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우리가 아는 세대 분류법의 허상
얼마 전에 공지드린 대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에 소개했던 글들을 시차를 두고 한 편씩 소개합니다. 거창하게 뉴스페퍼민트 2.0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외신을 읽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주제, 이야기를 우리말로 풀어서 전달해온 뉴스페퍼민트의 기본은 그대로입니다.
뉴스페퍼민트를 소개하는 글을 제외하고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에 처음으로 쓴 글은 태어난 연도를 15~16년마다 잘라내어 세대를 분류하는 방법을 비판한 글이었습니다. 세대 분류법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 읽은 칼럼을 바탕으로 글을 썼는데, 실은 저도 편의상 MZ세대, 베이비붐 세대와 같은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는 기사를 소개할 때나 팟캐스트를 진행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공허한 세대 분류는 쓰지 말자고 마음먹긴 했는데, 그 다짐을 완벽히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굳이 사람들을 세대로 분류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생물학적 출생 연도, 나이보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훨씬 더 분류가 복잡해지고 불편하겠죠. 그래도 여전히 너무 큰 뭉텅이로 나눠 놓은 기존의 세대 분류법은 의미 있는 분석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도구로 보입니다.
테니스 팬이 아닌 분도 비너스,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연년생인 두 자매가 각기 다른 세대에 속하는 거 알고 계셨나요? 1980년생인 언니 비너스는 (가장 어린) X세대, 1981년생인 동생 세레나는 (가장 나이 많은)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비단 윌리엄스 자매가 아니어도 1980년과 1981년에 태어난 한 살 터울 형제, 자매는 서로 다른 세대로 분류됩니다. 아무리 둘이 친하고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라도 현재 통용되는 세대 분류법 앞에서는 소용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의 공통점은 뭐가 있을까요? 똑같이 백악관에 산 적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도무지 닮은 구석을 찾기 어려운 두 사람이지만, 공유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둘 다 베이비붐 세대라는 점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에 태어났습니다. 1964년에 태어난 오바마 전 영부인은 트럼프보다 18살 어립니다. 그렇지만 둘은 모두 엄연한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다소 극단적인 사례를 든 건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이 별 비판 없이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세대 분류법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메릴랜드대학교 사회학과의 필립 코헨 교수를 비롯한 인구 통계학자, 사회과학자 150여 명은 최근 설문조사·통계 업체인 퓨리서치 센터에 공개서한을 보냈습니다. 퓨리서치 센터도 태어난 년도를 기준으로 임의로 세대를 분류하는 방식을 이용해 여러 차례 설문조사를 해왔는데, 학자들은 편지에서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분류 방식을 그만 써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사람들은 편의상 지금 살아있는 인구를 침묵의 세대(1928~1945년생),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 X세대(1965~1980년생),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 Z세대(1997~2015년생)로 나누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세대 분류법에는 별다른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심지어 기준이 되는 태어난 년도도 검색 결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 들면 1996년은 밀레니얼 세대일 때도 있고, Z세대일 때도 있습니다. 별 근거도 없이 태어난 년도를 기준으로 거칠게 세대를 나눴을 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퓨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자기가 어느 세대에 속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꽤 많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도, 특히 위의 분류에서 경계에 걸친 년도에 태어나신 분 중에는 본인의 ‘세대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분들 꽤 계실 겁니다. 1980년이나 1981년에 태어나신 분들은 자신이 어느 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본인이 생각하는 세대가 꼭 정답인 것도 아닙니다. 나는 스스로 밀레니얼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를 영락없는 X세대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이런 세대 분류법은 실체가 없는 허구에 가깝습니다.
퓨리서치 센터에 보낸 공개 편지를 대표로 쓴 코헨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쓴 칼럼에서 내가 어느 세대에 속하는지 모른다고 당혹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지금 쓰이는 세대 분류법은 엄정한 사회과학 방법론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설문조사 회사(코헨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팟캐스트에서 “popularized survey”, 즉 대중적 설문조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나 언론, 심지어 마케팅 회사들이 편의상 사람들을 구분한 다음 어떤 집단의 특징이 어떨 거라고 마음대로 갖다 붙인 결과 지금의 세대 분류법이 생겨났고, 시간이 흐르며 이런 분류가 마치 탄탄한 근거를 기반으로 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집단의 사회적 정체성은 외부 집단이 대신 만들어 주입하고 심어줄 수 없습니다. 정체성은 그렇게 형성되지 않습니다. 또래 집단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이 있었을 경우 그 당시에 비슷한 경험을 한 특정 나이대에서 나중에 어떤 사안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있지만, 이때 또래 집단은 16~19년보다 훨씬 더 좁은 범위로 정의됩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특히 미국과 서유럽에서 세계대전이 끝난 뒤 출생률이 높아진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1946년 갑자기 높아진 출생률은 1960년대 초반까지 높게 유지되다가 다시 이전 수준으로 낮아졌죠. 그래서 베이비붐 세대는 그나마 실체가 있는 분류라고 할 수 있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겪은 생애 경험은 그 안에서도 상당히 다릅니다. 굳이 도널드 트럼프와 미셸 오바마를 비교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1940년대 후반에 태어난 미국 남성은 42%가 군대에 갔습니다. 반면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미국 남성 가운데 군에 복무한 남성은 12%밖에 되지 않습니다. 징병제를 도입해 베트남 전쟁을 치렀을 때 1960년대 생들은 군대에 복무하기엔 너무 어렸습니다.
