉 시장 불안은 유동성 위기로 이어져 신흥국 화폐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되고, 일부 국가의 디폴트 선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투자자들이 해외 시장에서의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신흥국 디스카운트가 강화되고 신흥국에 대한 투자도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전쟁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손익을 따져보면 그래도 전쟁을 일으킨 편이 나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답은 ‘아니오’입니다. 크루그먼은 3월 1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전쟁의 무용함을 이야기했습니다.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수도에 깃발을 꽂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것이 더 강한 러시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썼습니다. 역사적으로 군사적 우위를 통해 번영을 이룬 사례가 분명히 있지만, 우리가 “현대”로 부를 만한 지난 150년을 돌이켜보면,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는 주장인데요, 주요 사례로 2차대전에서 승리하고도 오랜 긴축과 부족한 외화고를 극복하지 못해 내리막길을 걸은 영국, 전후 경제 회복에 알려진 것보다 큰 어려움을 겪은 미국을 꼽았습니다.
크루그먼은 1909년 작 “대환상(The Great Illusion)”에서 저자 노먼 에인절이 “정복은 더 이상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든 근거를 소개하고 있는데, 1870년 이후 급속도로 진행된 경제 통합과 상호의존의 증가가 이에 해당합니다. 즉, 세계화된 경제 체제 속에서 자국과 상대국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과거처럼 정복을 통해 산업 자산을 빼앗는 것은 선진 사회가 생산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센티브와 안정을 오히려 깎아 먹는 행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이 정복한 국가의 전쟁 전 생산성을 모두 합치면 독일의 2배에 달하지만, 이들 국가가 감당한 것은 독일이 치러야 했던 전쟁 비용의 30%에 불과하다는 수치도 이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크루그먼은 에인절의 주장에 더해, 현대의 전쟁 비용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점, 그리고 자신을 착취하는 자가 누구인지에 큰 관심이 없던 중세 농노와는 달리 열정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게 된 현대 사회의 시민들도 러시아의 전쟁 비용을 높이고 진정한 의미의 정복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꼽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