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철학적인 제목의 작품으로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종종 이야기됩니다. 가로 폭이 3m가 넘는 이 대작은 그가 적도의 타히티에서 궁핍과 건강 악화로 자살을 기도하면서 유서로 남기려고 만든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 제목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소장=보스턴 미술관(MoFA Boston)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한 때 종교의 책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과거 종교가 차지하던 위상은 과학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진화입니다. 인간은 미생물에서 출발했고, 원숭이의 사촌인 동시에 박테리아와 장미의 먼 친척이라는 과학의 답변은 사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그 다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다른 모든 생명체와 먼 조상이 같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명확하게 다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는 곧 이런 과학적 사실을 알아내고 또 자신에게 이런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 인간만 가지게 되었나 하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이 질문에도 과학자들은 여러가지 가설을 제시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영장류 연구가인 리처드 랭엄은 다른 많은 동물이 생존을 위해 끝없이 에너지를 찾아 헤맬 때 인류는 불을 사용해 요리를 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이 높은 음식을 섭취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남는 에너지를 두뇌에 제공할 수 있었다는 요리 가설을 이야기합니다.
특정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인간을 다르게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언어의 우연한, 혹은 필요에 따른 등장과 발전이 지능의 발전을 가속화하고 문명을 탄생시켰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왜 인간만 언어를 그렇게 사용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이 따라오겠지요.) 인간이 가진 사회성과 이타성이 다른 개체와의 상호작용에 필요한 지능을 발달시켰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지트 바르키와 대니 브라워는 인간이 죽음을 부정하는 능력을 가지게 됨으로써 다른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지적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부정 본능”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제레미 드실바는 올해 출간한 “첫 걸음: 이(2)족 보행은 어떻게 인간을 만들었나(First Step: How Upright Walking Made Us Human)”를 통해 한 가지 가설을 더합니다. 바로 인류의 조상이 땅에서 두 발로 서서 걷게 됨으로써 영리해질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족 보행이 인간의 특성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족 보행이 지능의 발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드실바는 먼저 우리가 가진 기존의 상식 중 크게 잘못된 것 한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바로, 인류의 진화를 나타내는 이미지로 종종 활용되는, 구부정하게 네발로 걷던 원숭이가 점점 이족보행에 가까워지며 일어서서 걷게 되는 바로 그 그림입니다.
네 발로 걷던 유인원이 점점 진화해 두 발로 걷게 됐다는 통념은 실제 진화 과정과 다르다고 학자들은 지적합니다. 사진=셔터스톡
드실바는, 실제로 진화는 그렇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최근 발견된 화석 증거들은 유인원들 중 주먹을 이용해 걷는 사(4)족 보행이 아주 최근에 진화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곧, 인류의 조상은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왔던 초기부터 두 발로 걸었다는 것입니다.
드실바는 이 이족 보행이 초원에서 우리 조상들의 약점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시 초원에는 유인원을 잡아 먹는 다양한 포식자들이 있었습니다. 두 발로 서 있으면 포식자들의 눈에 쉽게 띕니다. 게다가 두 발로 뛰는 것은 네 발로 뛰는 것보다 분명히 더 느립니다. 즉 우리 조상들은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 영리해져야 했던 것입니다.
육체적 취약성이 지적 능력의 발달을 야기할 수 있다는 가설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논리가 바로 문어의 높은 지능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문어의 지능이 높은 이유가 게나 가재처럼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강한 껍질이나 다른 생명체를 공격할 수 있는 집게 다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를 접하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에디슨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자연, 특히 진화가 가진 놀라운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대자연이 마치 어떤 공정함을 가진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여러가지 질문도 떠오릅니다.
왜 육체적으로 약한 다른 동물들은 그럼 지능을 발달시키지 못했을까요? 아니, 애초에 왜 어떤 동물은 육체적으로 약하고 어떤 동물은 그렇지 않게 되었을까요? 물론 오늘날 거의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 처한 환경의 차이와 또 그 환경의 변화에 계속 적응한 결과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을 계속 떠올리고 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우리 인간만의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