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그레이엄 – 최선을 다한다는 것(1/2)
(Paul Graham)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 아는 것처럼 보입니다. 학교에 다녀본 이들은 비록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도 그게 어떤 것인지를 대략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게 학생 때보다 그 의미를 이제 더 잘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답할 겁니다.
일단 당신이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하고 싶다면, 당신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릴 때는 나도 그 점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주어지는 일은 매우 다양하며, 어떤 일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습니다. 유명인들은 어떤 일을 별 노력 없이 쉽게 해내는 듯 보입니다. 정말 재능만으로 노력을 극복할 방법이 있는 것일까요? 나는 이제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학교에서 어떤 과목이 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준 자체가 낮기 때문입니다. 유명인들이 어떤 일을 쉽게 하는 것은 그들이 아주 오래 연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 쉬워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그들에겐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위대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재능, 연습, 그리고 노력입니다. 이 중 두 가지만 잘해도, 어떤 일이든 상당히 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결과를 내려면 세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엄청난 재능과 수많은 연습,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빌 게이츠는 당시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대 때는 하루도 쉰 적이 없습니다. 단 하루도요.” 리오넬 메시도 비슷합니다. 그는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지만, 유소년 시절 그의 코치는 그의 재능보다 승리에 대한 열망과 노력을 기억합니다. 20세기 내가 생각하는 가장 뛰어난 영국 작가인 P. G. 우드하우스는 글을 매우 쉽게 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74살에 이렇게 썼습니다.
“새 책을 낼 때마다 나는 문학의 정원에서 신 레몬 하나를 주운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다행히도 나는 모든 문장을 적어도 열 번은 다시 쓰게 된다. 스무 번 다시 쓰는 문장도 있다.”
극단적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더 심하지요. 10년 동안 하루도 안 쉬었다고요? 이들은 누구 못지않은 재능을 가졌지만, 또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필요합니다.
사실 이 말은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 이를 깨닫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는 재능과 노력이 마치 반대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중문화가 그 이유 중 하나이며, 뛰어난 이들이 드물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뛰어난 재능과 엄청난 노력이 모두 희귀한 것이라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이들은 정말로 희귀할 것이고, 대부분 사람이 만난 이들은 둘 중 하나만 가진 이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 특출난 사람이 되려면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재능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해내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노력입니다.
학교처럼 명확한 목표가 주어진 경우,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는 아주 분명합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기술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미루지 않는 것(미룬다는 것은 사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죠), 딴짓하지 않는 것, 잘 안 될 때 포기하지 않는 것 등입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최선은 아주 어린 아이들도 쉽게 익히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목표가 주어지지 않거나 목표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이럴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먼저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일을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기본입니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해내리라는 것은 확실치 않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리라는 것은 매우 확실하고, 나는 그 느낌을 매우 싫어합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나 역시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무언가를 해냈을 때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성장하면서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3살 때 나는 TV를 더 이상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아는 몇몇 이들도 비슷한 나이에 이런 생각을 시작했습니다. 패트릭 콜리슨에게 언제 게으름을 피울 때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마 13살이나 14살 때쯤인 것 같습니다. 나는 거실에서 가만히 바깥을 바라보다가 왜 내가 이 귀한 여름방학을 낭비하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는 무언가가 바뀌는 시기입니다. 그렇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학교라는 것입니다. 학교는 학생이 해야 할 일인 공부를 지루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나는 진짜 일이란 게 어떤 건지 알고 나서야 비로소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른이 된 후에야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을 다닐 때도 많은 과목이 무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학과 전체가 무의미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일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후, 나는 나의 열정이 마치 그 일을 위한 것인 것처럼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진짜 일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비로소 일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자 하디는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유려하게 표현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수학에 대한 어떤 열정도 없었다. 수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도 아주 단순했다. 내게 수학이란 시험과 장학금의 문제였다. 나는 다른 친구들을 이기고 싶었고, 그게 내가 수학을 열심히 한 이유였다.”
그는 대학에서 조르당의 해석학(Cours d’analyse)을 배우기 전까지는 수학이 어떤 것인지 몰랐습니다.
“나는 내 세대의 수많은 수학자에게 영감을 준 그의 업적에서 느낀 그 감동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수학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다.”
진짜 일이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는 하디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아이들에게 쉽게 가르칠 수 있도록 손질된 것이며, 때로 진짜 학자들이 한 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떤 종류의 일은 본질적으로 가짜이며, 잘해야 소일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일에는 어떤 확실성이 있습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쓰는 것 같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 일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모호한 기준이지만, 이 모호함은 다양한 종류의 일을 모두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모호함입니다.
진짜 일을 만나게 되면, 당신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 일에 써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시간을 한 가지 일에 쏟아붓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이는 많은 일이 일정한 시간 이후로는 오히려 결과가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그 한계는 일의 종류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는 여러 종류의 일을 해봤고, 일마다 들여야 할 적절한 시간이 각각 달랐습니다. 책을 쓰거나 프로그래밍을 할 때는 하루 다섯 시간이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는 나의 모든 시간을 여기에 쏟아부었습니다. 적어도 3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마 더 오래 스타트업을 했다면, 그 이후로는 적절한 휴가를 써야만 했을 것입니다.