우리나라가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은 1997년 경제 위기를 생각해봅시다. 이때 고등학생이었는지, 대학생이었는지,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었는지에 따라 경제 위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경험들은 분명 다릅니다. 그런데 1997년에 고등학생, 대학생, 또는 사회 초년생이었을 15~33세를 한 세대로 묶을 수 있을까요? (계산해보면 이들은 지금 통용되는 세대 분류법상 대부분 X세대입니다.) 편의상 그럴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이 집단이 공통으로 겪은 경험, 이 집단의 특징이라 부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추려내지 못할 겁니다. 1997년 경제 위기 때 고등학생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생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고용 시장이 얼어붙어 힘들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기업에서 일하고 있던 고졸 사원들은 어째서 더 힘들었다는 식의 분석은 가능할지 몰라도 거의 20년 터울로 묶어낸 한 집단이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공통의 경험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아니면 과학적 분석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대단히 막연하고 추상적인 표현을 동원해야 할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밀레니얼은 자유분방하고, 유행에 민감하며, 긍정적이고, 소셜미디어를 주요 매체로 다루는 첫 세대입니다. 어디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하고, 딱딱한 위계질서를 거부하며, 신뢰하기 어려운 집단이기도 합니다. 또 부모와 사이가 좋은 편이며, 어른을 공경하고 동료와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눈치채셨나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들쭉날쭉한 특징들, 때론 서로 모순인 특징들을 마구 나열해놓은 듯합니다. 읽고 나면 그래서 도대체 밀레니얼이 어떻다는 건지 더 아리송해집니다. 이런 표현은 마케팅용으로, 아니면 그럴듯한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고 싶을 때라면 몰라도 사회과학 연구에서 한 사회 집단의 특징을 분석하는 엄정한 기준, 도구로 쓰기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코헨 교수는 말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라떼’와는 분명 다른데, 뭐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것 같다.”고 써놓은 글을 사회과학 연구에서 의미 있는 분석으로 차용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사회과학자들이 이런 분류법을 쓰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세대는 인종, 성별, 종교를 비롯해 사회 집단을 이루는 수많은 기준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제로 시간이 흘러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면 이들이 사회 변화를 이끌게 되죠. 그런데 과학적 근거가 없는 허상에 가까운 엉터리 분류법이 통념으로 굳어지면,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세대 간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무척 어려워집니다.
사회 집단을 이루는 수많은 기준은 한 사람이 사회 현상을 경험하는 데도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칩니다. 아무리 동년배라고 해도 인종, 성별, 출신 국가, 종교, 경제적 배경에 따라 그 사람이 겪을 사회 현상은 전혀 다를 겁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똑같이 학교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된 같은 학년 학생들이라도 집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지 여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태블릿 PC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팬데믹이 미친 영향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데 세대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우리는 좀 더 엄밀하고 꼼꼼하게 집단을 나누어 데이터를 쌓고 이를 분석해야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2020년 한 해 동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충하고 보완해줘야 할지 결정할 때도 엄정하고 엄밀한 데이터를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에 이르는 모든 학생을 Z세대로 뭉뚱그려 분석한다면 아무런 실효성 있는 대안도 찾지 못할 겁니다.
한때 한국에선 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쳐 ‘MZ 세대’를 분석하자는 논의가 한창 일었습니다. 코헨 교수의 지적을 빌려오자면, 터울이 15년도 더 되는 인구 집단을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터울을 40년 가까이로 늘려버린 겁니다. MZ 세대의 특징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는 어쩌면 “요즘 젊은이들, 요즘 어린 것들은 어떻다”라는 기성세대의 푸념에 가까운, ‘지적 게으름’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코헨 교수와 학자들이 보낸 편지에 퓨리서치 센터는 “회사 안에서도 세대를 더욱 엄밀하게 분류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이 문제에 회사 차원의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겠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세대를 피상적인 객체로 삼고 대충 뭉뚱그리는 분류법보다 좀 더 엄정한 분류법이 논의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